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 2004년부터 20년간 일본 군마현 현립공원에 자리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추도비가 29일 철거에 들어갔다. ‘한일 우호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이 추도비가 철거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추도행사 때 나온 정치적 발언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30일 군마현은 지금의 추도비를 철거하되 대체부지를 제공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글귀가 새겨진 군마현 추도비는 당초 ‘정치적인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설치됐다. 이 추도비 건립에 앞장선 시민단체는 매년 추도비 앞에서 추도행사를 열어왔다. 그러던 중 2012년 추도행사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 나왔고, 군마현은 이를 빌미로 설치허가 갱신을 거부했다. 이후 이 사안은 소송으로 번져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군마현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확정했다.
군마현에선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6000명이 군수공장이나 광산에 동원돼 300~500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있다. 하지만 일본땅에 조선인 추도비가 설치되는 것은 힘든 일인게 사실이고, 당초 군마현 추도비가 세워지기까지 시민단체와 군마현 간 오랜 협의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 추도비 설립 요건이 정해졌고, 군마현은 이 요건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추도비를 설치할 때 ‘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시민단체측이 위반을 거듭해서 (추도비) 존재 자체가 정치적인 논쟁 대상으로 발전해버렸기 때문에 지사로서 결단했다”고 말했다. 야마모토 지사는 추도비의 목적이 한일 우호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동상 앞에서 26일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참가자들이 강제징용노동자상 모형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12.26./사진=연합뉴스
그런데 현 야마모토 군마현 시자의 이런 판단이 나오기까지 논란이 된 발언을 한 시민단체가 조총련 계열단체인 점이 작용했을 수 있다. 시민단체의 추도행사 중 나온 문제 발언은 “강제연행의 실시를 전국에 호소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고 싶다” “전쟁 중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정부는 강제연행의 진상규명을 성실히 하지 않고 있다” 등이다.
2년 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판결이 나오긴 했지만 야마모토 지사가 지금 철거를 단행하는 것도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청련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또 지금 북핵 문제에 대응해 한미일 3자 협력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자칫 한일 우호관계를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한편, 일본의 일부 일본언론이 “이해할 수 없는 폭거”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아사히신문은 30일 사설을 통해 “군마현 당국의 조선인 추도비 철거를 즉시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야마모토 지사가 ‘공익’을 철거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조선인 추도비가 주민들에게 어떤 불이익을 주는지에 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군마현이 일부 세력의 항의에 정치적 중립을 방패삼는다면 역사왜곡을 돕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자 군마현은 추도비를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철거해서 현에서 임시 보관했다가 다른 곳에 재설치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만 재설치 부지와 관련해 군마현과 시민단체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군마현 강제동원 추도비 철거 논란은 앞으로 현에서 시민단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절한 대체부지를 제공할지에 따라 해결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이 사안이 양국간 우호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한일 간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면서 “이 사안은 일본 지자체와 관련된 사안이고, 이미 일본 최고재판소의 판결 등 일본 내에서 필요한 관련 절차가 진행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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