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안 반발 파장 피해가족까지…추가조정 난항 불가피
[미디어펜=이미경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직업병과 관련해 피해보상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간 의견 차이로 협상에 진전을 이루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대책위원회에 이어 반올림 내 유족·피해자 대표 2명도 이번 조정안에 반발하면서 추가 조정에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교섭단 대표)와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최근 조정위원회의 중재 권고안을 거부하는 입장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근로자 직업병 보상 등에 대한 조정안 발표에서 김지형 조정위원장(아래쪽 가운데)이 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반올림에 따르면 황씨는 지난 8일 반올림 인터넷 카페에 올린 ‘거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황상기, 김시녀는 7월 23일 조정위원회에서 보상권고안을 낸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마음을 담지 못한 조정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삼성은 피해자 노동력 상실분을 충분히 반영한 협상안을 마련해 피해자와 직접 대화에 임하기 바란다”고 했다.
조정위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자가 1000억원을 기부해 공익재단을 설립,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예방과 재발방지 대책 등을 마련해 실행하라는 내용의 조정권고안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공익법인 설립 대신 1000억원을 사내 기금으로 조성해 피해 보상에 나서고, 상주 협력사 퇴직자도 자사 퇴직자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보상할 것을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상설기구와 상근인력 운영 등 보상 이외의 목적에 재원의 30%를 쓰는 것보다는 고통을 겪은 분들께 가급적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올림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족대책위는 “삼성이 그동안 수용할 수 없다고 했던 협력업체 직원 보상 의사를 밝히고 기금 조성 즉시 보상하겠다고 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보상을 신청하라는 것은 아직도 많은 세월을 기다리라는 뜻”이라며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 후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조정위에 따르면 그동안 삼성전자와 교섭단은 ‘보상의 원칙과 기준’ 및 ‘사과’에 대해서는 각 교섭주체 의견이 상당히 좁혀져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세부 항목에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재발방지대책’에 관해서는 교섭주체 간 의견일치가 어려워 완전한 합의를 위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선 반올림이 직업병과 관련한 피해보상보다는 ‘삼성전자 직업병 논란’을 사회문제로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년여 동안 이어진 장기 협상에서 신속한 보상을 원하는 가족위와 반올림의 입장 차이가 발생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피해가족 당사자 협상 과정에서 다소 상반된 주장을 펼쳐왔다는 지적이다. 이에 당초 반올림이 직업병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자신들의 업적에만 관심을 보이며 법인 설립을 통해 기반을 만들려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정위는 오는 17∼21일 이들과 비공개회의를 여는 등 후속 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조정안의 핵심인 법인 설립을 통한 보상안에 유족과 피해자들이 모두 반대하는 셈이어서 추가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