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을 이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인수합병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아시아나의 화물사업 분사라는 관문을 넘을 수 있을 지에 항공업계 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내에서는 국부유출, 혈세 투입 등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어, 본지는 항공업계의 현 상황 진단과 아시아나 화물 분사에 대한 정당성 여부 파악 등 업계 내 최대 관심사를 분석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 작업이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눈 앞에 놓인 관건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여부다.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화물사업 매각이 곧 항공사 해체라며 합병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화물 매각'은 EU 심사 문턱을 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사회가 화물 사업 매각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대한항공이 최근 까다로운 심사조건을 적용하고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기업결합 승인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두 항공사의 합병은 사실상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 반대로 이사회에서 화물 사업부 매각 결론을 내리면 미국과 일본의 심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에 수출 화물이 실리고 있다./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2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오는 30일 이사회를 열어 화물사업 부문 매각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4명 총 6명으로 구성됐으며 구성원 중 과반인 4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화물사업 매각이 성사될 수 있다.
EU 경쟁 당국은 '유럽 화물 노선에서의 경쟁 제한' 우려를 이유로 대한항공에 시정 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때문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여부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과 유럽 일부 노선 슬롯 반납을 포함한 시정 방안을 마련했다. EU에 최종 시정조치 안을 제출하기 전 '화물 매각'에 대한 아시아나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사외 이사들은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운명이 자신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화물사업부 매각을 두고 아시아나 노조가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내부의 이견도 큰 상황이다.
◇ 아시아나 전직 사장단의 읍소...업계서는 부정적 평가
아시아나 전직 사장단은 지난 23일 아시아나 사내‧사외 이사들에게 화물 분사를 요청하는 읍소의 글을 올렸다. 과거 대표로 재임했던 박찬법 회장을 비롯해 윤영두 사장, 김수천 사장, 한창수 사장은 분사에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반대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사장단에서 내세운 합병 반대의 근거는 △산업은행 인수합병 결정의 불합리성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치명적 손상과 국부 유실 △인수합병 장기화로 아시아나의 본원적 경쟁력 고갈 등이다.
전직 사장단은 산업은행이 애초에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주장한다. 아시아나가 회생 불가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 위에서 국내 공정위와 관련 국가의 합병 승인을 취득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 업계는 관련 국가의 반응에 대해 결과론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이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또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 손상과 국부 유실에 대해서는 경쟁제한 해소를 위해 반납되는 일부 운수권은 우리나라 국토부에서 추후 운수권 배분 절차를 통해 ‘국내 항공사’로 재배분 되는 만큼 국부유출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중복노선 슬롯 일부를 반납하게 되지만 국내 LCC를 대상으로 이관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라며 “경쟁당국의 경우에도 해당 노선에 새롭게 진입할 의지가 큰 항공사에 슬롯이 이관될 예정으로 국내 항공사가 이어받을 가능성이 다대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LCC는 미국과 독일, 호주에 취항하며 적극적으로 장거리 노선을 운영 중이다. 대형기도 지속 추가도입하고 있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풍부한 노선망을 가지고 있어 장거리 노선과 함께 연계 지속가능한 사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일러스트=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인수 장기화로 아시아나의 본원적 경쟁력이 고갈된다는 주장에 대해 업계에서는 인수 문제와 별개로 이미 아시아나 측 경영 실패와 운영 미숙으로 회사의 지속 가능성이 사라져 공적 자금까지 투입된 상황이었다는 입장이다.
비록 2020년과 2021년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화물사업의 호황과 극단적 비용 감축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현재 아시아나의 총 부채는 12조, 부채비율을 1741%를 기록 중이다. 지난 7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7000억 원을 갚고, 지난 21일에는 기간산업안정기금 2400억 원도 반납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대한항공의 인수 장기화 여파와는 무관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유동성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여행 수요는 늘었지만 고유가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어 영업환경 개선이 쉽지 않고, 전쟁 등 대외적 여건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현재 아시아나의 이자보상배율은 1.06에 불과해 사실상 독자 생존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현직들의 불안감...고용 보장으로 해결될까
합병에 대한 우려는 전직 사장단은 물론 현직 아시아나인들에게도 큰 우환이 될 수 있어 이사회가 결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아시아나 측에서 우려하는 것은 흡수 합병에 따른 중복 인력 문제다. 흡수 합병이 되면 중복이 되는 부서와 인력들은 결국 정리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 실제 과거 산업은행 관리 하에 있으면서 매각이 된 기업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구조조정이 진행된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같은 업종에서 한 회사로 합쳐지는 만큼 중복 인력에 대한 문제 해결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은 고용 보장은 물론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부문 매각 시에도 인수하는 측이 고용 유지와 처우 개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에는 '아시아나 화물사업을 매각'이라는 조건부 매각 계획을 시정 조치안에 담아 전달하고, 향후 기업결합 승인이 이뤄지면 화물사업 인수 측과 '고용 보장 및 처우 개선'을 전제로 한 화물사업 매각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일러스트=연합뉴스
대한항공은 지난 2020년에도 소속 직원들의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기내식 기판 사업을 분할 매각한 바 있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의서를 오는 30일 개최되는 이사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미 아시아나에 투입된 공적자금만 3조6000억 원 이상인데다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항공화물시장의 현실을 감안하면 아시아나항공의 독자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제3자 매각도 가능한 방법이지만 4조에 육박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인수할 기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이 파산하게 되면 제2의 한진해운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14개 경쟁 당국 중 11개 경쟁당국의 문턱을 넘었다. EU와 미국, 일본 경쟁 당국의 승인만을 남겨둔 상태다. 화물매각 승인이 나면 EU는 물론 미국, 일본 의 승인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상황에서 화물사업 매각은 불가피한 선택이고, 고육지책"이라며 "매각 의결이 되지 않아서 합병이 무산되면 EU는 물론 미국과 일본의 승인이 불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매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사업의 유기적인 부분, 아시아나의 생존 등 여러가지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