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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평화주의에 당한 '연평해전' 제대로 응시하자

2015-08-14 08:4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2002년 6월 24일의 참상을 재현한 영화 <연평해전>이 올해 600만 관객을 돌파한 첫 작품이 되었다. 당초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점을 상기할 때 실로 경이로운 흥행 질주다. 전국민이 한일월드컵 응원에 흥분해 있을 당시 NLL을 불법으로 남침한 북한 고속정의 기습공격 받고 산화한 6인의 영웅들은 무려 13년 동안 사실상 잊혀져 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탄생한 것이 올해 6월 개봉된 영화 <연평해전>이다.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 10일 서울시 마포동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영화 <연평해전>이 한국사회에 던진 의미를 자유주의, 국가안보, 사회문화 그리고 영화적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회문화적 관점에서의 발표에는 조우석 문화평론가가 나섰다. 조우석 평론가는 영화 <연평해전>이 반공영화를 넘어 성공한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감독이 13년 전 상황 전체를 날 것 경태로 보여주면서 합리적 의심 그리고 분노 촉발을 자연스럽게 유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평론가는 “<연평해전>에서 관객들이 느꼈던 슬픔과 짜증 그리고 답답함이 전쟁공포증 혹은 가짜 평화주의라는 고질병 극복의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영화체험으로 그칠 게 우려되고 대한민국은 또 한 번 골병 든 사회로 회귀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조 평론가는 "무엇보다 이적(利敵)혐의마저 없지 않은 엉터리 교전수칙을 군에 강요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정치사회적 응징을 제대로 감행해야 옳다"고 지적하며 "주적(主敵) 개념을 임의로 삭제하고, 휴전선의 대북방송을 중단했던 좌파 정부의 대통령에 대한 국정조사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평론가의 '사회의 집단적 각성없이 ‘연평해전’이해 없다' 발표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 조우석 문화평론가
올해 한국영화 중 600만 관객을 돌파한 첫 작품인 ‘연평해전’이 개봉 이후 한 달 보름을 넘긴 지금도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1000만 관객 돌파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지금만으로도 경이로운 성적표가 분명하다. 당초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점을 기억해보라. ‘국제시장’이 장외홈런을 날렸던 지난해 말 올해 초의 국면에서 애국영화의 명맥을 이을 차기작으로 ‘연평해전’이 지목됐지만, 이 정도의 흥행 성공을 내다봤던 이는 거의 없었다. 외려 칙칙한 반공영화로 만들어지고, 흥행 저조 내지 참패로 귀결되는 시나리오를 우린 걱정했다.

이 영화가‘변호인’의 계보를 잇는 좌파상업주의 영화 ‘소수의견’과 맞붙는다고 해서 다시 가슴을 졸였던 개봉 초기의 조심스러웠던 분위기도 그랬다. 결과적으로 최종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있게 나왔으며, 걸맞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대중의 반응 역시 기대 이상이다. ‘국제시장’의 대성공에 이어 꼭 6개월 간격으로 애국우파 영화의 랑데부 홈런이란 전에 없던 진기록도 세웠으니 너끈히 자축할만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에 새로운 사회문화사적 흐름 하나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진실에 기초한 우파 영화란 콘텐츠가 되고도 남는다는 것, 그리고 이 시대 대중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각인시켜줬다. 보너스도 있는데, 이게 크다. 최근 1~2년 새 지리멸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이 한국사회의 울울적적했던 분위기를 조금은 바꿔줬다. 그만큼 영화 매체는 영화 이상의 것, 즉 사회의 집단정서에까지 영향을 준다.

