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무림의 고수들이 숨은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실력을 겨루는 것은 자신이 최고임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고수를 찾아 무술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나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얼치기 고수는 자신이 최고임을 입증하기 위해 겨루지만 진정한 고수는 자신을 이길 자가 없다는 자만을 깨뜨리기 위해 고수를 찾는다고 한다.
골프의 세계도 무림의 세계와 비슷하다. 어설픈 골프 고수는 자신이 싱글 골퍼임을 과장해서 떠벌리고 하수들을 만나면 얕보거나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골프의 진수를 깨달아 가면서 골프에 대해 아는 체 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무르익어 갈수록 말수가 줄고 골프깨나 친다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겁난다.
모처럼 이런 골프 고수를 만났다. 어느 동문모임이었는데 우연히 골프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말을 가로채기에 바빴다. 한참 얘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한 분이 조용히 자신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상사로부터 골프를 배우라는 말을 듣고 그게 뭐 힘들까 싶어 게으름을 피우다 상사와 함께 라운드를 한 뒤 혹독한 창피를 당했다.
연습장을 부지런히 다녔는데도 필드에서는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라운드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습장에 등록한 뒤 연습에 매달렸다. 하루 1,000개 이상 쳤다. 퇴근이 늦을 때는 연습장 문을 닫는 심야에도 주인에게 열쇠를 받아내 혼자 연습하곤 했다.
그러기를 2년 정도 하자 완전한 싱글이 되었다. 골프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며 콧대를 세우던 선배들을 하나하나 꺾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 골프는 무림의 세계와 비슷하다. 어설픈 골프 고수는 자신이 싱글 골퍼임을 과장해서 떠벌리고 하수들을 만나면 얕보거나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골프의 진수를 깨달아 가면서 골프에 대해 아는 체 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무르익어 갈수록 말수가 줄고 골프깨나 친다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겁난다./삽화=방민준 |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대문을 두드리며 사정사정 했지만 아내의 닫힌 마음은 아무리 뛰어난 열쇠공이라도 열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며칠 친구 집에 있다가 겨우 집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골프와 결별할 수는 없었다.
이후에도 골프 때문에 몇 번의 이혼 위기를 맞았으나 우여곡절 끝에 아내를 골프에 입문시켜 골프의 묘미를 깨닫게 한 뒤에야 골프로 인한 긴장관계를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거의 언더 파를 치는데 5언더가 목표라고 했다.
한창 골프에 빠진 후배가 비법을 묻자 “연습은 기본이니 죽자 사자 연습 한다고 치고 다섯 가지만 말하겠다.”며 자신의 팁을 털어놓았다.
첫째 스윙 할 때 왼쪽 어깨는 수평이동을 유지하도록 한다. 볼을 정확히 맞히기 위한 방법이다.
둘째 백스윙은 타원형의 호를 그릴 수 있지만 다운스윙 때는 직선형으로 낙하하도록 한다. 그래야 헤드스피드가 높아지고 파워가 붙는다.
셋째 클럽을 잡은 양손이 볼과 만나는 순간을 중심으로 확실한 로테이션(회전)이 이뤄지도록 하라. 역시 헤드스피드를 가속화하는데 지름길이다.
넷째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볼을 친다는 이미지를 가져라. 임팩트를 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섯 째 거리는 힘보다는 부드럽고 확실한 팔로우 스윙이 만들어낸다는 믿음을 가져라.
골프깨나 친다는 내가 들어도 금과옥조 그 자체였다.
골프란 가정사를 잊고 아내에게 쫓겨날 정도의 몰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선 결코 얼치기 고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