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 그룹 체제에 포함된 지 1주년을 앞두고 있다. 글로벌세아는 지난해 10월 쌍용건설의 대주주가 됐고 같은해 12월 김기명 글로벌세아 대표이사를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임명하며 인수를 마무리했다. 정비사업은 축소되고 강점이던 리모델링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대했던 건설업계 상위권 도약도 어려울 전망이다.
◆정비사업 수주 사실상 '제로(0)'…모아타운도 유찰
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세아에 편입된 첫 해인 올해 쌍용건설의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등) 수주 실적은 전무하다. 쌍용건설 측은 1건을 수주했다고 주장하지만 확인 결과 해당 사업은 지난해 수주한 것으로 계약만 올해 진행했다.
최근에는 서울 금천구 시흥5동 모아타운(소규모 블록 단위 정비사업) 수주에 도전했지만 그마저도 유찰됐다.
쌍용건설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매년 감소 추세다. 2022년 1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1조 원, 올해는 0원이다.
업계에서는 쌍용건설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국내 건설경기가 침체됐다는 것을 고려해도 정비사업에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쌍용건설은 2021년과 지난해 각각 -1108억 원, -450억 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 만들기에만 집중하느라 돈을 써야 하는 정비사업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서는 홍보비 등이 소모된다. 또 수주를 하더라도 조합의 사업비로 쓰이는 입찰보증금을 부담해야 한다"며 "수주를 안하면 당장은 나가는 비용이 없으니 적자를 줄일 수 있더라도 향후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리모델링 강자' 옛말…수주한 사업마저 포기
정비사업 중에서도 쌍용건설이 가장 강점을 보였던 리모델링 부문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리모델링 수주 건수 역시 '제로(0)'이다.
쌍용건설은 리모델링 만큼은 타 건설사보다 앞선 기술력을 앞세워 수주를 이어 나갔다. 리모델링 누적수주액이 약 3조 원 가량으로 한때 업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리모델링 강자'라는 타이틀도 옛말이다. 올해 정비사업 수주액 4조5892억 원의 41.5%를 리모델링으로 수주한 포스코이앤씨를 비롯해 다른 대형건설사들이 리모델링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건설은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경기도 내 한 아파트의 리모델링 사업을 올해 갑자기 포기하기도 했다. 해당 단지는 공동주택 1600여 가구 및 부대복리시설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대규모 단지라 사업성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쌍용건설이 갑작스럽게 손을 털고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쌍용건설은 공사비 상승 등을 이유로 내걸었지만 조합에서는 쌍용건설이 글로벌세아에 인수된 영향으로 보고 있다. 경영진이 바뀐 직후 사업 철수 결정이 나왔다는 것이다.
B건설사 관계자는 "이대로 라면 쌍용건설은 그나마 강점이던 리모델링 사업에서 마저 존재감이 옅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 모르는 글로벌세아…우려가 현실로
쌍용건설의 아쉬운 행보는 지주사인 글로벌세아 그룹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쌍용그룹 주력 계열사였던 쌍용건설은 한때 시공능력평가 7위(1995년)에 오를 정도로 잘 나가던 건설사였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쌍용그룹이 해체되면서 워크아웃을 2번이나 겪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두바이투자청을 거쳐 글로벌세아 그룹 산하가 됐다.
쌍용건설 본사가 자리한 서울 송파구 대한제당빌딩./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글로벌세아가 자산이 6조 원에 달하는 만큼 쌍용건설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했다. 한편으로는 의류 제지 등이 중심인 글로벌세아가 건설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 인수 당시 우려를 자아냈다.
정비사업 결과만 놓고 보면 걱정은 현실이 됐다는 평가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계속 오르면서 수주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예 일을 안하고 있는 셈"이라며 "이는 결국 글로벌세아가 건설업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쓴소리를 날렸다.
지난 7월 현대건설 부사장 출신의 김인수 대표이사가 선임, 김기명 대표와 함께 회사를 지휘하게 됐지만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KT와 공사비 분쟁 강경대응...건설업계 '갸우뚱'
최근 KT와의 공사비 분쟁 역시 글로벌세아가 건설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판교 제2테크노밸리 'KT 신사옥 신축공사'를 맡은 쌍용건설은 물가인상을 이유로 171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발주처인 KT에 요청했다.
