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회장직 임기를 수행 중일 당시, 우리은행이 손 회장 친인척 법인에게 42차례에 걸쳐 616억여원에 달하는 자금을 내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350억원 규모의 대출 28건은 서류·담보가치 등에 수상한 점이 많았음에도, 우리은행이 이를 묵인하고 '프리패스' 식으로 부당하게 대출을 내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회장 지배력을 의식해 은행이 부당하게 대출을 내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허위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회장직 임기를 수행 중일 당시, 우리은행이 손 회장 친인척 법인에게 총 616억여원에 달하는 자금을 부당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우리금융그룹 제공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해 "통렬히 반성한다"며 부실대출의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 제도개선을 조속히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11일 금감원 및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2020년 4월 3일부터 올해 1월 16일까지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차주에게 616억원(42건)의 대출을 실행했다.
해당 대출을 살펴보면 친인척이 회사의 전직·현직 대표로 있거나 대주주로 등재된 사실이 있는 사례가 454억원(23건, 11개 차주), 원리금 대납사실 등을 고려할 때 친인척이 대출금의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법인 및 개인사업자 사례가 162억원(19건, 9개 차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 중 다수는 지역본부장 A씨의 주도로 취급됐는데, 실제 회장이 본격 지배력을 행사하기 전에는 우리은행에서 내어준 대출이 5건(4억 5000만원)에 불과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이들 대출 중 28건(취급액 350억원)에서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 과정에 통상의 기준·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절하게 취급된 점을 파악했다. 특히 지난달 19일 기준 대출 19건(잔액 269억원)에서는 이미 부실이 발생했거나 원리금을 연체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은행은 7월19일 기준 총 304억원(16개사, 25건)의 대출잔액이 있으며, 이 중 269억원(13개사, 19건)이 1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 중이거나 부실화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검사 이후인 9일 현재 대출잔액은 총 303억원(16개사, 25건)이며, 단기연체 및 부실 대출 규모는 198억원(11개사, 17건)이다. 우리은행은 담보가용가 등을 고려할 때 실제 손실예상액은 82억~158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건 구조도./자료=금융감독원 제공
회장 입김 의식했나…허위서류 제출 등 기본 여신심사 소홀
부적정하게 취급된 대출사례는 △서류 진위여부 확인 누락 △담보·보증 부적정 △대출심사절차 위반 △용도외유용 점검 부적정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우리은행은 대출을 내어줄 때 별도의 서류 진위여부를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이 검사과정에서 밝혀낸 내용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차주가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별도 사실 확인 없이 대출을 실행했다.
우리은행은 A법인 대상 부동산 매입자금대출(1차대출) 및 해당 부동산 리모델링공사자금 대출(2차대출)을 연달아 취급했다. 1차대출 실행 후 차주가 제출한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해당 부동산 실거래가(20억원)는 차주가 대출을 신청할 때 제출한 매매계약서 상 매매가격(30억원)에 크게 미달했다. 그럼에도 은행은 관련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2차대출을 추가로 내어줬다.
또 은행이 C법인 대상 30억원 규모의 '거래처 대금지급 목적' 대출 관련 용도외유용 점검에 나섰을 때 차주는 해당 대금의 지급증빙으로 비정상 전자(세금)계산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은행은 관련 추가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울러 당국은 담보가치가 없는 담보물 담보설정, 보증여력이 없는 보증인 입보를 근거로 대출을 취급한 사례도 적발했다. 사례에 따르면 D법인은 대출신청 당시 사실상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여기에 D법인은 이미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돼 가용가액이 전무(全無)한 부동산을 담보로 설정했는데, 은행은 이를 근거로 D법인의 신용도를 상향 평가하고 20억원의 대출을 내어줬다.
E법인의 경우 은행이 기존 대출도 상환하지 못했다는 이력을 인지했음에도, 보증여력이 부족한 대표이사를 보증인으로 입보했다는 이유로 3억원의 신용대출을 내어줬다.
대출취급 심사 및 사후관리과정에서 본점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지점전결로 임의처리한 사례도 두루 확인됐다. 은행 측은 F법인이 받은 기존 대출이 신청목적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된 점을 발견해 회수조치한 바 있다. 이에 F법인에 추가 대출을 내어줄 경우 '본점 승인'을 거쳐야 했는데, 해당 지점은 이를 무시하고 '지점전결'로 추가 대출을 내어줬다.
G법인도 신용등급을 고려할 때 대출을 받으려면 본부승인이 필요했는데, G법인에 대출을 내어준 지점은 근거 없이 신용등급을 상향 평가한 후 지점전결로 대출을 내어줬다. 사후 신용등급 재평가를 통해 본점의 사후승인이 필요한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외 H법인은 9억원 규모의 '물품구입목적' 대출을 받았는데, 은행이 용도외유용을 점검할 때 물품구입대금의 실제 입금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이에 H법인이 대출금을 악용한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
우리은행 "관계자 엄정조치…내부자신고채널 확대할 것"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에 대해 "당행을 이용하시는 많은 고객 및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송구한 마음"이라며 "여신심사 소홀 등 부적절한 대출 취급행위가 있었던 데 대해 통렬하게 반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부정대출 연루자를 엄정 조치했음을 시사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1분기 중 1차 자체검사를 통해 부실 발생에 책임이 있는 관련 임직원 8명을 면직 등의 조치를 취했다. 사례에서 적발된 해당 본부장(전 선릉금융센터장)은 면직 및 성과급을 회수했고, 관련 지점장 등은 감봉처리했다.
또 우리은행은 1~2차 자체 검사 결과 및 검사 대응과정에서 파악한 사실관계 등을 토대로 부실여신 취급자에 대해 사문서 위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당국에 지난 9일 고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은행은 부정 대출이 취급된 원인에 대해 "특정인에 의한 지배관계를 대출 취급 전 파악하기가 사실상 어려웠다"며 "영업점장 전결여신을 이용한 분할대출 취급과 담당 본부장의 부당한 업무지시, 대출 차주의 위조서류 제출 등 여신심사 절차가 소홀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내부 여신심사 과정이 취약했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에 우리은행은 사고재발방지 및 제도개선에 나설 것임을 약속했다. 우선 내부자신고 채널 확대, 반복적 여신심사 소홀 영업점장에 대한 여신 전결권 제한 및 후선배치, 여신 사후관리 등을 약속했다.
또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기존 여신의 회수 및 축소, 여신 사후관리 강화 등으로 부실을 축소하고, 내부 직원 윤리교육도 강화할 것임을 알렸다. 이 외에도 감독당국 및 수사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금감원 수시검사에서 추가로 발견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검사결과에 따라 엄정 조치할 것임을 시사했다.
금감원 "엄중·심각하게 인식…지배구조·여신프로세스 반영할 것"
한편 금감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지주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행 체계에서 지주 및 은행의 내부통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향후 금융관련 법령 위반소지 및 대출취급 시 이해상충 여부 등에 대한 법률검토를 토대로 제재절차를 엄정하게 진행할 것"이라며 "검사과정에서 발견된 차주 및 관련인의 허위서류 제출 관련 문서 위조,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또 '지주·은행 지배구조 제도 개선' 및 '여신프로세스 개선'에 이번 검사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