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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베르테르 콤플렉스와 이영애·전지현·송혜교

2015-08-04 12:2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신격호 회장은 상당한 깊이를 가진 문학청년이었나 보다. 괴테의 연애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푹 빠진 그가 창업한 회사 이름을 다짜고짜 롯데로 정했으니 말이다. 베르테르를 파멸로 몰아간 여인 샤 롯데를 만인의 연인으로 되살리는 캐릭터 브랜드로 삼으려 한 참으로 감성적 포석이었다.
벤처 창업과 독일 소설의 만남. 이렇게 롯데는 스토리가 있는 기업으로 포장되어 항해를 시작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첫 출발부터 롯데의 문화 또는 낭만 콤플렉스를 노출시키고 말았다. 자기 이야기나 애플의 매킨토시 사과 로고처럼 뭔가 창의적인 개입이 없이 남의 것을 가져오는 공공연한 표절로서 롯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결격 사유를 남기고 말았다. 70년 전 창업 때 베르테르와 샤 롯데는 그야말로 저작권 프리(free)한 공공재 콘텐츠였으니 이를 무단 사용한 롯데그룹에게는 아무런 지적도 없었을 터이다. 그 이후야 모두가 알 듯 롯데의 성과가 그 모든 것을 합리화시켜 주었고...

일본에서 롯데껌을 시판한 신격호 회장은 ‘입속의 연인’이라는 카피를 직접 만들어 당시 광고계를 말 그대로 씹어 먹었다고도 전한다. 가뜩이나 서양 문물을 경배하는 일본사람들에게 롯데(LOTTE)라는 회사명 자체가 매혹적일 수 있었고 연애와 연인을 연상케 하는 낭만 카피 역시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최대 수혜를 누렸던 일본의 복구 경제에도 ‘딱’ 들어맞았다.

그 때만 해도 한국도 일본도 삼성 금성 삼릉과 같은 동양적 용어에 기업 철학을 입혀 회사명을 만들던 시기였음을 감안해보면 롯데라는 작명은 대단히 신선한 도발이었다. 소니와 롯데 정도는 이런 네이밍 브랜드 파워로 회사를 키우고 세계경영을 이룬 선구자라 칭송할 만하다.

   
▲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한데 공교롭게도 소니도 롯데도 이 멋진 이름 때문에 먼 훗날 화근을 키우는 아이러니를 겪고 만다. 소니는 영어로 소닉(sonic), 즉 음속이라는 용어를 채택해 오디오, 비디오 가전이라는 본업에 맞춰 작명한 사명으로 승승장구했었다. 하지만 이후 80년대 말부터 오디오 비쥬얼 산업, 즉 시청각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지나치게 쏠리게 한 슬픈 로렐라이 언덕이 되고 말았다.

롯데도 엇비슷하다. 이름으로 자아낸 후광효과가 전성기 때는 더 없이 고마왔을 테지만 맨 처음 사명 표기부터 촌스러움, 부정확함, 조급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베르테르의 연인 이름은 롯데가 아니라 로테라고 하는 게 더 맞고 어울리기 때문이다. 외국어 표기법을 기업인이 꼭 지켜야 한다는 철칙은 없겠지만 뭔가 억지 같고 서둘렀으며 독선과 고집이 번득였음을 감추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회사명 오기는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저패니메이션 (Japan + Animation) 산실 스튜디오 지브리 케이스를 보면 또한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전투기 이름이었던 기블리를 흠모한 하야오 감독이 잘못 오역한 명칭 지브리를 떠억 하니 회사명으로 삼은 것이 이후 안타까운 기업의 수명주기를 이미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984년 창업해 초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무려 스무 작품 넘게까지 연타석 홈런 대박 행진을 계속하다 칠순을 넘긴 하야오 감독 은퇴가 발표된 이후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공교롭게도 롯데처럼 스튜디오 지브리 후계 구도가 헝클어지면서 모든 문제가 악화되고 있어 더 이상 일본의 디즈니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가 되었다.

