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희연 기자]새해 벽두, 제1야당 당대표가 흉기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년 4.10 총선을 3개월여 앞두고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의 정치'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람 중심의 팬덤 정치가 나은 참사라며 상대를 적으로 하는 '극단의 팬덤 정치'가 아닌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10시 27분께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 받던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으로부터 왼쪽 목 부위를 공격 당했다. 이 남성은 지지자처럼 행동하다가 사인을 요구하며 펜을 내밀었고, 소지하고 있던 20~30㎝ 길이의 흉기로 이 대표를 공격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는 충남 거주 60대 김모 씨(67)로 "이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를 앞두고 유력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 사례는 지난 2006년 5월 20일 국민의힘의 전신 한나라당의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 커터칼 피습 사건'이었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신촌의 한 거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을 위해 단상에 오르던 박 전 대통령은 50대 남성 지모 씨가 휘두른 문구용 커터칼에 11㎝ 길이의 오른쪽 뺨 자상을 입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범인 지모 씨는 과거 폭력 등으로 15년을 복역한 것에 억울함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왼쪽 목 부위에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사진=연합뉴스
가장 최근에 발생했던 사례는 2022년 3월 7일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가 서울 신촌에서 피습당한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 피습 때와 같은 지역이다. 송 전 대표는 대선을 앞두고 서울 신촌의 한 거리에서 선거운동을 하다 70대 남성이 휘두른 망치에 머리 맞아 인근 대학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 남성은 송 전 대표가 종전 선언을 방해하고 있다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내년 총선을 석달 앞두고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극단의 정치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시민들의 접촉 기회가 점점 더 늘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모방 테러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는 팬덤정치를 끊고, 타협과 합의를 해나가는 모습을 국민들께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치를 시스템 중심으로 하는게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하는 정치의 인격화 현상이 굉장히 강하다"라며 "자기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정치인에게 반대되는 목소리를 한 사람은 무조건 적이라고 생각하고 타도의 대상, 제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즉 증오가 발생하는 정치의 감성화가 일어난다"라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정치의 인격화가 정치의 감성화라는 괴물을 낳고 이는 팬덤이라는 형식의 극단적 양태를 보인다"라며 "급기야 정치인들이 팬덤의 눈치를 보고 팬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하게 되니까 정치가 실종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치가 실종이 되면서 갈등을 축소해야 할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그대로 투영된다.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를 실종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고 팬덤만 바라보는 정치를 끊어야 한다"라며 "정치인들이 스스로 실종시킨 정치를 타협과 합의를 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팬덤층에게 당장은 비난 받을 수 있지만 최소한 정당이 팬덤 눈치 보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이익집단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공당이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 줄 수 있다"라고 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재명 대표 흉기 피습과 관련해 "정치권의 협치가 사라지고 양당이 극한 대결을 하면서 분노의 정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너무 진영이나 팬덤이 모여서 분노의 정치를 하다 보니, 극단적인 행동을 사는 분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오히려 이런 걸 자제 시키고 싸우지 말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려고 만든 게 의회인데, 의회가 오히려 굉장히 극단적이고 말도 험해져 버렸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 들어 양당 간의 대결이 심해진 측면도 있다"라며 "대통령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여야 모두 분노를 자꾸 증폭 시키는 방향으로 자기의 지지세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식의 전략을 쓰고 있는데, 좀 자제를 해야 한다"라고 했다.
[미디어펜=이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