좌파상업주의 영화로 도배됐던 지난 20년 가까운 충무로의 반사회적 혹은 반역적 풍토 속에서 애국영화의 등장과 상업적 성공이란 실로 꿈을 꾸기도 어려웠던 구조였다. ‘연평해전’은 그걸 돌파해냈다. 오늘 기쁜 마음으로 이 영화의 성공과 사회적 파장을 음미해보자. 이 영화가 좌파의 옹졸함을 증명해준 또 한 번의 계기 였다는 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그들은 명백하게 웰 메이드 드라마인 이 작품을 “예비군 훈련용 영화”라며 거들떠보지 않는 속물적 태도를 내내 유지하고 있다. 시간은 좌파의 것이 아니며 우리가, 대한민국파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 지난 10일 자유경제원에서는 영화 <연평해전>이 한국사회에 던진 의미를 자유주의, 국가안보, 사회문화 그리고 영화적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조우석 문화평론가(가운데).
◆반공영화 넘어 상업영화로 대박 난 ‘연평해전’

‘연평해전’이 갖는 사회문화적 무게를 점검하는 게 이 글인데, 우선 이 영화의 성공방정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상식이지만 ‘연평해전’의 성공은 영화산업의 시스템이 움직여 거둔 열매가 아니다. 그런 게 거의 없는 악조건에서 인터넷 모금과 후원금을 얻는 시민운동 방식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감독은 개봉관 잡기가 여의치 않을 경우 길거리 상영이라도 강행하려했다고 밝혔는데, 맨 땅에 헤딩하는 이런 접근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서 만들어진 좌파영화의 성공 공식과 무척 대조적이다.

좌파정권은 영화매체가 가진 선전 선동적 성격을 읽어내고 과감한 투자와 함께 영화판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 시기에 좌파영화가 홍수를 이룬 것은 시스템의 덕이고, 끝내 관객의 입맛과 시장의 성격까지 길들이는데 성공했다. 그에 비해 ‘연평해전’의 대박은 애국우파 영화의 시장 잠재력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지만, 이런 영화가 거듭 성공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구조인가는 별도의 과제로 남아있다. 어쨌거나 ‘연평해전’은 제작기간이 무려 7년이나 걸리는 걸 감수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끝내 성공했다는 게 중요하다.

감독의 유연한 연출방향이 시장에서 주효했다는 점부터 높이 평가해야 한다. “더 많은 관객이 영화를 보게 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힌 결과 걱정했던 반공영화의 차원을 넘어 애국영화이자 성공한 상업영화로 실로 드라마틱하게 등극할 수 있었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연평해전’의 상업적 성공은 요즘 영화판에 멘붕을 가져왔다. 이른바 현실비판 영화라는 ‘변호인’, ‘소수의견’류만이 아니고, 할리우드처럼 애국심에 호소하는 영화가 흥행에 더 유리하다는 새로운 흥행공식 가능성이 생긴 점에 저들은 놀라고 있다.

좌파 상업주의 영화가 주도하던 판에 균열이 생긴 건 분명한데, 이게 과연 앞으로 의미 있는 제3의 흐름을 창출해낼 것인가?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영화행정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차기 애국우파 영화가 또 한 번의 흥행에 성공해 굳히기 작업에 들어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영화판이란 돈을 따라가는데,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의 랑데부 홈런은 기회주의 성향의 영화판이 애국우파 콘텐츠에 눈길을 보내는 계기가 된 점만은 너무도 분명하다.

일테면 내년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오길남의 납북 모녀 소재의 영화 ‘통영의 딸’이나,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등도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출격 준비 중이니 조심스레 지켜볼 일이다. 그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이 영화의 연출자 김학순도 연구대상이다.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한쪽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옆에선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가 하면, 금강산 관광을 하러 이북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 지는 부조리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담으려 했다.”

