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한기호 기자]역대 법안 발의 건수 최다를 기록한 19대 국회의원들의 ‘무더기 법안 발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의원 단독 발의 후 처리된 법안 10건 가운데 7건은 내용이 ‘판박이’여서 가결 과정에서 통폐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의원들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제정법률안·전부개정안보다는 일부개정안 등 발의가 쉬운 법안과 함께 대형 사건·이슈에 편승하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법안을 쏟아내는 행태를 보였다.
또한 실적 쌓기용으로 단순 문구나 조사만 바꾼 유사한 개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는 것은 물론 다른 의원이 낸 제정법을 표절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법안 처리율(올해 8월6일 기준 28.6%)에 비해 가결율(6.3%)이 현저히 낮아져 ‘고비용 저효율 국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 올해 8월6일 기준 19대 국회는 총 1만5544건에 이르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나 이미 18대의 1만3913건을 넘었다. 여기에서 위원회(장)안 873건, 정부제출안 942건 을 제외한 의원 단독 발의 건수는 1만3729건이다./사진=미디어펜 |
12일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에서 처리된 의원 발의 법안(위원장안 제외) 3931건 가운데 약 71%에 해당하는 2792건이 ‘대안반영폐기’ 법안이다.
대안반영폐기는 심사 중인 법안에 대한 의원 30명이상의 연서 또는 심사 전 법안에 대한 국회 상임위원회 차원의 유사·중복안 통합을 거쳐 ‘대안’을 만들어 처리하고 폐기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대안반영폐기 법안 증가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 의원발의가 정부제출안과는 달리 단계가 간소해 사전에 조정 및 통제 장치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이와 함께 2000년부터 법안실명제가 실시되고 2003년 이후 의원발의 요건이 기존의 20명 이상의 의원 찬성에서 10명으로 완화돼 발의가 쉬워져 의원들이 양적 측면에 치우친 입법활동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대 국회는 총 1만5544건에 이르는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나 이미 18대의 1만3913건을 넘었다. 여기에서 위원회(장)안 873건, 정부제출안 942건 을 제외한 의원 단독 발의 건수는 1만3729건으로 법안실명제 시행 이전의 15대 국회의 806건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다.
이 중 상대적으로 발의하기 쉬운 일부개정안이 1만2808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제정안(845건), 전부개정안(59건), 폐지안(17건)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가결율은 같은 순으로 6.3%, 6.6%, 6.8%, 5.9%로 나타나 일부개정안의 가결율이 제정·전부개정안에 비해 낮았다.
또한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에는 관련 법안 146건이 발의됐으나 대안반영폐기를 거쳐 8개 대안만이 남았다. 이 중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은 31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대안)’은 29건의 유사법안이 대안으로 통합된 것이며 나머지 대안도 최소 4~23건의 통합과정을 거친 것이다.
바른사회는 “유사·중복법안이 많아질수록 법안의 제정·심의에 (추가로) 투입되는 행정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보고서는 19대 국회 가결법안 2018건 중 정부제출안 수정가결율이 66%로 18대 국회의 46%보다 20%포인트 높은 점을 들어 “19대 국회의 정부안에 대한 높은 수정가결 비율은 국회가 행정부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어 “현재 정부제출안에 대한 국회의 수정가결 비율이 높고 국회선진화법 하에서의 합의제 법안처리 형태로는 국회가 행정부를 적절히 감시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영란법, 공무원연금법개정 등을 여야 합의 도출 과정에서 당초 취지가 변질된 사례로 들었다.
바른사회는 결론에서 “양적인 면에 치중하는 국회 입법활동 행태에서 국회의원 정수가 증가하면 법안의 양적인 증대 또한 불가피하다. 의원 증원은 입법활동에 있어서도 비효율을 초래 할 것”이라며 “현재 우리 국회에 필요한 것은 의원의 전문성을 높여 질적인 입법 활동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