하지만 KT가 물가 변동 배제 특약을 내세워 받아들이지 않자 쌍용건설은 지난 10월 말 KT 판교 신사옥 앞에서 시위했다. 또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으면 판교 사옥에 대한 유치권까지 행사하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쌍용건설과 협력업체 직원 30여 명이 지난 10월 31일 KT 판교 신사옥 공사현장 앞에서 KT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시위중이다./사진=쌍용건설
건설업계는 이에 대해 의아해하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세아의 독촉에 못 이긴 쌍용건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KT와 맞선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C건설사 관계자는 "쌍용건설의 요구는 건설사 입장에서 십분 이해하지만 발주처와의 공사비 조정은 협상으로 조용히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쌍용건설의 시위는 '앞으로 KT 공사는 안 하겠다'는 뜻"이라며 "당장은 돈을 받을 수 있을 지 몰라도 앞으로 발주처를 잃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손해"라고 분석했다.
◆임원 승진 반년 만에 퇴사…글로벌세아 '점령군' 행세?
글로벌세아 출신 인사들이 회사 내에서 '점령군'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세아 그룹은 인수 직후인 지난해 12월 쌍용건설 기존 임원 29명 중 절반가량인 14명을 해고한 바 있다. 창업자 일가로서 40여 년을 쌍용건설에 몸담은 김석준 회장도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다.
빈자리 중에서 중요한 자리는 글로벌세아 출신이나 외부인사로 채웠다. 회사 관리 핵심인 경영지원본부장은 세아상역 출신인 심철식 부사장이며, 최고재무관리자(CFO)는 글로벌세아에서 온 이호진 상무다.
쌍용건설 본사 7층에는 토목 관련 부서들이 위치해 있다./사진=미디어펜 서동영 기자
결국 파열음이 발생했다. 지난 6월 국내 토목 파트를 총괄하는 D임원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올해 초 상무로 승진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다. D임원은 쌍용건설 공채 입사 후 30년 넘게 '쌍용맨'으로 활약했다.
해당 임원이 갑작스럽게 사표를 낸 표면적인 이유는 '현장 관리소홀'이다. 지방 대형 토목 현장에서 심각한 하자가 거듭 발생한 데 따른 책임 추궁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최고 경영진 중 한 명에게 '하자 관련 대처가 미숙하다'는 질타를 공개석상에서 심하게 받은 것이다. 쌍용건설 본사에서 열린 팀장급 이상 회의였다. 해당 경영진은 글로벌세아 출신으로 알려졌다. 많은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D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D임원은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회의에서의 일 만으로 그만둔 건 아니다"라면서도 "(글로벌세아 출신 경영진들과) 문화적인 부분은 물론 생각하는 점도 많이 다르다 보니 승진 이후 6개월 동안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쌍용건설은 곧 정기인사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도 기존 쌍용건설 출신들이 대거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우건설-중흥그룹' 승승장구...'쌍용건설-글로벌세아' 지지부진
건설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글로벌세아의 약점은 인수 당시에도 거론됐던 부분이다. 쌍용건설을 품에 안은 지 1년이나 지난 현시점에도 이같은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21년 12월 중흥그룹의 품에 안긴 대우건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세아와 달리 건설업이 주력인 중흥그룹은 경영간섭보다는 대우건설의 자율성을 최대한 용인해 주고 있다는 평가다.
정원주 중흥그룹 부회장이 지난 6월 대우건설 회장으로 취임했지만 여전히 대표이사는 대우건설 출신의 백정완 사장이다. 정원주 회장은 세계 각지를 돌며 대우건설의 해외사업 진출을 위한 마중물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이같은 뒷받침에 힘입어 대우건설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인 76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지난해 6위에서 올해 3위로 세 계단 뛰어올랐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쌍용건설과 대우건설이 인수 이후 상반된 결과를 내는 것은 결국 자율성의 유무"라며 "지금 같은 상태로는 쌍용건설이 도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은 지난 10월 쌍용건설 창립 46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옛날의 명성과 영화를 다시 되찾을 것을 약속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미디어펜은 쌍용건설 측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자료 요청도 거부당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