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남북 분단 이후 북한의 ‘최후통첩’이 선언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도 남북이 대화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북 확성기 방송 때문이었다.
앞서 북한의 DMZ 지뢰도발이나 서부전선 포격도발이 의도적이었든 우발적이었든 결정적으로 북한이 한반도에 최고조 위기 상황을 만들어낸 이유와 동시에 대화제의를 한 이유 모두 단 한 가지 자신들의 ‘최고 존엄에 대한 흠집 내기’를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 북한의 대남 전략가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이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회담 제의를 해온 것은 그들이 줄곧 따져오던 ‘격’에 맞지 않는 결정이었고, 우리 측이 문제 제기하는 빌미가 됐다.
우리 측이 수정제의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의 접촉을 선뜻 받아들이고, 홍용표 통일부장관까지 참석하는 ‘2+2 회담’까지 북한이 수용한 것도 당시 다급했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 측 대표단은 대북 방송을 중단시킬 엄명을 받고 대화에 임한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도저히 대화 테이블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접촉은 유례없는 무박4일, 43시간 마라톤협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남과 북이 오랜만에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았지만 북한의 잠수함과 공기부양정이 대거 동원되는 등 북한이 선포한 준전시상태는 갈수록 긴박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남 측 대표단은 최근 우리 측 인명피해를 낸 북 측의 지뢰도발에 집중했다.
겉으로는 북한이 전면전을 상상시키는 최강도 위협을 가했지만 이번 남북대화에서 열세는 북한 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 측은 대체로 과거 얘기보다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의제에 올리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 역시 그동안 좀처럼 열기 힘들었던 당국자간 대화가 열린 만큼 테이블에 올리고 싶은 논제가 수만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는 말로 목함지뢰 매설이 북 측 소행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고 한다.
특히 김 실장이 발뺌하는 북 측에 대고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지뢰도발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고성이 오갔다는 후일담도 있다.
▲ 남북은 지난 22일부터 고위 당국자 접촉을 시작해 마라톤 협상 끝에 25일 오전 0시55분 극적으로 합의를 도출, 총 6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보도문은 남북 고위급 대화 합의 및 북한이 지난 4일 자행한 지뢰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 등으로 구성됐다./사진=통일부 제공 |
당분간 남북은 추석맞이 이산가족상봉 행사로 화해 무드를 타겠지만 그 와중에도 북한은 또 다른 대남 도발을 궁리하기 시작할 것이다. 또 오는 10월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에 맞춰 그들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장거리미사일을 ‘축포’ 삼아 쏘아올릴 가능성도 여전히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우리 젊은이들의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하는 전우애를 보여주고, 예비역들이 "이미 군 복무를 했지만 불러만 주면 언제라도 전쟁터에 달려나가겠다"며 줄줄이 SNS에서 결의를 다져준 것은 뜻밖의 ‘선물’일 것이다. 목발지뢰로 피해를 입은 두 젊은이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열을 고취시킨 것이다.
북한이 대남용 ‘우리민족끼리’에서 “전쟁 위협을 느낀 우리 국민들이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백화점이 아수라장이 됐다”거나 “예비군들이 훈련소에서 이탈해 도망간다”는 등 허위보도를 한 것을 통해 현재 김정은 정권의 오판 수준을 온 국민이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