“당초 영화를 만든 게 나라를 지 키자는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이런 희생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걸 계기로 작은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감독 김학순의 뉴시스와의 6월6일 인터뷰) 영화 개봉전의 이 인터뷰가 암시하듯 당초 연출 방향은 소박한 쪽이었다. “적이 NLL을 침범해도 선제적 공격을 하지 말라”는, 이적(利敵)혐의마저 없지 않은 엉터리 교전수칙을 군에 강요했던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벌어지는 등의 상황은 굳이 바라지 않고 다만 6명의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하자는 쪽이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를 사지에 몰아넣었던 김대중이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감독은 용의주도하게도 TV 자막으로 처리했다. 이 점도 영리한 선택이다. 이런 식의 간접 처리가 정치영화라는 소모적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방식이었으리라. 그 점에서 연평해전의 배후인 김대중 정부의 반역적 햇볕정책과 엉터리 교전수칙이라는 거대한 모순을 건드린 뒤 슬쩍 빠진 영화 감독의 정치 감각도 인정해야 한다.

   
▲ 영화 연평해전.
그 결과 이 영화는 고도로 정치적인 영화이자, 명백하게 탈(脫)정치적이라는 양면성을 유지하고 있다. 고백하지만, 디테일에도 나는 만족한다. 실감나는 군 내무반 생활 묘사, 너무도 잘나고 듬직했던 주인공 윤영하 대위(실제로는 영화보다 더 진짜 사나이에 가깝다는 게 감독의 증언임), 절제된 연출(조타장 한상국 중사 인양 때 잠수부 안경 넘어 맺힌 눈물 한 방울)도 두루 무난했다. 너무도 리얼해서 관객인 내 몸에 총탄이 꽂히는 듯 몸서리쳐 지던 해상전투신도 오래 오래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돈을 더 들였을 경우 전투신을 좀 더 잘 만들 수 있었다고 지적하고, 촬영감독이 여러 번 바뀌는 바람에 영화의 앞과 뒤 이음새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말하던데, 실은 큰 문제 없었다. 최소한 평균적 관객인 내겐‘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더 팍팍 꽂혔다. 그리고 못내 부끄러웠다. 월드컵 때 작심하고 도발했던 적이 일으켰던 이 전투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점, 이 해상전투 바로 며칠 전에 발생했던 효순-미선 양 사건에는 거품을 물고 반미투쟁을 벌이던 이 나라의 거대한 정신착란을 내내 수수방관해왔다는 점이 그러했다.

이런 우리의 현주소를 되새김질할 계기를 만들어준 이 영화에 대한 고마움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영화 ‘연평해전’을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고 보는 쪽이다. 영화 텍스트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으나 영화 개봉 이후 관련된 논의가 50점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걸 100점으로 크게 밀어 올리기 위해서는 지금 사회적 논의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믿는다. 아직도 영화가 종영되지 않은 시점인 지금이 그 때인데, 이 영화를 둘러싼 관객의 반응이란 대강 이런 식이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도 울고 옆자리의 관객들도 울었다.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미는 이런 기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영화 <연평해전>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이기에.”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삐져나오는 눈물, 격렬한 분노, 그리고 이런 상황을 구조적으로 해결하지 못해온 정치권에 대한 짜증을 두 시간 러닝타임 내내 경험했다. 그래서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면 너무 평면적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예술철학은 예술체험이란 게 정화(淨化) 혹은 승화라고 정의하지만, ‘연평해전’은 정반대의 경우라는 점부터 밝혀야 한다. 즉 애써 눌러왔던 복잡한 감정을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유도하는 쪽인데, 그런 메카니즘에 이름을 붙이자면 정치사회적 각성효과가 아닐까?

◆지금 우린 반역정권에 대한 정치사회적 각성이 절실

어떤 정치사회적 각성이 요구될까? 좌파 기세에 밀려 미처 꺼내지도 못했던 2차 연평해전을 둘러싼 쟁점을 제대로 따져 묻는 것이야말로 지금 필요한 정치사회적 각성이 아닐까? 그런 게 영화의 의미를 최종완성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건 전쟁불감증 내지 ‘전쟁 포비아(공포증)로부터 벗어나기’란 명제와 관련됐다. 강조하지만, 한국사회는 지금 정치사회 거의 전 부문에서 효율성의 한계와 함께 심각한 체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데, 바닥에는 구조화된 전쟁공포증이 똬리를 틀고 있다.

