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
‘유치원 유아교육’ 바우처 제도의 허와 실
1. 바우처 제도의 의의: 학부모의 선택권 확보와 공급자간 경쟁을 통한 ‘발견’
“한 아이를 기아와 영양결핍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무지로부터 보호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서는 음식과 옷을 확보하도록 보장하려고, 세금을 더 거두어 지역단위의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정부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더 나아가 행정적 편의 등을 이유로 집에서 가까운 급식소로 배정한다면 사람들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 그러나 그와 같은 가상적 조치들이 음식에 적용되면 이상하게 비칠지 모르지만, 이는 바로 국가교육체제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E. G. West, Education and the State, 1965, pp. 13-14)
위의 글을 인용한 까닭은 환자에게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몇 곳으로 제한한다면 대개 크게 반발할 것이지만, 막상 아이에게 중요한 공공교육에서는 이런 이상한 방식이 지배적인 유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해주는 학교를 선택할 수 없게 되고 학교도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해서 더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별로 없게 되다보니 국공립 학교의 또다른 문제점으로 저조한 학업성취도가 문제가 되었다.
공립교육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세금으로 마련되는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지원되다보니 말썽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그러나 일부 학부모가 원할 수도 있을 교육들이 제외된다는 점이다.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가 종교교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 사립유치원에 자기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가 공립유치원 학부모에 비해 더 많은 돈을 내는 것은 사립유치원 때문이 아니다. 사립유치원이 공립유치원에 비해 비싸서가 아니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공립유치원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런 문제를 완화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된 것이 바우처 제도이다. 학교바우처란 정부가 학부모들에게 제공하는 증서이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내기 않기로 결정한 경우, 이것을 사립학교 등록금의 일부 혹은 전부로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을 받은 사립학교는 이 증서를 제출하면 정부로부터 그 금액만큼 받게 된다.
이 제도는 하이에크가 주장한 것, 즉 “정부가 재정으로 특정 사업을 하더라도 그것을 반드시 국영기업이 공급하도록 할 필요는 없다”는 아이디어를 프리드먼이 공공교육 부문에 적용해 제안한 것이다.
학부모에게 학교선택권을 되돌려 줌으로써 학교도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공립학교 재정으로 지원될 세금을 내는 중산층의 경우, 이 돈을 내지 않았더라면 쌈짓돈을 조금 보태 좋은 사립학교에 보낼 수도 있었다면, 이들에게 바우처를 제공한다면, 이들은 이제 좋은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간 그리고 공립학교간 경쟁이 빚어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국공립학교는 학교부지와 건물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대부분 지원받지만, 재정면에서 불리한 대개 사립학교들이 이를 극복하고 학부모들이 보내고 싶어하는 명문학교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비용을 더 들여 더 훌륭한 교육서비스를 개발하고 이에 따라 학부모들이 국공립에 비해 높은 교육비를 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이다.
▲ 공립유치원 vs 사립유치원, (연간 유아교육예산) 항목별 세부 지원내역./자료=미디어펜 |
의료나 교육과 같은 서비스의 제공도 여타 재화의 제공과 마찬가지로 진료의 방법과 교육방식, 가격 등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될 때 소비자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어떤 새로운 방법이 더 적절한지 찾으려는 노력이 배가된다. 그 결과 어떻게 교육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소비자들의 필요를 잘 만족시켜주는지 계속 “발견”되어 갈 수 있다. 말하자면 하이에크가 말한 ‘경쟁을 통한 발견’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알려진 스웨덴도 이런 바우처 제도를 교육에 도입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육수요자들의 필요를 다른 학교에 비해 먼저 발견하고 이를 더 효과적으로 채우고자 하는 학교 간 경쟁이 불붙게 되었다. 이제 스웨덴에서는 학교 폭력을 방치하는 학교, 성추행을 숨겼다 발각되는 학교는 곧바로 교육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인성을 포함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잘 공급한다는 명성을 얻은 학교는 번성할 것이다.
2. 유아교육지원 바우처
우리나라에서 유아교육비가 바우처 방식으로 지원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일반인들, 특히 공무원들이 일종의 의무교육의 연장선상에서 공공교육의 일환으로 인식하다보니 자유로운 경쟁이 가져올 경쟁을 통한 발견의 혜택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송기창(2011)의 평가에 따르면, “유아교육계의 신화 중의 하나는 유아교육비의 바우처 방식 지원이다. 유아교육계의 자부심과는 달리 현재 시행되고 있는 바우처는 유아교육계 밖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바우처방식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하여 전자카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바우처 취지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송기창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이 유아교육비를 직접 학부모에게 지원하는 것은 교육기관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부여함으로써 유치원간 원아 유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에 의하면 첫째 학부모들이 대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치원이 충분하지 않고, 둘째, 유치원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으며, 셋째, 기관별 지원이 동일하지 않아서 국공립 유치원이 학부모로부터 받는 돈 이외에도 여타 재정적 지원(부지, 건물 등) 면에서 훨씬 더 유리해서 경쟁을 통한 발견이 잘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 저출산 추세로 인해 줄어드는 아이들, 하나 둘씩 비어가는 교실 상황은 대학교, 유치원에게도 해당된다. 교육시설과 인원은 그대로이거나 조금씩 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곳에 다닐 학생들이 없다. 급기야는 ‘인구절벽’이라는 말이 대한민국 사회에 드리웠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교육을 표방하는 교육부는 국민들 부담을 덜어주면서 저출산을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학생 수는 줄어들지만 관련 예산은 늘어만 가고 있다./자료=미디어펜 |
사실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세금으로 시민들에게 더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좋은데 자칫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늦은 시간까지 열람실을 개방해서 실질적으로 독서실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수영장 등을 지어 실제 운영비에 미치지 못하는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 인근의 독서실과 수영장이 문을 닫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주유소를 국가에서 운영해서 시중보다 싼 값에 휘발유를 팔았던 사례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이 주유소가 경쟁력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은 휘발유값 이외에도 세금을 더 내고 있는 셈이다. 만약 경쟁과정에서 이 국가 주유소가 살아남고 민간 주유소가 없어진다면 이는 발견과정의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3. 결론
실제로 경쟁을 통한 발견이 활발해지게 하려면 바우처 제도의 도입과 함께 최대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게 해주어야 한다. 유아교육을 일종의 규격화된 서비스 제공과 비용통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서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낼 좋은 교육서비스가 계속 발견되어 가길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근에 산부인과 의사가 없어서 산모가 죽는 일이 최근 강원도에서 빚어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건강보험제도 아래 어느 병원이든 소비자가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선택이 작동하지만, 전국민을 상대로 한 건강보험제도 아래에서 싼 의료가 수요를 부풀리기 때문에 비용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의료수가를 통제하다보니 산부인과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목숨이 달린 일인데 산모와 그 가족으로서는 건강보험에서 책정한 수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낼 용의가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그 산모는 죽고 말았다.
바우처제도가 들어온 유아교육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바우처 제도 도입 자체만으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립학교와 사립유치원들이 소비자들의 필요를 발견하려는 노력, 혹은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유인 자체가 없어지게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