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현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이 11일 “북한인권법이야 말로 북한 핵위협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며 자신이 10년전 처음 발의한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김문수 전위원장은 1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2차 한-호주 정경포럼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 같은 인권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인권개선은 남북관계의 그 어떤 주제보다 우선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래 글은 김문수 전위원장의 기조연설 전문이다. [편집자주] |
북한인권과 통일을 향한 나의 사명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김문수입니다.
대한민국과 호주의 정치·경제적 협력과 유대를 통한 공동번영과 세계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제2차 한-호주 정경포럼이 열리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뜻깊은 포럼을 주최하신 옥삼두 한-호주 정경포럼 회장님과 여러분, 오늘 함께하신 양국의 인사들께 감사드립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호주는 1만7천명이 넘는 장병들을 파병하여, 대한민국을 지켜 주었습니다. 339명의 장병들이 난생 처음 와 본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반도의 자유통일과 번영
올해는 한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70주년, 대한민국이 건국된지 6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반도가 분단된지 70년째이기도 합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자 전범국가의 책임 때문에 분단되었습니다. 그런 독일도 25년 전에 이미 통일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 힘이 없다는 죄 밖에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켜서, 중국과 베트남, 미얀마까지 침략하여 대동아공영권을 만든다며 수백만명을 살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분단되지 않고, 오히려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분단되었습니다. 가혹한 식민지와 분단에 이어 스탈린과 마오쩌뚱, 김일성, 국제 공산당 합작 6·25 남침전쟁으로 수백만명이 희생되었습니다.
▲ 김문수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은 11일 한-호주 정경포럼 연설을 통해, 국회에 북한인권법 통과를 촉구했다. 사진은 김문수 전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이 지난 1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연합뉴스 |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국가적 사명은 자유 민주주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2천4백만 북한 동포는 3대 세습독재와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김정은은 세습독재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자신의 고모부까지 총탄을 퍼부어 처형했습니다.
지난달, 대한민국은 북한의 지뢰도발로 야기된 군사적 초긴장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걱정을 많이 하셨겠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아시아 태평양은 물론, 세계 평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닿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주도의 한반도 자유통일이 시급합니다. 통일은 한반도와 7천5백만 한민족을 넘어 아시아 태평양은 물론, 전 세계가 자유와 평화, 번영과 희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북한인권법 통과
과거, 남북 공존과 평화를 모색하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북한은 뒤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같은 도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6자회담과 같은 외교적 노력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처럼 군사적인 타격을 가해서 핵개발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북한 주민 스스로 민주화와 개혁·개방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 같은 인권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개선은 그 어떤 주제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저는 북한인권법이야 말로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습니다. 호주는 매년 UN 차원의 북한인권 결의를 공동 제안국으로 주도하고 있으며, 올해 의회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토론하고 북한인권 발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인권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방대한 COI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마이클 커비 前COI 의장은 호주의 대법관 출신입니다. 지난 6월에는 UN의 북한인권 현장사무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습니다.
▲ 지난 7월 2일 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 간부들의 동요·이탈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
2004년에 미국 의회가 처음으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을 때, 저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미국 의회가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탈북 러시(rush)가 일어나면서 북한의 가혹한 인권실태와 국군포로, 납북자들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는 북한정권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5년 8월 11일, 북한인권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저는 미국 의회와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북한인권 실태와 인권법 제정 경위를 파악하고, 중국,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와 같은 동남아시아의 탈북자 현장도 방문했습니다. 2005년 1월에는 납북된 목사 사건의 진상규명과 중국내 탈북자 실태파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중국에서 열던 중에 중국 공안요원들이 난입하여 11시간동안 대치하기도 했습니다. 인권법 제정 이후에는 탈북자 강제송환 중단,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등을 촉구하는 4건의 결의안을 국회에 발의했으며, 여러차례 북한인권 토론회를 개최하고 북한인권자료집도 발간했습니다. 국회에서 북한 홀로코스트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시급한 북한인권법 통과
2009년 무렵 제가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고 하자, 등 북한인권 운동가들은 북한인권법 통과에 차질을 우려해 반대했습니다. 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8년간 도지사로 일하고 정치권에 돌아와 보니 10년전 발의한 북한인권법이 여전히 통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인권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인류의 보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나 명분에 의해서도 타협될 수 없는, 심지어 전쟁 중에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고귀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저는 북한인권을 말하면 남북의 화해와 평화가 깨진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위한 화해, 누구를 위한 평화입니까?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확산시켜 온 우방국들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군사독재 치하에 있었던 1970, 80년대, 외국의 인권단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저와 같은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인 지난 8월 8일 0시 인민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오른쪽부터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조남진 중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순으로, 왼쪽부터는 박영식 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노광철 부총참모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순으로 도열했다./연합뉴스 |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독재국가에서 피해자의 각성만으로 인권이 향상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핵무기가 김정은 체제를 영원히 지켜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인권을 탄압한 정권은 반드시 붕괴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인권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합니다.
북한인권과 통일을 향한 나의 사명
저는 대한민국이 군사독재 치하에 있던 1970년 대학생이 되어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대학에서 두 차례 제적을 당하고 25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제적된 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였습니다. 7년 동안 노동자로 살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구속돼 온갖 고문을 당한 뒤 2년6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캄캄한 감옥에 갇혀있을 때,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큰 희망은 없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이 바로 좌절한 북한동포의 미래의 희망입니다.
저는 1994년에 제도 정치권에 입문하여 3선 국회의원과 경기도지사, 대한민국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으로서 정치혁신을 주도한 바 있습니다. 제가 8년간 도지사로 일한 경기도는, 남북분단의 현장입니다. 임진강과 경기도 북부 지역에서는 북한 땅과 주민들을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헐벗은 북한의 산과 밤이면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땅을 바라볼 때마다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을 고통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습니다. 제가 2008년 최초로 탈북자를 공무원으로 채용한 이래 지금은 40명 이상의 탈북자가 경기도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저에게 남은 마지막 사명은 바로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로 인류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하고, 전 세계, 인류에게 희망과 복음이 되는 코리아를 저의 당대에 반드시 이룩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북한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위한 장정에 함께 합시다.
여러분의 큰 성원과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문수 전 새누리당 혁신위원장(현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