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지난 14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독일-덴마크 순방을 다음 주 일정을 목표로 준비해 오다가 여러 요인을 검토한 끝에 순방 일정을 순연하기로 밝혔지만, 순연을 결정한 배경과 정확한 이유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돌고 있다.
출국을 4일 앞두고 알려진 전격적인 연기 이유에 대해 대통령실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여러 요인'이라고만 언급해, 최근 현안 등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한 것이라는게 표면적 배경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제 이유가 무엇인지 불투명한 실정이다.
특히 오는 18일부터 일주일 간 준비되었던 순방 일정이었고, 독일의 경우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으로 추진됐다. 국빈 방문은 통상 대통령 임기 내 한차례만 진행하는 것이 관례다. 정부가 독일과 덴마크 측에게 '순방 연기' 결정을 알린 건 한국시간 13일 밤으로 알려졌다.
최소 1년 전부터 양국 간 외교라인에서 거론되고 수개월 간 치밀하게 국빈 방문을 준비해온 것이 전례다. 상대국가 양해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는 갑작스런 연기 결정은 '이례적인 외교 결례'라는게 외교가의 객관적인 평가다.
더욱이 이번 순방과 맞물려 소재부품 장비, 반도체, IT, 배터리, 제약 바이오, 해상풍력 분야 등 국내 다수 기업들이 독일 및 덴마크 기업들과 긴밀한 만남과 협력을 추진해왔지만 당분간 보류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외국인 투자기업 대표들과 연 오찬 간담회에서 마틴 행켈만 독일 상공회의소 회장 등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4.2.14 /사진=대통령실 제공
국내외에서 각국 정상의 순방 연기가 드물진 않다.
지난해 10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급작스럽게 터져 한국 국빈 방문을 연기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지난해 7월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독일 국빈 방문을 취소했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 순방 일정을 연기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사태로 멕시코 순방을 연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은 "독일-덴마크 측과 조율을 거쳐 결정한 사안이고, (이유에 대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답변이다.
이와 관련해 본보가 대통령실 안팎의 소식통을 종합해 보면, 전격적인 연기 결정의 배경은 크게 2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의료계의 대대적인 반발, 총선을 앞둔 북한의 무력 도발 가능성, 물가 관리 등 민생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는 다각적인 이유다.
다만 이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미 벌어진 국지적 이슈에 불과하고, 북한의 무력 도발과 민생 현안은 대통령이 항상 다루어온 '상수'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번째 배경은 국빈 방문 등 대통령의 공식 순방이 총선을 앞두고 '정쟁 소재'로 비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종의 정무적인, 방어적인 판단이다.
당초 윤 대통령에게는 △김건희 여사와 함께 국빈 방문하는 것, △대통령 혼자 국빈 방문에 나서는 것, △순방을 가지 않고 연기하는 3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이 중 윤 대통령이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야당과 일부 언론은 트집을 잡아 계속해서 공격할 것이고, 그나마 야권 공세를 최소화하고 국민 여론 악화를 막는 카드가 순방을 연기하는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1년 9개월간 발표된 전국단위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대통령 순방이 민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례가 더 많다.
올해 들어 윤 대통령은 1월 첫째주부터 지금까지 줄곧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3일 제11차 민생토론회를 수도권을 벗어나 부산에서 열었고, 향후 지속적으로 전국을 돌며 국민 여론을 직접 청취하고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든 결론은 '총선'으로 모아진다. 해외 순방보다는 민생에 초점을 둔 내치에 힘쓰겠다는 윤 대통령의 선택과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