미국의 오리지널 디즈니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 물 먹었어도 픽사와 마블엔터테인먼트, 루카스 필름을 인수해 왕국을 재건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그들이 서양 이름을 잘 못 표기한 그대로 이젠 전성기를 지나 지금은 속절없이 가라앉고만 있다.

   
▲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롯데도 이런 서양 콤플렉스, 문화 명품 이미지에 대한 어두운 열등의식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아주 세차게 비바람 맞고 흔들리는 중이다. 서양은 물론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베르테르와 샤 롯데를 선망한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롯데라는 왕국도 그 낭만 그 판타지 몽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뿌리내린 한국 땅에서 완전 외면 받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 찰나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롯데의 베르테르 콤플렉스가 취약한 문화경쟁력의 또 다른 표출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롯데시네마 사업 강행이다.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로 시작했던 롯데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2003년 큰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신동빈 본부장 지시로 롯데는 일본의 최대 경영컨설팅업체 노무라총합연구소에 의뢰해 영화, 미디어 사업 진출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그 때 롯데의 고민은 이미 영화 투자, 배급, 상영 서비스 사업을 하고 있는 식품업계 라이벌 CJ 엔터테인먼트나 CGV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었다. 롯데의 에이스 업태인 쇼핑과 백화점, 호텔, 식음료 부문에 대해 신규 문화콘텐츠 사업이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 같은 문화콘텐츠 사업을 문화로서 대하기보다는 본연의 식음료, 유통 사업에 복무하는 액세서리쯤으로 본다는 인식이 바로 롯데의 한계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비유가 좀 거칠 테지만 독일 처자 샤 롯데가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의 문인, 작품 어디에서 착안해 ‘아랑’이나 경주 울산에 전해지고 신라의 향취가 나는 ‘에밀레’ 같은 이름을 택했다면 벌써부터 격이 달라졌을 수 있었으리라 본다.

그렇게 ‘롯데’가 아니었다면 현재 롯데 일가 오너와 동주 동빈 2세들, 수십만 롯데 식구들 마음가짐부터가 문화 먼저, 뿌리 먼저 생각하는 유통입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입국과 고객 섬김을 정말 애틋하게 아로새겼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요상했지만 롯데는 한국 땅에서 은혜를 크게 입고 많은 사랑을 받은 기업이다. 소공동 롯데 36층 호텔 건물도 그냥 세워진 게 아니다. 당시 정권이 그랬다는 얘기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한국 역사가 롯데를 받아들이고 기회를 준 인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롯데의 특별한 부를 독식하려 콩가루 집안 마냥 다투는 광경을 인내할 언론도 학자도 고객도 남아날 리 없다.

롯데가 우선 껌 팔고 사이다 팔고 쇼핑과 호텔로 크게 일어섰지만 그 다음 크게 벌였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업에서 적선하며 베풀지 못하고 돈의 맛에만 탐닉했다는 비난도 이대로 가다간 끝내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제 베르테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우리 한국의 문화, 그도 아니면 일본과 중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화 장점을 중시하는 진짜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기업으로 환골탈태할 마지막 찬스만 남아 있다. 스스로 문화를 아끼고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한국영화, 공연 발전과 청년고용에 이바지하는 문화보국, 낭만입국 정신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만이 롯데의 살길이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이 얼굴도 잘 모르는 샤 롯데 이미지와 그 밑에 도사린 베르테르 콤플렉스를 어서 빠져 나와 샤 롯데보다 훨씬 더 친근한 이영애 전지현 송혜교 심은하 탕웨이 같은 느낌으로 이름과 혼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를 보여야 할 때다.
그래야만 신회장 오너 일가도 베르테르 콤플렉스에 짓눌렸던 구시대를 말끔히 졸업하고 새 미래를 맞을 수 있을 게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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