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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남이녀] 남녀 사이에 우정은 존재할까

2015-09-15 09:1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정소담 칼럼니스트

이성에서 온 여자 정소담
“우정이란 이름으로 오버하지마”

20년 넘게 드라마를 보며 자란 사람으로서 제목과 예고편만으로 ‘막장’을 골라내는 건 이제 일도 아니건만. ‘남녀 간의 우정’이라는 뻔하고도 솔깃한 주제에 낚이고 말았다. 하지원, 이진욱 주연의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

주인공 오하나(하지원)와 최원(이진욱)은 17년 된 친구사이다. 서른이 훌쩍 넘도록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하나가 남자한테 데이고 한밤중에 울며 전화를 거니 너 지금 어디냐며 원이가 달려간다.

연하의 여신이 데이트를 하자는 데도 팔이 다친 하나를 만나러 간다. 평생 같이 놀자는 말에 좋아서 입이 찢어진다. 맥주에 닭발을 뜯으며 재잘재잘 다정한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생일이면 따스한 영상 메시지를 보내준다.

나에게도 올해로 15년이 된 한동네 사는 친구놈이 있다. 사람에 데고 한밤중에 울며 전화를 거니 넌 또 취했냐고 한다. 여자 만나러 간다기에 그냥 나랑 놀자고 했더니 돌았냐고 한다. 평생 같이 놀자고 하니 그만 닥치란다.

닭발 뜯으며 웃긴 얘기 해준댔더니 됐으니까 거울로 지금 니 꼬라지나 보란다. 술이 들어가면 맨날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몇 년 전 생일엔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다며 찔끔댔더니 매년 생일마다 그 얘기를 끄집어내 사람을 약 올린다.

수 백 번의 밤과 수 천 병의 술이 있었음에도 특별한 역사가 이뤄지지 않은 걸 보니 남녀사이에도 우정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드라마가 그리듯 앙증맞은 모양새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인이 생겨 몇 달을 연락 한 통 없어도 우정이니 의리니 들먹이지 않는다.

우리는 가족 같은 사이라며 핏대 세울 일도 없다. 어차피 가족 말곤 다 가족이 아니다. 알몸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을 거라는 둥 쓸데없는 얘기까지 해가며 극구 손사래 칠 이유도 없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에 팍 늙도록 짝을 못 찾아 이방인과 새로운 모험을 해야 한다면 그땐 차라리 이놈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어떤 측면으로 봐도 과하지 않고 당사자들도 오버하지 않는 그 정도 선에서 남녀의 우정은 존재한다. 이 드라마에서 그리고 있는 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여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여자들이야 무심한 듯 챙겨 주는 ‘츤데레’한 ‘남사친’에 대한 환상이 있겠지만 남자들에겐 손해 보는 장사 아닌가. 남자란 내 것이 될 가망도 없는 여자에게 매일같이 공을 들일 이유가 없는 존재다.

남녀사이에도 우정은 존재하겠으나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다정한 관계란 남녀를 떠나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자도 밥 먹듯이 씹고 새벽에 전화하면 받지도 않는다. 연인이 생기면 그 쪽이 우선이고 아무리 불러도 귀찮으면 안 나온다.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도 그로 인한 피로를 감수할 필요도 없을 때 우정은 지속된다.

   
▲ 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은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두 남녀가 서른이 되며 겪게 되는 성장통을 그린 드라마다. 그리고 그 성장통은 결국 둘의 연애로 귀결됐다. /사진=대학생신문 바이트

그럼에도 세월이 쌓이면 존재 자체가 거대한 친절이 되기도 하는 법. 실연의 상처로 괴로워하던 나를 위해 보름 연속 내내 같이 술을 마셔주다가 다음날 아침 양치 중에 모든 것을 게워 내야했던 그날 저녁에도 친구라는 죄로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 또 술잔을 기울여 주었다.

조문을 가야하는데 조의금커녕 상갓집까지 갈 차비조차 없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 개월 무이자 대출을 해주었다. 새 옷에 실수로 안주를 들이부어 다시는 못 입게 만들어 놨으나 내게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았다. 엄마의 입원으로 오랜 병원생활을 해야 했을 때 한밤중에 불쑥 병원 로비로 찾아와 말없는 위로를 건네고 돌아간 밤이 셀 수 없이 많다.

