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백지현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분간 현재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한은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통화정책방향회의(통방)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 수준에서 동결할 것이 유력시된다. 연준이 현 수준의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공식화한 데다가 국내 물가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한은의 금리인하 시점이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월 1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연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기준금리를 연 5.25~5.5%에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9월부터 이번까지 여섯 차례 연속 동결이다. 연준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선 선을 그었지만,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고 있다며 고금리가 장기화될 것임을 경고했다.
연준은 성명에서 “최근 몇 개월 동안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2% 목표를 향한 추가 진전이 부족하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이사회 의장도 “지금까지 데이터는 금리인하가 적절하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다”면서 “인플레이션 수치가 예상보다 높게 나왔고, 목표 수준에 이르기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물가 상황도 불확실성이 크다. 통계청이 이달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이 2%대로 내려온 것은 지난 1월 이후 석 달 만이지만, 여전히 국제유가와 과일 등 농수산물 가격 탓에 목표 수준을 크게 웃돌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된 점도 한은의 고심을 키우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8원 오른 1370.9원으로 개장한 뒤 횡보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일 장중 1400원대까지 뛰었다 외환 당국의 개입으로 다소 진정됐다. 하지만 중동 지정학적 우려와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발언으로 달러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리면서 한은의 인하 시점은 내년까지 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이후 여러 변수가 발생한 만큼, 금리 인하 시점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 총재는 지난 2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 참석차 방문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국내 기자단과의 간담회를 통해 “원점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금통위원이 새로 바뀌었고 4월까지 했던 논의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4월 통방 때만 해도 미국이 하반기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제로 통화정책을 수립했는데, 최근 주요국 통화정책과 우리나라 성장률, 지정학적 리스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전제가 달라져 통화정책방향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4월 통방 이후 지정학적 긴장, 특히 중동사태가 악화하면서 유가와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면서 “이 세 가지 요인이 우리 통화정책에 주는 함의가 크고, 현재 검토 중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지금 상황에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백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