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홍콩 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 발생으로 판매사와 투자자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를 의심할만한 정황들을 대거 포착했다.
또 금감원은 양측의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세부 분쟁조정기준을 마련했는데, 판매사 책임요인 최대 50%, 투자자 책임요인 최대 45%를 각각 설정했다. 이에 투자자별 배상비율은 사례에 따라 0~100%까지 천차만별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홍콩ELS 사태와 관련해 모두발언을 진행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금감원은 11일 오전 본원 3층 브리핑실에서 이 같은 내용의 홍콩 ELS 대규모 손실에 따른 판매사와 투자자 간 분쟁조정안을 발표했다.
금감원 검사결과에 따르면 은행권(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과 증권업권(한투·미래·삼성·KB·NH·신한) 등 판매사들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8조 8000억원(약 39만 6000좌)를 개인과 법인을 상대로 판매했다. 은행이 15조 4000억원(약 24만 3000좌), 증권이 3조 4000억원(약 15만 3000좌) 등이다.
투자자별로는 개인에게 17조 3000억원(약 39만좌), 법인에게 1조 5000억원(5000좌)를 각각 판매했다.
전체 잔액의 80.5%인 15조 1000억원의 만기가 연내 도래하는데, 분기별로 1분기에 전체의 20.4%인 3조 8000억원이, 2분기에 전체의 32.1%에 달하는 6조원이 각각 도래한다.
만기도래액에 발맞춰 손실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2월까지 만기가 도래한 2조 2000억원 중 총 손실액은 1조 2000억원으로 누적 손실률은 53.5%에 달한다. 금감원은 2월 말 현재 H지수(5678포인트)를 기초로 가정할 때 추가 예상 손실액은 약 4조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분쟁조정기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류준현 기자
금감원에 따르면 판매사들은 △판매정책·소비자보호 관리실태 부실 △판매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 △개별 판매과정에서의 다양한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 파생결합증권(DLF) 및 사모펀드 사태 이후 당국이 '금융소비자보호법'을 마련하고 상품 가입절차를 까다롭게 개편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소비자보호 장치는 큰 득실을 얻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문제점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무리한 실적경쟁 조장이 눈길을 끈다. 판매사들은 H지수의 변동성이 확대됐던 지난 2020년 당시 오히려 영업목표를 상향하고, 영업점에서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성과평가지표(KPI)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판매를 독려했다.
특히 일부 판매사는 해당 상품의 판매한도를 상향하도록 리스크관리기준을 변경하고, 비예금상품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에는 소홀히 했다.
그런가하면 투자상품을 판매하면서 고객의 투자성향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특히 위험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상품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조정한 사례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가령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는 한편, △손실감내수준 20% 미만 △단기투자희망 등 고난도 장기위험상품에 부적합한 투자자에게 ELS 상품을 판매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한 경우도 있었다. 아울러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위험등급 유의사항 등을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영업점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불완전판매 정황이 발견됐다. 이들은 판매정책이 '고객최우선 원칙'이 아닌 자체 이익을 우선하도록 설계·운영해 불완전판매를 조장했다.
가령 안정적 성향의 투자자에게 투자성향을 상향하도록 유도했다. 청력이 약한 고령투자자에게는 상품내용을 '이해했다'라고 답하도록 요청했다. 또 영업점 방문이 어렵다는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진단설문지와 상품가입신청서 등을 대리 작성·서명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불완전판매 정황들을 다수 발견한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조정기준안을 마련했다. 배상비율은 '기본배상비율+공통 가중+투자자별 가산-투자자별 차감±기타조정 10%포인트'에 따라 계산되는데, 판매사는 기본배상비율(불완전판매 여부)과 공통 가중(금소법상 내부통제 운영 미흡)을 고려해 23~50%(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여부, 판매정책 및 소비자보호 관리체계 부실 여하 고려)까지 책임을 묻는다.
구체적으로 은행의 경우 기본 20~30%의 배상비율이 책정됐는데, 부당권유 등의 판매원칙 위반사항 건에 대해서는 최대 40%까지 부과된다. 여기에 공통가중으로 5~10%p가 가중된다. 증권사도 위반사항에 따라 20~40%의 비율이 적용되며 공통가중으로 3~5%p가 추가 적용된다.
고객은 투자자별 가산·차감 요인을 고려하며, ±45%포인트(취약계층 여부, 과거 ELS 투자경험, 금융상품 이해도 등 고려)에서 배상비율이 책정된다.
가산요인은 △예적금 가입목적 고객 10%p △금융취약계층 5~15%p △ELS 최초투자 5%p △자료 유지‧관리 및 모니터링콜 부실 5~10%p △비영리공익법인 5%p 등 최대 45%p다. 사례에 따라 판매사에 이 모든 가산요인과 기타조정요인 등을 반영할 경우 배상비율은 최대 100%까지 나올 수도 있다.
차감요인은 △ELS 투자경험 -2~-25%p △매입‧수익규모 -5~-15%p △금융상품 이해능력 -5~-10%p 등 최대 -45%p다. 역시 사례에 따라 배상비율은 0%가 될 수도 있다. 이에 투자자별 배상비율은 천차만별일 전망이다.
특히 금감원은 실제 투자자 손실에도 불구 '0%'의 배상이 예상되는 사례도 소개했다. 사례에 따르면 50대 중반의 S씨는 ELS 상품을 62회 가입한 경험과 1회의 손실 경험이 있다. S씨는 은행원으로부터 ELS 상품을 권유받아 1억원을 가입했는데, 1월 중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발생했다. 하지만 과거 투자로 얻은 누적이익이 이번 손실규모를 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금감원은 판매사의 귀책이 있음에도 불구, △투자자가 상품 가입당시 54세에 불과한 점(+0%p) △ELS 상품 가입 경험 62회(-10%p) △손실 1회 경험(-15%p) △가입금액 5000만원 초과~1억원 이하(-5%p) △ELS 누적이익이 손실규모 초과(-10%p) 등을 두루 계산해 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은 '0% 내외'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이번 분쟁조정기준은 한편으로는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원리의 근간인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심사숙고해 마련했다"며 "앞으로 기준에 따라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 법적 다툼의 장기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은 새 분쟁조정안에 따라 대표사례에 대한 분조위를 이르면 4월부터 개최해 분쟁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각 판매사가 새 조정안에 따라 투자자와 자율 배상(사적화해)에 나서도 된다.
아울러 금감원은 투자자에 대한 배상과 별도로 검사에서 적발된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관련 법규 및 절차 등에 따라 엄정 조치할 예정이다. 다만 판매사의 고객피해 배상 및 검사 지적사항 시정 등의 사후 수습 노력은 참작사유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금감원은 금융위와 검사결과 등을 분석해 EL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판매제도를 진단하고, 제도개선도 추진할 방침이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