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노동개혁 논의를 지지부진 끌어온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13일 노동시장 개혁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사정위원회가 보여준 실망스런 태도가 국민들에게 우려를 끼친 것처럼, 이번 노사정 대타협 역시 ‘노동개혁’의 성공을 보증하지는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정기 국회 내 입법이 시급하지만 정쟁 흥정 대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16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시대적 결단, ‘노동개혁’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 방안을 모색하고 개혁 추친을 촉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노동정책연속토론회 제 10차 ‘노동개혁, 핵심은 빠졌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양분화 된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연동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노동개혁의 핵심이며, 청년고용절벽, 암울한 저성장 기조를 타파 할 노동개혁의 첫 걸음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발표자로 나선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표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
노사정위원회 : Enough is enough
▲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노사정위원회가 1년 동안의 협상을 거쳐 지난 9월 13일 발표한 노사정합의(?)는 최악의 합의이다. 지난 4월 협상을 결렬시키고 나간 노동계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은 노동계를 성토하고 어떤 언론은 파렴치한 행위라고까지 비난하였다.
과연 이런 성토와 비난이 타당한가? 우리의 노동법은 임금, 고용 모든 면에서 이미 취업한 근로자(인사이더)에게 매우 유리하고 직장을 찾고 있는 미래의 근로자(아웃사이더)에게 매우 불리하다. 기득권자인 노동조합원 입장에서 볼 때 백해무익한 노동개혁에 동의하라는 것은 노동조합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이다.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와 타협으로 노동개혁의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자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일지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17년간 노사정위원회 운영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순기능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corporatism)를 배격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corpus)로 보는 것이다.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모여 한 유기체를 형성하듯이, 개인이 기능적 동질성에 따라 협동체를 이루고 협동체가 모여 사회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근로자의 협동체인 노조의 대표와 고용자 연합체의 대표 그리고 정부의 대표가 모여 원칙을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場(venue)을 제공하는 것이 노사정위원회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는 사회의 목적 또는 협동체의 결정에 의해 억압되거나 제한되므로, 사회적 합의주의의 귀결은 전체주의이며 하이예크 말한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예종에의 길(road to serfdom)”이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개혁과 관련한 정부 합동브리핑을 갖고 “노동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이 같이 밝혔다./사진=미디어펜 |
9월 13일의 노사정합의는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부의 독자적인 노동개혁을 봉쇄한 노조의 완벽한 승리로 최악의 합의이다. 노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면서 합의문 곳곳에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라는 문구가 있다. 앞으로 노총은 실태조사 등 충분한 협의를 이유로 각종 회피 및 독소조항을 만들거나 지연시켜 노동개혁을 형해화(形骸化)하려고 할 것이다.
여당은 노사정위원회 합의를 기다리면서 직무유기를 위장할(camouflage) 것이다. 벌써 권성동의원은 “노사정 간에 충분한 논의를 하고 실태조사를 해서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안을 만들어야한다.”며 “그래야 국회에 넘어왔을 때 분란이 없을 것”(뉴시스 2015. 9. 14)이라고 노사정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합의 때문에 기간제법 및 파견법 개정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지난 1년 동안 협의하고 또 한다고 하니 Enough is enough. 이와 같이 노사정위원회는 태생적으로 합의를 명분으로 노동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개혁의 첫 단추는 노사정위원회의 형해화 내지 폐지이다.
노사정위원회의 대화와 타협과 같은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으로는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명확하게 판명된 지금 우리는 어떤 원칙에 따라 사회를 운영할 것인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시장에 의해 견제되고 조화를 이루는 시장경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노사갈등 사업장에 대한 입장”(2015. 9. 11)이라는 자료에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 한국델파이 등 임금 및 근로조건이 우수한 대기업의 노사갈등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노사가 다투기보다 서로 힘을 합쳐 경쟁력 제고를 하라고 도덕적 설득을 하였다. 적법한 노사분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도덕적 설득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런 우려스러운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위에서 제시한 노동개혁 과제인 대체근로가 인정되었다면 최고의 직장인 현대자동차에서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될 수 있었을까? 아마 파업을 들먹이는 노조 집행부를 몰아내고 회사 경쟁력 제고에 힘쓰는 집행부를 선임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와 정부의 역할은 자명해진다. 정부는 공정성 원칙이 잘 작동하도록 대체근로와 같은 법・제도를 정비하고 민간은 사적 자치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다.
▲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 위원장은 15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등의 국정감사에서 야당 위원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날 노사정위 외의 피감기관의 질의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사진=미디어펜 |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원한다면 전문가에게 개혁안의 성안을 일임하고 성안이 되면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노사정의 타협을 기다리다가는 엉뚱한 괴물이 나오거나 결렬되면서 개혁저항세력의 내성만 키우는 꼴이 될 것이다.
독일의 하르츠개혁은 2002년 2월 22일 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위원회는 독일 경총, 전경련, 노총, 야당, 여당인 사민당의 전통세력, 노동부를 모두 배제하고 15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Gaskarth 2014, p. 13). 불과 10개월 만에 개혁안의 확정 및 입법화가 진행되어 2003년 1월 1일 첫 번째와 두 번째 하르츠개혁이 시행되었다. 네 번째 하르츠개혁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 그해 가을 하르츠개혁을 주도한 슈뢰더 총리의 사민당은 선거에서 져 정권을 내주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노동개혁을 노사정의 타협에 미루는 것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최근 영국의 노동개혁도 노사정 타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와 집권당인 보수당(Conservative party)이 이끌고 있으며, 특히 경제, 혁신, 노동(business, innovation, and skills)을 통합하여 책임지고 있는 경제부 장관(business secretary)이 주도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법・제도라는 유인체계(incentive schemes)를 통해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노사정위원회라는 원칙과 현실에 안 맞는 기구를 통해 노동관련 유인체계를 짜려고 하고 있다.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노사정위원회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전면적인 노동개혁의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정부와 여당은 파급효과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위의 세 가지 개정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노사정 합의에 의한 노동개혁을 시도할 바에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것이 더 낫다. 특히 노동개혁은 영국의 대처개혁이나 독일의 하르츠개혁처럼 국가적 위기에나 가능하다. 아니면 지금 영국의 캐머론 총리와 같이 뛰어난 정치가나 국민을 설득하여 할 수 있다. /박기성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회원
참고문헌
Gaskarth, Glyn. The Hartz Reforms ... and their lessons for the UK. Surrey, UK: Centre for Policy Studies, 2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