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아버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를 계승하지 않고 노동당을 앞세운 ‘당정정치’를 하는 이유는 사회통제에 주력하기 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이 북한주민들의 불만으로 야기될 수 있는 내부 혼란에 대비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지난해 11월 국내에 입국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참사의 증언이다.
리 전 참사는 26일 ‘미디어펜’과 만나 “김정은은 외부의 군사위협보다 내부 붕괴를 더 두려워한다”면서 “과거 김정일이 ‘당은 무너지면 복구되지만 군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한 반면, 김정은은 ‘당의 영도를 받지 않는 군대는 필요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로 김정은은 ‘우리는 절대로 외부침입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무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무너질 작은 가능성은 내부 붕괴’라고 했다”고 밝혔다.
리 전 참사는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한 것은 1990년대 동구권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선택한 통치법”이라면서 “김정은 입장에선 주변정세의 위기 대신 주민불만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도 허용했던 장마당을 통제하고, 한국드라마 등 외부정보 유입 단속에 혈안이 돼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김정은의 사회통제 강화에도 북한주민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리 전 참사는 “아무리 외부세계와 차단돼있는 북한주민들이지만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며 “김씨 일가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김정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에 대해선 북한주민들은 소위 ‘이민위천’(백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주민을 위하는 통치를 펼쳤다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또 김정일은 선군정치로 군부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노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반면 김정은은 주민들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참사. 2024.7.23./사진=연합뉴스
리 전 참사는 그렇다고 해서 김정일과 김정은의 리더십이 다른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김정일도 젊은 시절 후계자로 확정되기 전까지 수많은 간부들과 사람들을 즉결 처형할 정도로 포악했지만 병들고 나이를 먹으면서 유해진 측면이 있다. 지금 김정은의 모습은 70~80년대 김정일의 모습 그대로”라고 말했다.
단지 두 사람이 다른 점을 꼽으라면, 김정일 곁에는 현철해(전 국방성 총고문)라는 조언자가 있었지만 지금 김정은 주변엔 현철해 정도의 조언자가 없다고 했다. 김정일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현철해의 조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평가되는 여동생 김여정이나 조용원 당비서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북한에서 2020년 만들어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김정은이 주민통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리 전 참사는 “지금 북한 전국 곳곳에서 한국드라마 등 외부영상을 접하는 주민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그런데 평양주민들은 ‘평양에서 추방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당적처벌로 통제가 되지만 이미 평양 밖에서 이등시민·삼등시민으로 살아가는 지방주민들에겐 ‘추방’이나 ‘당적 박탈’ 등 당적처벌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김정은이 말도 안되는 법을 제정해서 법적처벌로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리 전 참사는 “김정은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든 이유는 지방의 민심이반을 다루기 위한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금지한 ‘TV’ ‘주민’ ‘어르신’ 등 남한 말투를 맗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남한 방송을 많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주민들 거의 모두가 남한 방송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이 특히 군사활동에 동행하고 있는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리 전 참사는 “사실 처음엔 김주애를 후계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보지 않았다”면서도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김정은에게 김주애보다 어린 나이의 아들이 있다는 말은 확실히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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