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생태계의 보고' 전북 고창 고인돌·운곡습지를 가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고창은 이곳 고인돌 유적지와 박물관을 비롯한 운곡습지까지 모두가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2일 오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전북 고창 운곡 고인돌 유적지와 운곡 람사르습지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고인돌 박물관 입구에서 탐방로 시작점까지 갈 수 있는 탐방열차를 타고 5분여 들어가니 운곡습지 탐방1코스 초입에 위치한 고인돌 유적지가 보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여러 고인돌 유적지가 있지만, 전북 고창 고인돌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무덤 양식이다. 매산리 산기슭에서부터 약 1.5km 이어지며 447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 고창 고인돌 유적은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넓게 고인돌 군집을 이루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분포해 있는 고인돌 3만여 기 중 전북 지역 고인돌의 65% 이상인 1748기가 고창에 자리 잡고 있다.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 지상석곽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한 데서 볼 수 있는 것도 전 세계에서 고창이 유일하다. 

탐방로를 오르며 살펴본 고인돌에는 '고창고인돌유적 2305'와 같이 각각의 고유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고인돌을 식별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부여한 일종의 '주민등록번호'인 셈이다. 

숨을 고를 겸 잠시 멈추고 지나온 길을 내려다 보니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고인돌 유적지는 원래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던 다랑논이었는데, 아직 계단식 경작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각기 다른 시대의 삶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였다. 

고인돌 유적을 지나 야트막한 길을 오르니 본격적으로 운곡습지로 진입하는 길목이 나왔다. 

운곡습지는 농경지로 이용되다 1980년대 초 영광원자력발전소 발전용수 공급 목적으로 운곡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주민이 이주한 이후 30년 넘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폐경작지로 유지됐다. 이후 자연이 스스로 힘으로 산지저층 습지와 소택지 등 습지원형을 복원해 나갔다.

2011년 3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운곡습지는 그해 4월 우리나라 16번째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람사르습지는 생물 지리학적 특징이 있거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된 습지다. 

운곡습지 구석구석으로 연결돼 있는 나무 덱(데크)길은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너비였다. 기존 단방향 코스에서 쌍방향 탐방로로 조성된 운곡습지 탐방로는 지역 주민이 다니던 옛길을 천연목재와 습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핀공법, 토사 침식 및 유입 저감을 위한 야자매트 등을 이용해 재탄생시킨 것이다. 인간이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자연 훼손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방식으로 생태 관광을 활성화하고 생태 경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다소 습한 바람을 맞으며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서 땅이 촉촉히 젖어 있거나 흥건히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운곡습지 일대에는 약 8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으로 만들어진 유문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유문암은 유리질 입자로 크기가 매우 작아 물이 잘 빠지지 않는 특성이 있어 습지 일대 기초가 되며, 골짜기를 따라 내려 오는 물들이 땅 밑으로 흡수되지 않고 고여 습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탐방로 중반부를 지났을까. 버드나무 아래에서 사초들이 군락을 이뤄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있자, 동행한 자연환경해설사가 "사초들이 무릎 만큼 자라면 모두 바람에 맞춰 버드나무 잎과 함께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정말 예쁘다"고 넌지시 말했다.

사초군락지에서 몇 걸음 나아가니 과거 둠벙으로 사용했던 물길이 보였다. 물길 바로 앞에 위치한 나무 밑동에는 손바닥만한 가방이 묶여 있었는데, 물길과 이어진 물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고 가는 노란목도리담비 동선 파악을 위한 센서 카메라였다. 마침 물 웅덩이에선 수달 네 마리가 장난기 가득하게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남한의 DMZ'라고도 불리는 운곡습지에는 현재 식물 376종과 육상곤충 390종, 저서무척추동물 24종, 양서·파충류 12종, 조류 51종, 포유류 11종 등 총 864종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달과 황새, 삵, 담비 등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2급도 지내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환경부는 이같이 우수한 자연환경을 지난 전북 고창 고인돌 유적지와 운곡습지를 '4월의 생태관광지'로 선정했다.

이달에 고창을 방문하면 드넓게 펼쳐진 청보리밭에서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 고창읍성, 선운산 도립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인 노르딕워킹, 뽕잎차 다도체험, 누에고치 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