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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영업관행 살펴보니…"꼼수대출 부추기고, 심사 대충"

2023-11-30 16:41 | 류준현 기자 | jhryu@mediapen.com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금융감독원이 지난 3개월 간 은행권 가계대출 현장점검을 벌인 결과, 대다수 은행에서 대출규제를 형식적으로 따르거나 사전심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당국이 가계부채 확대를 막기 위해 도입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우회하도록 영업점에 지도해 대출한도를 늘리기도 했다. 금감원은 은행권 대출심사 및 영업행태에 다수 허점을 시정한다는 방침이다.

30일 금감원이 공개한 '하반기 은행·중소서민부문 주요현안' 자료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당국 규제를 형식적으로 따르면서, 대출규모를 늘리기 위한 우회적 영업행태를 벌였다. 금감원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약 3개월간 가계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16개 은행(한국씨티·제주·산업·수출입 제외)을 대상으로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3개월 간 은행권 가계대출 현장점검을 벌인 결과, 대다수 은행에서 대출규제를 형식적으로 따르거나 사전심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김상문 기자



KPI 뭐길래…DSR 우회하고 리스크관리·심사 뒷전

점검 결과, 은행권은 대출상품의 중요사항을 변경하면서 사전심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가계부채 확대의 주범으로 꼽힌 '50년 만기 주담대'가 대표적이다. 이 상품에서 '최장만기 확대'는 DSR 한도를 따지는 중요 변수인데, 대부분의 은행이 상품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상품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의 심사 없이 부서장 전결만 거쳐 상품을 공급했다.

일부 은행은 리스크부서 합의 등을 거쳤는데 형식에 그쳤다. A은행의 경우 심사·리스크부서는 금리 리스크 확대 및 듀레이션(투자금 회수기간) 관리 등을 이유로 우려를 표했는데, 영업부서의 입김에 밀려 대출만기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다수 은행에서 최장만기 변경 목적을 '영업경쟁력 제고'로 명시하거나, DSR 한도 확대를 영업 수단으로 사용토록 영업점에 안내하기도 했다. 사실상 DSR 우회·회피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사전에 인지했다는 게 금감원 시각이다.

또 다수 은행에서 핵심평가기준(KPI)에 대출 확대와 성과가 비례하도록 설정하거나 인사보상과 연계하는 관행도 적발됐다. 당국은 영업점 KPI에 가계대출 취급 관련 항목을 포함하지 못하도록 행정지도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은행들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은행이 DSR 규제를 우회해 고객에게 한도확대를 유도하는 부적절한 사례도 나왔다. 

일부 은행은 타행 신용대출을 생활안정자금용 주담대로 대환하면 적용만기 차이로 DSR 한도가 확대된다는 점을 영업수단으로 사용했다. 신용대출은 DSR를 산출할 때 만기가 5~10년으로 짧아 한도가 적지만, 주담대는 최장 40년까지 적용할 수 있어 대출한도가 신용대출보다 약 2.2배 늘어나는 까닭이다.

아울러 당국은 지난 2019년 신잔액코픽스(COFIX) 금리를 도입하면서 기존 잔액COFIX연동 상품을 신잔액으로 대환하도록 규제를 완화한 바 있는데, 일부 은행은 최근에도 DSR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이를 역이용하기도 했다. 가령 잔액상품이 아닌 은행채 기반 상품이더라도 신잔액으로 대환하면 DSR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식이다.

특수·지방은행에서는 설립 취지에 따라 특례를 부여하는 '고(高)DSR 대출'을 영업수단으로 남용했다. 이들 은행은 고DSR 대출이 많은 농·어업인 등에게 비주담대를 많이 공급하도록 당국이 특례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은행에서 특례 취지와 달리 우수고객이나 공무원 등에게 우량 가계대출(1억원 이하)을 취급하면 고DSR로 취급하도록 특례를 남용했다. 

