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을 지칭하던 ‘태양절’이라는 용어를 노동신문 등에서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은 1대 수령인 김일성 생일은 태양절, 2대 수령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은 ‘광명성절’로 부르며 최대명절로 기념해왔다.
하지만 12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8일부터 북한 매체에서 태양절이나 광명성절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매년 4월에 진행해온 다양한 행사명에 넣던 ‘태양절’이란 말을 ‘4월 명절’ 등의 용어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북한이 4월마다 진행해온 ‘태양절 요리축전’ 행사는 올해부터 ‘전국요리축전’으로 변경됐다. 노동신문은 6일 이 요리 경연대회 소식을 전하면서 “민족 최대의 경사스러운 4월 명절을 맞으며, 제27차 전국요리축전이 2일부터 5일까지 평양면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9일 ‘인민의 어버이’ 제목으로 평양 옥류전시관에서 김일성 생일 기념 사진전람회를 열면서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탄생 112돌을 맞아”라고만 표현했다.
통신은 같은 날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열린 제59차 전국 학생소년예술축전 개막식 소식을 전하면서도 “뜻깊은 4월의 명절을 맞아”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5월 이 행사의 개막식 보도는 하지 않았고, 폐막식 보도를 하면서 “태양절을 맞아”라고 전한 바 있다.
물론 김일성 생일 당일인 15일까지 좀 더 지켜봐야하겠지만, 북한이 김정일 시대부터 꾸준히 써온 태양절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경우 3대 수령인 ‘김정은 시대’를 넘어 4대세습까지 추구하는 북한에서 보기 힘든 변화여서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9일 김일성 주석 탄생 112주년 경축 중앙사진전람회 '인민의 어버이'가 개막했다고 보도했다. 2024.4.9./사진=뉴스1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통치이념을 세우려는 시도를 보여왔다. 김정은은 지난 1월 김일성 업적을 기리기 위해 평양시내에 설치됐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비에 대한 철거 지시를 내렸고, 즉시 이 기념비는 철거됐다. 이에 앞서 김정은은 2019년 금강산의 남측시설 철거를 지시하면서 김정일을 겨냥한 듯한 발언도 했다.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잘못된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한 것이다.
임기 초 할아버지 김일성 따라하기에 열심이던 김정은이 과감하게 선대의 업적을 폐기하는 것은 일단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핵보유국을 선언한 이후 북미 정상회담을 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고, 이제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도 관계 강화에 나선 상황이다.
김정은으로선 절호의 기회를 만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데, 달리 드러낼 기회가 없으니까 남북관계를 ‘2국가’로 규정짓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선대의 업적을 부정하는 무리수까지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태양절 호칭을 폐기한다면 그 역시 김정은의 호기를 보여주려는 일환일 수 있다.
그런 한편,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선대 지도자를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태양절, 광명성절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변화라는 분석도 나왔다. 고유환 전 통일연구원장(동국대 명예교수)은 “김정은이 자신의 선대이자 북한의 전임 최고지도자를 부정하는 일은 있을 수 없고, ‘4월 명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일 하루가 아니라 4월 한달간 명절로 지내기 위한 것으로 더 큰 의미 부여를 위해 호칭을 변경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태양절 호칭이 바뀌는지 여부는 김일성 생일 당일까지 지켜봐야 한다”면서 “태양절도 이전에 ‘민족 최대의 명절’로 불리다가 태양절이란 호칭으로 바꿨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로 40세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은은 아직까지 자신의 생일인 1월 8일은 기념하지 않고 있다. 특히 북한 당국은 아직까지 김정은의 생일을 국경일이나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아 정확한 날짜도 확인되지 않았다. 김정은 스스로 자신의 생일을 명절로 기념할 정도로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우상화가 덜 됐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일성은 56세였던 1968년, 김정일은 40세가 되던 1982년에 생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