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노태우 대통령 7건, 노무현 대통령 6건, 이명박 대통령 1건, 박근혜 대통령 2건, 윤석열 대통령 19건. 현 1987 헌법-제6공화국 체제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국회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횟수다.
지난 12일 윤대통령은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 '방송 4법'(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제6공화국에서 이전 대통령 4명이 행사했던 16건을 넘어섰다. 윤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후 2년 3개월간 19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더해,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정부로 이송된 '전국민 25만원 지원법'(민생회복지원금특별조치법 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이 두 법안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20일까지다.
취임한지 2년 3개월 만에 거부권을 21차례 행사하는 것이 임박한 셈이다.
현재의 제6공화국 이전에는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11년 8개월 간의 재임기간 중에 총 45건의 거부권을 행사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5차례 행사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윤대통령이 아직 임기의 절반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1건의 거부권 행사가 유력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과의 대립각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승만 대통령의 기록 45건을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대통령실 국무회의실에서 2024년도 제33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4.7.30. /사진=대통령실 제공
관건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들을 더 강화해 재발의하는 민주당의 입법 스탠스다. 이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22대 국회가 출범하자마자 민주당의 1호 당론으로 올려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회의에 통과시킨게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대표공약인 '전국민 25만원 지원법'이다.
당장 민주당은 오는 20일 내에 윤대통령이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당론으로 채택한 다른 법안들을 재차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야당 주도의 단독처리→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국회 본회의 재의결→법안 폐기→야당 주도 재발의라는 '악순환 정국'이 계속해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윤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횟수는 쌓여갈 것이 유력하다.
이승만 대통령 당시의 제1공화국과 윤대통령을 비롯한 현재의 제6공화국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배경을 비교하면, 유사한 점이 읽힌다.
바로 '여소야대'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14일 본보의 취재에 "법률안 거부권이 집중적으로 행사된 제1공화국이나 최근의 상황을 함께 놓고 보면 대통령과 국회 간 갈등이 많았던 시기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다만 우리나라에서 미국 대통령제에 비해 법률안 거부권 행사가 많지 않은 이유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입법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배경 때문에, 제1공화국과 최근을 제외하면 거부권이 많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국회 입법권에 대한 간섭으로 간주되어 정쟁을 격화시키는 경우가 있었지만, 여소야대 현상으로 인해 정부 정책과 부합하지 않는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을 막기 위하여 행사되는 사례가 대다수였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영수회담을 시작하기 직전, 악수를 하고 있다. 2024.4.29 /사진=대통령실 제공
다만 그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호불호'가 치열하게 엇갈리는 등 극단적으로 나쁘거나 좋게 볼건 아니다"라며 "거부권은 분명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이긴 하지만 절대적 거부권이 아니라 한정적 거부권이다. 국회가 해당 법률안을 다시 재의결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 확정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국회에서 재의결해 통과시키면, 국회의 의사대로 법률을 관철할 수 있다"며 "결국 최종적으로 '여소야대'는 거부권 행사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제6공화국에서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13건 모두 여당이 원내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던 시기"라고 밝혔다.
오는 8월 국회에서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한우산업전환및지원에관한법률 재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고, 입법 추진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2번째 재표결 후 폐기된 채상병특검법, 김건희특검법, 상임위에 계류 중인 민주유공자법 또한 현 대치 정국을 악화시킬 변수로 꼽힌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윤대통령은 당분간 계속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