다 됐고 이 글을 그 놈도 볼 테니 최대한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 이놈이 입을 잘못 뻥끗하면 입신양명은 고사하고 연애도 결혼도 내 인생에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곁에 있으며 손해 보는 장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친구 놈의 존재란 두 끼쯤 굶은 속에 들이붓는 소주만큼이나 뜨겁다. 그러나 총에라도 맞지 않는 한 내 입으로 이런 얘기를 하게 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 이원우 기자

감성에서 온 남자 이원우
‘남녀우정 가능론자’들에게 보내는 통한의 편지

‘남녀 간의 우정은 존재하는가’ 같은 허황된 물음에 심각하게 골몰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속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경기는 불안정하고 실업문제는 장기화되는 가운데 여야는 정쟁에만 골몰하고 느닷없이 창궐한 메르스에 전쟁을 방불케 한 남북대치 상황까지 우리 영혼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이 시국에 ‘남녀 간의 우정’이라니. 가치 있는 문제에만 천착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12년 정규교육의 목적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건 없다. 마침 얼마 전 어딘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간의 우정 같은 건 불가능하다.” 솔직히 이 문장에서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지 나로서는 납득불가지만 원고 분량이라는 것도 있으니 일단 얘기를 이어나가 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은 종종 불가능한 목표에 사로잡힌다. 명왕성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거나 영생불멸하고 싶다거나 이성과 친구가 될 수 있다거나. 이상한 환상에 사로잡혀 여자와 남자가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에 기꺼이 집중력을 할애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다. 우정(友情)이란 단어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에도 남녀 간의 우정을 그렸다는 드라마가 제작돼 혹세무민에 앞장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한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목이 '너를 사랑한 시간'이었던가. ‘오랜 시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두 남녀가 서른이 되며 겪게 되는 성장통을 그린 드라마’라는 게 이 작품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결말을 보니 그 성장통은 결국 둘의 연애로 귀결됐다. 아닌 게 아니라 친구관계를 표방하면서도 남녀 주인공은 웬만한 연인들도 하지 않는 닭살을 떨었다고 한다. 그래놓고도 사랑인 줄 몰랐다면 그런 정신으로 온전한 사회생활이 가능한지 나는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 생의 허무를 담배연기에 담아 내쉬었건만 2015년 서른 살의 클라쓰는 좀 너무 하는 것 아닌가.

극장가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2015년 1월에 개봉한 이승기·문채원 주연의 영화 ‘오늘의 연애’ 역시 유사한 주제를 다뤄보려다 한국영화의 질적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흥행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이런 영화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정은 사랑의 전(前) 단계가 아니다. 일련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을지도 모른다. ‘사랑인 줄 몰랐던’ 유체이탈적인 연기를 하느라 배우로서 두세 단계 도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자와 관객에겐 그렇지 않다.

세계 70억 인구 중에서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남녀가 단 한 쌍도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그런 예외적인 사례는 일반화될 수 없다는 거다. 세상에는 100미터를 9초에 뛰는 사람도 있고 철을 먹는 사람도 있다.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 이성을 가진 정상인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할 만한 건수가 전혀 못 되는 게 바로 ‘남녀 간의 우정’인 것이다.

아니면 마는 거지 뭐 이렇게까지 열을 내느냐고 물으신다면 이유는 있다. 이른바 ‘남녀우정 가능론자’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남자친구)와의 행복한 미래를 구상하며 하루하루 성실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는 사람들이다!

존 레논마냥 사해평등적으로 사랑하는 게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인간의 열정은 결국 한 사람을 위해 바쳐질 때 완전연소될 수 있는 것이다. 존 레논 역시 오노 요코에게 미친 남자였다. 부모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남자의 열정, 여자의 순정은 오로지 사랑하는 한 사람을 향할 때 가장 뜨겁게 타오른다. 돋보기로 태양빛을 모아 색종이를 태웠던 어린 날을 생각해 보면 된다.

남녀우정 가능론자들은 이렇듯 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는 에너지의 위대함에 찬물을 끼얹으며 ‘남녀 간의 사랑만큼이나 우정도 아름답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시전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본인들이 누군가에게 맹렬한 사랑을 집중해서 받아봤다면, 혹은 그런 뜨거운 사랑을 누군가에게 쏟아 부어봤다면 남녀 간의 우정 같은 신기루에 집착할 시간은 1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차라리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말하는 드라마가 낫다. 웃음이라도 주니까. 남녀 간의 우정 같은 괴이쩍은 설정에 골몰하고 있는 드라마 작가 님들이 아직도 계시다면, 당신의 작품은 은이요 침묵은 금임을 직시하는 것이 애국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부디 깨닫고 다른 주제를 물색해 주었으면 한다. /정소담 칼럼니스트, 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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