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국가안보실이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를 열고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다음날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2일 열린 긴급 NSC 상임위원회가 밝힌 대로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GPS 교란에 대한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한 것이다. 정부의 이런 입장은 지난달 31일 통일부가 처음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란, 접경지역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관측된다. 2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관련 질문을 받고 “확성기 재개 문제에 대해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는 당연히 취해야 된다”고 답했다.
안보실이 이틀사이 상임위원회와 실무조정회의를 잇따라 열었고, 연이어 4일 국무회의에서 9.19 합의 전체에 대한 효력정지가 의결되면 지체없이 대북 확성기가 재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확성기는 강원·경기도 접경지역에 고정식 10여개, 이동식 장비 4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관련 조치를 바로 할 것이다. 북한에 분명히 시간을 줬다. 그것에 필요한 절차를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8일 촬영된 경기 중부전선의 대북 확성기. 2017.2.15./사진=연합뉴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4월 27일 1차 남북정상회담 결과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란 명칭을 갖고 있지만 9.19 합의가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과 달리 판문점선언은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남북관계발전법상 법률적 효력을 갖고 있는 합의서는 2018년 9월 19일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체결된 평양선언과 9.19 군사합의 2건 뿐이다. 국무회의에서 9.19 합의의 효력정지를 의결할 경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데 걸림돌은 없어지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 28~29일과 이달 1~2일 1000여개에 달하는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 여기에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GPS 교란 공격을 감행해 1482건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최종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를 결정하기 위해 대외적으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 대화)에서 마주한 미국과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치는 물론 대북 확성기 재개 논의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회담하며 북한의 오물 풍선 사태를 거론했다. 또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협의회에서도 5월 27일 북한의 4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규탄 및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강력한 대북 심리전 수단으로 꼽힌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만들어 외부 문화 유입에 경계하고 있는 지금 북한에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자마자 북한이 오물 풍선 살포를 중단한다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대북 확성기는 여러 대의 고출력 스피커를 동원해 방송 내용을 20~30㎞까지 전파할 수 있다. 그동안 주로 북한의 인권탄압 등 내부 실상을 다룬 뉴스와 대한민국 발전상,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면서 가요 등 K팝 등 한류 문화를 전파해왔다.
2일 오전 10시 22분께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떨어졌다. 사진은 풍선이 떨어져 박살 난 승용차 앞유리창의 모습. 2024.6.2. [경기남부경찰청 제공]/사진=연합뉴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난 1963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돼 40여년간 이어오다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 간 군사합의에 따라 중단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인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피격 도발, 2015년 북한의 지뢰 도발과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등 북한이 강력한 도발을 감행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재개된 바 있다.
9.19 군사합의 전체에 대한 효력이 정지되면 대북 확성기 재개뿐 아니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군사연습도 재개되고,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우리해군의 포사격훈련도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령도, 연평도 일대에서 우리 해병대 전력의 사격훈련도 정기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리군의 감시초소(GP) 복원에도 속도가 붙일 수 있다.
그만큼 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게 되므로 군의 경계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다만 정부가 확성기를 설치한 뒤 곧바로 대북 방송을 재개하기보다 일단 북한의 태도를 지켜볼 수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