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전기차 성장이 둔화되며 과도기에 접어든 가운데, 완성차 업계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캐즘존(대중화에 앞서 판매량이 주춤하는 현상) 타개를 위해 중저가 모델 출시에 나선다.
중국의 BYD(비야디)는 1300만 원대의 전기차 ‘시걸’을 출시하며 저가공세로 시장공략에 나섰다.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초기 반응과 달리 매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전기차 대중화에 일조할 수 있을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기아가 중저가 모델 EV3를 출시하면서 캐즘존 극복을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선다.
BYD의 전기차 모델 시걸이 베이징 쇼룸에 전시돼 있다./사진=AP
17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은 수요 둔화로 성장 정체기를 맞은 가운데, 최근 가격경쟁력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저가 모델을 출시해 소비자의 구매 문턱을 낮추는 것이 판매 경쟁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판단에서다.
해당 과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보인 브랜드는 중국의 BYD다. BYD는 비록 중국 시장 위주지만, 미국 테슬라의 글로벌 판매량을 압도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1~10월 전기차 시장에서 BYD는 총 237만 대를 판매하면서 글로벌 전기차 판매 중 41%를 차지하기도 했다.
최근 업계 내에서 전기차 판매가 주춤한 주된 이유로 고가의 가격대가 꼽힌다. 전기차 대중화에 인프라의 문제도 배제할 수 없지만, 앞서 차량 구매의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업계 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BYD는 이런 부분에서 큰 강점을 가진다. 자동차 구매 시장에서 큰 갈래를 쥐고 있는 미국과 유럽 시장 등을 제외하고 동남아와 남미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BYD는 이미 태국과 브라질, 인도네시아, 헝가리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며 해외시장 판로 개척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
이중 BYD가 출시한 시걸은 글로벌 공략의 첫 단추를 끼울 모델이 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걸은 1만 달러(한화 약 1300만 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장에서 초기 반응은 성능이 경쟁 차종 대비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저조한 판매가 예상됐다. 하지만 최근 손익 분기점을 상회하면서 가격 경쟁력 또한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입증했다.
◆업계 내 완연한 저가 트렌드…테슬라와 기아도 팔 걷었다
전기차 가격 인하는 업계 내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과제다. 업계 선두라고 평가받는 테슬라도 줄어드는 판매량 대책으로 가격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실제 테슬라는 모델Y의 가격을 낮추며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테슬라는 모델Y RWD(후륜구동모델)의 가격 인하 전략에 힘입어 수입차 판매량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여러 브랜드들의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의 선방은 소비자들의 소비트렌드에 가격이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아도 올해 전기차 시리즈의 3번째 모델인 EV3의 출시를 예고하면서 대중화 모델 경쟁에 뛰어든다. EV3는 기아 오토랜드 광명 EVO(이보)플랜트에서 다음 달부터 양산될 예정이며, 환경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적용한 실제 구매가격은 3000만 원 후반으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기아가 출시했던 모델인 EV6와 EV9은 프리미엄 성격을 띄면서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올해에는 EV3를 시작으로 출시될 EV2, EV4 등 저가형 대중화 모델들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기아는 EV시리즈의 라인업을 늘리는 동시에 접근성을 확대해 캐즘존을 타개한다는 복안이다.
기아의 대중화 모델에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배터리와도 연관돼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재 전기차 가격의 60%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에서 비용 절감을 모색 중이다. 저렴한 LFP(리튬,인산,철)배터리를 사용해 전체적인 가격을 내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곧 출시되는 EV3의 경우 업계에서는 LFP배터리보다 안정성이 우월한 NCM(니켈,코발트,망간)배터리를 탑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격적으로 인하된 모델임에도 NCM배터리가 들어간다는 것은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동차가 합작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배터리 공장(HLI그린파워)에서 공급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배터리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동시에 가격을 낮추게 될 경우 중국과의 글로벌 경쟁에서도 비견할만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NCM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원에서 LFP배터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캐즘존은 향후 4년은 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완성차 업계의 가격 낮추기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의 내연기관과 가격이 계속해서 같아지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아가 이번에 내놓는 차량들의 경우 NCM배터리를 사용한다면 확실한 이점을 가져가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시장에서도 배터리 환경계수라는 항목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판매량 확보에도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