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와 신학림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부산저축은행 수사 관련 허위 사실을 보도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해 올해 초 3000여명의 통신이용자정보를 대거 조회한 사태의 여파가 만만치 않다.
통신이용자정보 조회 자체는 가입자의 착발신 통화내역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특정 전화번호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는 차원이지만, 가입자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 등을 담고 있어 예민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문제는 검찰이 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회했고, 이 통신이용자정보 3000여건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켰느냐 여부다.
조회 시점과 통보 시점도 문제다. 검찰은 지난 4월 총선을 3개월 앞에 두고 1월 4~5일 대대적인 조회를 감행했다. 7개월이 지나서야 조회한 사실을 개인 당사자들에게 일괄 통보한 것이다.
통신이용자정보가 대거 조회된 의원·보좌진·당직자들이 많아 사태의 중심에 놓여 있는 민주당은 5일 이번 사태를 '불법적 정치사찰'로 규정하고 격앙된 목소리를 쏟아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이 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4.8.2.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과 야당 탄압에 눈이 멀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느냐"며 "검찰은 이재명 전 대표가 암살 미수 테러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시기에 통신 사찰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찬대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과거 언행을 언급하면서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통신자료 조회에 대해 '불법사찰은 게슈타포나 할 짓'이라고 말했던 당사자"라며 "그 말대로라면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게슈타포가 판치는 나치 정권"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 또한 이날 "국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위협하는 중대 사건"이라며 "부당한 사찰 행위를 강력 규탄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민보협은 이날 낸 성명을 통해 "검찰이 수사 명목으로 야당 의원과 보좌진들을 무차별적으로 통신조회한 것은 과거 군사정권의 공안통치를 떠올리게 하는 행태"라며 "검찰이 구체적인 혐의나 특별한 사유도 없이 광범위하게 시행한 통신조회 사실을 7개월이 지난 후에야 통지한 데는 검찰의 부당한 수사권 남용 및 총선 개입 의도를 강력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주말 사이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중앙지검은 4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통신가입자 조회사실 통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검찰이 실시한 조치는 피의자 등 수사 관련자들과 통화한 것으로 확인되는 해당 전화번호가 누구의 전화번호인지를 확인하는 '단순 통신가입자 조회'"라고 밝혔다.
중앙지검은 "이를 통해 확인되는 정보는 가입자 인적사항과 가입·해지일시 정도였다"며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법원의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적법하게 통신 영장을 집행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찰이나 표적 수사라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통신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와 일부 참고인들 이외에는 '통화기록'을 살펴본 사실이 전혀 없으므로, '검찰이 수천 명의 야당 국회의원과 언론인의 통화 기록을 들여다봤다'는 야당 논평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통신영장을 집행해 분석했는데 '통신사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악의적 왜곡"이라며 "관련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고, 단순한 수사 관련자의 지인이라 하더라도 통신 수사 중인 사실과 수사 목적이 알려지면 증거인멸 우려 등이 있어 법정 통지유예 시한에 맞춰 통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 1월 초 가입자 정보를 조회하고서 7개월 만에 이를 통지한 이유로 '관련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본보의 취재에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통신가입자 조회 사실을 30일 이내에 통지해야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두 차례에 걸쳐 각 3개월의 범위에서 통지를 최대한 유예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이 마구잡이로 대거 조회한 것이 아니다"라며 "현행법상 통신조회 사실을 당사자에게 고지하는 시점을 최대 7개월까지 유예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적법 절차를 밟아 조회하게 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과 관계없는 것으로 보이는 통화 상대방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단지 통화내역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입자를 조회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국회는 지난해 12월 통신자료 조회시 30일 이내에 당사자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검찰의 이번 통보는 법 시행(2024년 1월 1일)하자마자 처음으로 시행한 조회에 따른 것이다.
결국 최대 7개월까지 조회사실 통보를 유예한 검찰의 판단이 적법할지 여부는 향후 법원의 판단으로 넘어갈 전망이다.
현행법상 수사목적상 필요한 경우 검찰 등 수사기관이 통신정보 조회를 활용할 수 있지만, 검찰이 3000여명에 이르는 조회 기준을 어떻게 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검찰이 통보 시기를 최대한 유예해 늦춘 점 또한 비판받는 대목이다.
이재명 전 대표 등 의원 12명과 보좌진, 당직자 등 전방위로 통신조회된 민주당은 적법절차를 문제 삼아 이번 사태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해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문제를 당 검찰독재정치탄압위원회 차원에서 다루기로 했다"며 "당 법률위에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의 혐의가 없는지 법적으로 대응하고 사무총장이 지휘해서 전수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지난 1월 통신 조회가 이뤄진 사실을 (유예기간이 나닌) 법적기한인 30일을 넘긴 8월 초 통지한 것이 적법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향후 민주당 법률위가 전수 조사 결과를 비롯해, 어떤 결론을 내리고 후속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검찰의 대응 여부에 따라 이번 사태는 법원의 판단까지 필요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