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던 소비자들도 다시 내연기관차나 하이브리드차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전기차는 위험하고, 아직 이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관련 산업 위축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대한민국을 떠들석하게 한 화재는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께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던 벤츠 EQE 세단 전기차에서 시작됐다. 이 불로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고, 지하에 주차된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93대가 그을리거나 분진 피해를 입었다. 주차장 내부의 수도관과 설비들이 녹아내려 단전·단수가 발생해 현재 입주민 500여 명은 임시거주시설 6곳에 머물고 있다.
재난에 가까운 피해 수준에 인천시와 서구,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행정안전부에 전기차 화재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소관 부처인 행안부는 난색을 표했다. 인명·재산 피해 정도, 관할 지자체의 재정 능력 등을 감안할 때 재난 수습이 곤란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행안부는 지난 14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전기차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수습 상황을 점검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피해 주민을 만난 자리에서 "재난구호금과 재난안전특별교부세 등 금전 지원도 추가로 검토하겠다"며 "특별재난지역 선포와 관련해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0조에 따라 자연·사회 재난 발생으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 경감을 위해 국비를 추가로 지원하는 제도다.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거나 지자체장이 요청하는 경우 31개 부처 위원으로 구성된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 후 대통령 재가를 거쳐 선포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자체는 해당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 복구비의 일부가 국비로 전환돼 재정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피해 주민은 국세·지방세, 건강·연금보험료, 통신·전기요금 등의 경감 또는 납부유예 혜택을 받는다.
피해자들은 넘쳐나는데 이를 제대로 수습할 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화살은 전기차를 출시하는 모든 완성차업체에게 쏟아졌다. 국민들은 배터리 제조사를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터리 제조사를 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화재 예방 대책이 미비하고 화재 후 수습이 아쉬운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 부처 차관급 회의를 열고 국내에서 전기차를 파는 모든 제조사에 배터리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소방 시설 긴급 점검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선제적 대응이 필요했다는 아쉬운 소리가 나온다. 전기차 화재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거론돼 왔다. 정부도 제조사도 모두가 입을 모아 이제는 전기차 시대라고 외쳤지만 법과 제도는 아직 완비되지 못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전동화 전환은 필연적인 흐름이다. 이를 거스를 수 없다면 삐걱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배터리, 충전시설 등 전기차와 관련된 제반 사항들을 총점검할 시점이다. 제조사들은 체계적인 기술 개발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한 보조금 정책이 아닌 국민의 안전을 우선한 대책을 내놓을 때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향후 실현 가능성,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