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미미 기자] 정부가 국내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어린이용품과 전기제품 등 해외 직구(직접구매) 금지를 발표했다가,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한 발 물러난 모양새다. 유통업계에서는 C커머스(China+이커머스) 공습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규제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13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플랫폼들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해외 온라인 플랫폼 자율 제품안전 협약식'을 맺었다./사진=알리 제공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안전 인증(KC 인증)이 없는 해외 제품은 직구를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지만, 최근 소비자 반발이 거세게 일자 위험성 논란이 있는 제품에 한해 금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6일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일부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 금지도 방안의 일환이었다.
유모차와 완구 등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과 전기온수매트 등 전기·생활 용품 34개 품목은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가 금지되며, 가습기용 소독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은 신고·승인이 없으면 금지 대상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최근 정부는 소비자 여론은 물론 중소상공인 등 업계에서도 반발이 거세게 일자 위험성 논란 제품에 한해 금지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국내 소비자들의 연간 해외 직구 규모는 6조7000억 원에 달한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C커머스의 국내 유통 생태계 위협에 대한 조치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통업계는 보다 실효성 있는 국내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형마트 새벽배송과 의무휴업일 평일 변경 확대 등의 규제 완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건은 지난 16일 해외 직구 금지와 함께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도 포함됐다. 정부는 지난 1월 민생토론회에서도 ‘의무 휴업’과 ‘새벽배송 영업금지 제한’ 등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는 민주당에서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완화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유통업계는 2019년 이후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플랫폼 위주 산업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유통시장의 중심축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커머스(전자상거래)로 넘어간 만큼 대형마트에 집중된 영업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업계는 정부의 해외 직구 금지 정책이 소비자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역풍을 맞은 것이라며, 소비자 혜택을 늘리기 위해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핵심 이해당사자인 소상공인들도 동의한 바 있고, 지역 소비자 혜택이 늘어나는 만큼 국민들이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이라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국무조정실, 산업부, 중소기업벤처부, 슈퍼마켓연합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등 정부와 중소 유통업계 단체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시간(오전 0시~10시) 및 의무휴업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되, 대형마트 온라인 플랫폼에 전통시장 상품 입점 및 온라인 배송 수익금 기금 조성 등 상생을 강화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다만 유통법 개정안 논의가 21대 국회에서 미뤄질 공산이 커지면서 업계는 속이 타고 있다. 22대 국회 역시 야당이 압승하면서 개정안 통과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유통업계는 이번 해외 직구 관련 규제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해외에서 물품을 매입할 때 관·부가세는 물론 KC 인증 취득 비용까지 부담한다. 이에 따라 최종 소비자 판매가격도 직구보다는 다소 비싸질 수밖에 없다. 국내 플랫폼들이 이대로 초저가 공세를 벌이는 해외 플랫폼들과 경쟁하기에는 출발선부터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해외 업체에는 무관세 혜택과 환경인증 의무 면제 등이 적용된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점진적 규제는 플랫폼의 책임소재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언젠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플랫폼 가운데 다양하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구조다. 가격이 싼 곳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 현재 상황만 본다면 알리, 테무 등이 국내 업체들이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된 규제 조건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알리테무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회원 수는 이미 확보했고, 정부가 연일 관련 방침을 발표할 만큼 화제성도 충분하다. 현재 지적되는 문제점들은 자본력을 통한 인프라 구축으로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며 “중국 업체들이 시간을 두고 전문가들을 영입해 국내 유통업체와 같은 인프라를 깔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온라인 채널 한 관계자는 “정부가 현업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어느 한쪽만 유리한 것이 아닌 형평성 있는 규제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