다음은 언론인 김진현이 얼마 전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이다. “대한민국은 어느덧 두 가지 포비아의 덫에 걸려있다. 우선 경제제일주의라는 덫 이다. 전쟁이 나면 경제와 민생이 타격을 입는다면서 마냥 피해의식부터 키운다. 더 큰 인간적 가치, 사회 안정,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필요하면 전쟁도 결단할 수 있다. 그걸 외면하는 게 평화의 덫이다. 우리는 지금 그저 평화의 레토릭만 자꾸 늘어놓으면 평화가 유지된다는 집단적 환상에 사로 잡혀 있다.”

내 눈에 영화 ‘연평해전’은 좌파정부가 심어준 그런 전쟁공포증의 실체에 대한 정면 응시다. 문제의 전쟁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적군에 의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는 부조리한 참상이 반복될 것임을 이 영화 이상으로 어떻게 더 보여줄 것인가? 상업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냈다는 게 경이로운데, 복기해보시라. 그 영화는 피아간 전투를 소재로 한 작품이 결코 아니다.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아군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참담한 과정을 묘사하는데 치중했다. 왜 감독은 그걸 거의 날 것 형태로 보여주려 했을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13년 전 상황 전체에 대한 자연스럽고 합리적 의심 그리고 분노 촉발을 유도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맞다. ‘연평해전’이 반공영화를 넘어 성공한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거의 누구나가 영화를 보면서 “왜 우리 젊은이들이 저렇게 처참하게 당해야 했던가?”를 묻고, 그 대목에서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격렬한 분노를 경험한다. 입대하는 아들을 둔 중장년 부모, 그런 형제를 둔 가족, 애인을 군에 보내는 젊은 여성들은 서해교전이란 말도 아닌 전투가, 최악의 부조리가 언제라도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근한 일이라는 데 경악했다. 이걸 새삼 일깨워준 이 영화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데, 문제는 이런 인식에 바로 함몰될 경우 단순히 ‘이웃에서 일어난 비극’에 그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가 아니고 전쟁영화다. 국가 안위의 차원을 깔고 있는 고도의 애국적 작품이자, 그 이상의 정치군사적 영화다. 바꿔 말해 이 영화 관람을 할리우드 영화 보듯 즐길 수만은 없는 게 우리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집단정서로 가장 뚜렷한 전쟁불감증 내지 전쟁공포증의 실체를 건드려야 정상이 아닐까? 고백하자. 제대로 응시하자. 우리는 최악의 약골 사회, 아찔한 문약(文弱)의 사회다.

   
▲ 영화 연평해전.
우남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일하며 싸우자”는 개발연대 박정희의 캐치프레이즈가 통했던 30여년을 제외하곤 우리는 제 몸 하나 간수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병의 군 복무기간도 지난 수십년 동안 단축 일변도로 흘렀다.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 탓이지만, 결국은 국민들도 영합을 하지 않았는가? 결정적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거푸해도 한국사회는 거의 대응을 못하는 몽유병자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건 명백하게 중증의 병든 사회인데, 전쟁공포증 극복이야말로 ‘연평해전’이 전해 준 메시지를 제대로 해독하는 지름길이다.

‘연평해전’은 물론 서해교전 이후 다시 발생했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을 다시 겪으며 또 한 번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았으면서도 우리 군은 도발자 북한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당한만큼 갚아준다는 보복의지야말로 전쟁을 결단할 수 있는 나라의 기본인데, 우린 그게 없다. 혹시 강경대응을 하자는 목소리를 누가 내면 “그럼 전쟁을 벌이자는 얘기냐?”는 얼치기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영화 ‘연평해전’에서 당신이 느꼈던 슬픔과 짜증 그리고 답답함이 이런 한국사회 집단정서에 대한 극복의지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영화체험으로 그칠 게 우려된다. 그 경우 대한민국은 또 한 번 골병 든 사회로 회귀할 것이다. 이 말에 공감한다면,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선 국가안보조 차 독재시대의 구호로 치부하는 구태(舊態)를 벗어나야 옳고, 국방을 미군에 외주(外注)준 한국사회의 웰빙문화의 타락에 대한 반성이 일어야 정상이다.

