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인혁 기자]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한 대표는 최근 인선을 마무리하며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당내 최대 세력인 ‘친윤’과 채상병특검법으로 부딪히며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 1호 공약으로 내세웠던 채상병 사망사건과 관련한 제3자추천특검법 발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오는 25일 예정됐던 양당 대표회담이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연기돼 실무협상도 일시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대표회담과는 별개로 한 대표에게 채상병특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대표 1호 공약도 안 지키는 것이 새 정치인가. 말 바꾸기와 잔기술은 새 정치가 아니다”라면서 한 대표가 공약한 제3자추천특검법 발의를 재촉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 발의 시한을 오는 26일까지로 정한 만큼 결단을 서두르라는 것이다. 이는 한 대표를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2일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한 대표는 제3자추천특검법 추진을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윤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장애물은 채상병특검법에 반대하는 당론이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선 수사 후 특검’이라는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채상병특검법이 사건의 진상규명보다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 수사의 목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한 대표가 특검법을 추진하려면 당론 수정을 위한 설득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당론 결정에 키를 쥐고 있는 추경호 원내대표와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모두 특검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수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만약 특검법 공약을 번복할 경우 한 대표는 당정관계 재정립에 실패하게 된다. 앞선 당대표들과 같이 대통령실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한 대표는 ‘용산 출장소’ 또는 ‘꼭두각시 당대표’로 전락해 대권 주자로서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 한편, 친한계 의원들을 결집해 제3자추천특검법 발의를 강행하는 것도 한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국회법상 동료 의원 10명 이상이 서명하면 법안 발의가 가능하다. 친한계 의원들이 20여 명에 달하는 만큼 물리적으로 법안을 발의하고 야권과 함께 이를 통과시키는 것은 한 대표의 결정으로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이는 당론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내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친윤계는 윤 대통령과 전면전을 선포한 한 대표의 탄핵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친윤계는 이준석 전 대표가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와 대립하자 의원총회에서 탄핵을 결의한 바 있다. 또 안철수 의원이 채상병특검법에 찬성표를 행사한 것에 당론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추진했던 전례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친윤계가 세력이 약해졌다고 해도 대통령이 있는 한 당내에서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라며 “한동훈 대표가 특검법을 강행해 윤 대통령과 전면전을 선포한다면 탄핵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도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한 대표가 친한계로 분류되는 20여 명의 의원들로 특검법을 발의하고 야당과 함께 통과시킬 수는 있겠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라며 “추 원내대표가 반대하는 한 국민의힘에서 자체적인 안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대표가 리더십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채상병특검법에 대해 조속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최인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