증감 거듭하는 대출…"우려할 수준 아냐"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은 다소 둔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계대출 잔액은 4월 1000억원 증가전환을 시작으로 매달 늘어 8월 6조 1000억원 증가로 정점을 찍었다. 9월에는 2조 4000억원 증가로 성장세가 한풀 꺾였는데, 지난달에는 6조 3000억원 증가로 다시금 폭증했다. 이달에는 27일 현재 2조 3000억원 증가에 그쳤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은행권 주담대가 둔화세를 이어가고 있고, 2금융권 대출 감소폭도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권 주담대 증가분의 상당부분은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 모기지 수요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12월 중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11월에 이어 완만한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연말 성과급, 결산에 따른 상각 등이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 감소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실수요자 대출을 지속 공급하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때까지 지속 관리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를 위해 변동금리 스트레스 DSR를 도입하고, 가계대출 현장점검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시정한다는 방침이다. 

기업대출 증가세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9월 말 현재 금융권 기업대출은 1843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4.8%(83조 6000억원) 증가했다. 대기업이 10.4% 증가한 313조 5000억원, 중소법인이 4.0% 증가한 886조 1000억원, 개인사업자가 3.2% 증가한 643조 7000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승세를 띠고 있지만, 과거 대비 낮은 편이다. 지난 2013~2017년 평균치는 0.71%에 달했는데, 올해 9월 연체율은 0.42%에 불과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기업 중심의 은행대출 증가, 금융권 리스크관리 강화 추세 등 감안 시 기업대출 증가세는 크게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한계기업 등에 대해서는 엄정한 신용위험평가를 기초로 여신관리를 강화토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중소서민 연체율 상승세…"시스템 문제 안 될 것"
 
2금융권(저축은행·상호금융·여전사 등)의 경우 최근 연체율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9월 말 권역별 연체율을 보면 저축은행이 6.15%로 전분기 말 5.33% 대비 0.82%p 상승했고, 상호금융도 같은 기간 0.30%p 오른 3.10%를 기록했다. 그 외 카드사는 0.02%p 상승한 1.60%, 캐피탈사는 0.03%p 상승한 1.81%로 집계됐다. 

다만 금감원은 이들 업권의 연체율 상승에도 불구, 자기자본비율이 규제 비율을 크게 상회해 손실흡수능력은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저축은행은 3분기까지 적자에 시달렸지만, 9월 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4.14%를 기록해 전년 말 13.15% 대비 0.99%p 상승했다. 총자산 1조원을 넘는 금융사는 BIS비율 8%, 1조원 미만인 곳은 7% 이상을 각각 지켜야 한다. 

상호금융사의 9월 말 순자본비율은 8.04%로 역시 규제비율을 크게 상회했다. 여전사의 조정자기자본비율은 카드사 19.59%, 캐피탈사 17.55%로 규제비율(카드사 8%, 캐피탈사 7%)을 크게 웃돌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소서민권역 연체율은 상승세가 계속됐으나, 경기가 저점을 보인 상반기에 비해서는 전반적으로 상승폭이 둔화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통상 연말에 연체채권 정리 규모가 확대되는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 상승폭은 상반기보다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며 "양호한 손실흡수능력 등을 감안할 때, 연체율 상승이 현재까지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당국은 장기 연체채권을 상각하고, 유동화 방식의 가계연체채권을 정리하도록 업계에 유도할 계획이다. 아울러 12월께 저축은행 및 상호금융권에 연체채권 관리 실태 등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점검도 실시한다. 또 다중채무자, 부동산·건설업 등 리스크가 높은 부문의 충당금 적립률을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준수 금감원 은행·중소서민 부원장은 "금일 금통위가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최근 금융시장도 대내외 금리 하락세 등으로 안정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주요국 통화긴축 기조 등을 감안시 당분간 고금리 지속으로 가계·기업의 부담 증가 및 연체율 상승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도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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