오랜 시간동안 롯데의 후계자 선정은 미스테리였다. 그동안 신격호 총괄회장은 자신의 후계자를 명확히 지목하지 않았다. 지난 1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일본 롯데그룹을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한국 롯데는 차남 신동빈 회장에게 맡기며 양국 이원화 체계 구축했던 롯데 성곽이 무너졌다. 장남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그룹의 여러 계열사 임원과 이사직에서 해임하면서 롯데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차남 신 회장에게 넘기는 듯 했다. 미래 롯데그룹을 책임질 수장에 신 회장의 입지가 굳건해지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장자의 난이 발생했다.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대동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롯데의 지배구조 상위에 있는 롯데홀딩스 이사인 신 회장을 사임하고 5명의 이사진을 해임했다. 신 회장은 하루만에 반격에 나서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에 추대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세간에는 이를 두고 형제의 난, 쿠테타 등을 규정하고 롯데가의 경영권 다툼으로 확산시켰다. 어쩌면 롯데 경영권 분쟁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일 수 있다. 형제간 파워게임에 신 총괄회장은 자의든 타의든 67년의 최장수 오너의 길을 내려놓게 됐다. '껌의 신화'라 불리던 신 총괄회장의 성공신화와 롯데그룹의 차기 후계자 구도의 미래를 그려본다. -편집자 주-
[롯데家 형제드라마 ①] '껌의 신화' 롯데,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성장...부지런한 경영인
'장자의 난'으로 경영 일선 물러나
▲ 사진=신격호 롯데 총괄 회장 |
이에 67년간 경영일선을 지켜온 최장수 오너 경영인으로 글로벌 유통회사로 키운 신격호 총괄회장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는 1922년 울산시 울주군에서 5남5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 총괄회장은 1941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행 배를 탔다.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문학에 남다른 관심이 많았지만, 일제 감정기 하에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문학도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판단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진학해 1946년 졸업했다.
신 총괄회장의 성실함과 뛰어난 안목을 눈 여겨보던 한 일본인 사업가는 "군수용 선반 오일이 품귀 상태이니 공장을 차려봐라"라는 제안과 함께 5만엔을 빌려줬다.
그러나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은 제대로 가동도 하기 전에 잿더미가 됐다. 신 총괄 회장은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고, 46년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에서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며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얻은 추잉껌을 맛 본 신 총괄회장은 껌을 만들어 팔기로 결심한다. 48년 제과 회사인 롯데를 설립한 것이다.
롯데 껌은 품질 면에서 인정을 받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추후 초콜릿·사탕·비스킷·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65년 한일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자 신 총괄회장은 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다. 이후 호텔·유통 등에 진출하며 현재의 롯데그룹이 만들어졌다. 8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는 현재 연 매출 83조원에 달하며, 국내 재계서열 5위에 오를 정도로 큰 성장을 이뤘다.
롯데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킨데는 신 총괄회장의 남다른 부지런함이 큰 몫을 했다. 그는 2012년까지 한·일 양국을 오가며 '셔틀 경영'의 강행군을 펼쳤다.
▲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주도한 롯데그룹 경영권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사진=신격호 롯데 총괄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
롯데의 한 간부는 "회장님의 건강 비결은 부지런함이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자연히 건강해진다는게 비결"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신 총괄회장은 한시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간부들 보고를 받는 시간 외에는 혼자서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점검했다.
9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방문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올해도 그는 20년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현장을 방문해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황과 롯데월드몰 운영 상황을 보고 받았다.
지난해 역시 수차례 롯데월드타워 공사 현장을 방문해 매장 상태와 품질·가격 등을 점검했으며, 김해아울렛·롯데백화점 광복점·롯데몰 김포공항점 등 신규 오픈한 점포들 중심으로 현장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회장에게 실무를 맡긴 이후에도 그룹의 주요 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꼼꼼히 살폈다.
신 총괄 회장은 3명의 부인과 그 사이에서 4명의 자녀 2남 2녀를 둬 다소 복잡한 가족관계도를 갖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씨는 첫째 부인 노순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롯데백화점에서 오래 근무해오다 2009년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신 총괄 회장의 두 아들은 둘째 부인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씨 사이에서 얻었다.
그 동안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그룹을, 차남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을 각각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의 연이은 해임으로 그룹의 후계구도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재계에선 '신동빈 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한편 지난 28일 발생한 롯데판 '왕자의 난'으로 신 총괄회장은 70여년의 경영자로서의 길에서 물러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