전쟁공포증 혹은 가짜 평화주의는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고, 그게 정치권의 지리멸렬로 연결된다는 인식도 절실하다. 이 나라 정부는 국가혁신과 경제도 미덥지 못하지만, 군사·안보·외교라는 상위정치(high-politics)에서 젬병이다. 정치학의 분류대로라면, 경제·정보·환경은 하위정치인데, 이 나라 정치권은 하위정치 중에서도 자리를 안배하고 갈라먹는 뒷골목식의 야합을 정치라고 착각해왔다.

‘연평해전’은 이런 몽매함을 때리는 거대한 죽비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세상은 ‘연평해전’이전과 이후로 갈라진다. 당장 이 영화를 본 600만 명의 관람객이 왜 우리 젊은이들이 손발을 묶인 채 적탄에 고스란히 노 출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지 않은가? 이 궁금증을 놔둔 채 어떻게‘연평해전’이 감동적이었다는 식의 피상적인 멘트만 남발한단 말인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국민들에게 요구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감히 말할 수 없다.

13년 전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6명의 삶을 어떻게 제대로 기리고, 이 과정을 통해 전쟁공포증을 어떻게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이적(利敵)혐의마저 없지 않은 엉터리 교전수칙을 군에 강요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정치사회적 응징을 제대로 감행해야 옳다. 그런 응징의 하나엔 주적(主敵) 개념을 임의로 삭제하고, 휴전선의 대북방송을 중단했던 좌파 정부의 대통령에 대한 국정조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국정조사에서는 몰살을 강요하는 교전수칙을 만든 계기와 과정, 북한 해군의 선제공격을 암시했던 감청(監聽)결과를 고의로 무시했던 군 명령체계의 문제, 북한 함정이 아군의 역공으로 침몰직전이었던 상황에서 발포중지 명령을 내린 과정 등이 두루 밝혀야 옳다.

1999년 6월15일 제1차 연평해전에서 우리해군은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 격침시켰다. 승전을 지휘하였던 박정성 사령관은 사실상 좌천된 후 전역 조치가 됐다. 사건 직후 김대중 정부는 북에 유리하도록 교전수칙을 개정, “먼저 쏘지 말라”를 집어넣었는데, 이는 이적행위에 준한다. 또 2차 연평해전 직전인 2002년 6월29일 군 수뇌부는 북한 해군의 “명령만 내리면 발포하겠다” 통신내용을 입수하고도 정보를 조작했고 기습을 허용했다.

재확인하지만 참혹한 전투신이 전개되는 30분 내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언론인 조갑제의 표현처럼 “김대중의 반역적 햇볕정책에 기초한 자살적 교전지침”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그런 비판적 인식을 언론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확대하는 게 지극히 정상이다. 그것까지 밀어붙이지 못한다면, 영화는 영화일뿐인데 왜 이렇게 정색하느냐고 말한다면, 그게 모두 무기력하고 무기력해진 한국사회 볼썽사나운 실력이 노출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재확인하지만 연평해전 국정조사를 당장 하자는 발언이 집권여당에서부터 나오는 게 정상국가로 복귀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자신한다. 이 글 서두에서 ‘연평해전’1000만 관객 돌파가 어렵다고 했지만, 국정조사가 거론되고 등 올바른 정치적 각성이 이뤄진다면 그 정도의 목표 달성이야 삽시간이 아닐까? 이런 논의의 실마리를 마련해준 ‘연평해전’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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