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신규 주택담보대출이 지난 12일까지 약 2조 2000억원 확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월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던 8월 8조 9115억원 대비 증가세가 크게 둔화했는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조치, 은행들의 자체 대출규제 등이 어우러진 덕분이다.
다만 주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주담대 증가세는 가팔라진 것으로 나타나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은행권에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0.50%p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한 만큼, 우리나라도 추후 기준금리를 인하해 향후 주담대 추이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8월 신규 주택담보대출 공급액이 약 12조 4370억원으로 집계됐다. 시계열 기준 통계를 작성한 지난 2011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9월 주담대는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 은행들의 자체 대출규제 등에 힘입어 지난 12일까지 2조 2000억원대 확대되는 데 그쳤는데, 여전히 증가폭이 상당한 모습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전세대출 포함)은 12일 현재 570조 838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568조 6616억원에 비교하면 약 2조 1772억원 늘어난 실적이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한 지난달 8조 9115억원에 견주면 증가세는 다소 둔화된 모습이다.
이는 은행권이 가계부채 확대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주담대 금리 인상 및 한도·만기 축소,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등의 초강력 조치를 내놓은 까닭이다. 여기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을 앞두고 '대출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기저효과'를 보인 점도 영향을 줬다.
다만 주간 기준 주담대 증가 폭은 오히려 확대됐다. 이달 5일까지 5대 은행 주담대는 약 8835억원 증가했는데, 6일부터 12일사이에는 약 1조 2937억원 늘었다. 이달에만 약 2조 1772억원 늘어난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 9월 초에 신규로 집행된 것들은 다 8월까지 대출승인을 받은 것들이다"며 "9월 2일부터 DSR 2단계 규제가 시행됐으니, 직전에 했던 것이나 8월에 이미 승인받은 것들은 예전 정책대로 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소 9월 중하순은 지나야 그 정책(은행들의 대출규제)의 효과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실제 오프라인 접수도 예전보다 줄어든 만큼, 9월부터 신청건수는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부연했다.
대출공급액은 실제 대출자가 잔금을 치르는 날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금리 및 대출한도 등은 대출자가 은행에 최초 대출을 신청할 당시의 조건을 반영하다 보니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당국의 스트레스 DSR 2단계 정책과 은행들의 대출규제책들이 본격 시너지를 발휘해 대출공급액에 영향을 줄 시점은 적어도 9월 중하순께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주담대는 주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지역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지역 아파트 선호현상이 지속돼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고, 궁극적으로 대출액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KB경영연구소가 발행한 'KB주택시장리뷰 9월호'에 따르면 주택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서울 주요 지역에서 시작된 매매가격 상승세 및 매매 거래량 증가세가 그 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은 지난달 0.52%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기준 매매 거래량도 3월 대비 약 4배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수도권 주택매매가격은 서울이 0.52%의 상승률을 보였고, 성남 1.33% 과천 1.39% 등 경기 일부 지역에서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울만 놓고 보면 3개월 연속 집값이 상승한 곳은 4월 2개구(강동, 양천)에 그쳤는데 8월에는 25개구 중 17개구(강동, 양천, 마포, 성동, 용산, 강남, 서초, 서대문, 동작, 송파, 영등포, 광진, 은평, 종로, 중구, 중랑, 강서)로 퍼졌다.
은행권에서는 수도권지역 대출자들이 '똘똘한 한채'에 대한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고 평가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비싸다'라는 게 상대적인 것 같다. 일반 서민들은 비싸다라고 생각하는데, '똘똘한 내 집 한 채'를 생각하는 분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지금 일단 사놓아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다"며 "특히 서울 소재의 집이라면 좀 더 비싸더라도 궁극적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보니 가격 조정을 받더라도 무리하게 대출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3년여 전인 문재인 정부 시절, 전월세 세입자들은 집값 하락만을 기다리다, 역으로 폭등 현상을 맞이하면서 내 집 마련의 시기를 놓친 바 있다. 이후 한국은행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집값 거품이 꽤 잡히는 듯 했지만,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인기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미리 한 채를 마련해놔야 한다는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미 연준발 대규모 금리인하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행권에서는 금통위가 다음달 11일에도 가계부채를 의식해 추가 금리동결에 나설 여지가 있다고 평가한다. 다만 올해 마지막 금리결정일인 11월 28일에는 금리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본다. 백번 양보해서 이번 금통위까지는 금리동결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궁극적으로 올해 내에 꽤 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국) 금리격차가 많이 좁혀질 경우 한은도 물가와 상관 없이 금리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그동안 한국(기준금리 3.50%)과 미국(5.25~5.50%) 간 금리격차가 최대 2.00%p였는데, 미 연준이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빅컷(한 번에 금리 0.5%p 인하)'을 단행함에 따라 양국 간 금리격차는 최대 1.50%p까지 줄어든 상태다. 미국 금리는 이번 빅컷으로 4.75∼5.00%로 조정됐다.
특히 미 연준이 다음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를 추가 0.50%p 인하하겠다고 시사한 점은 가계부채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미 연준이 실제 10월에도 빅컷에 나설 경우 양국 간 금리격차는 0.75~1.00%p까지 줄어들게 된다. 이에 한은도 양국 금리차를 의식해 추가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미국발 금리인하로 한은의 기준금리가 인하할 경우 은행들의 주담대 금리는 어떻게 될까. 은행들은 시장 흐름에 따라 주담대 금리도 결국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추측했다.
그동안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20차례 이상 인상하며 대출금리를 올렸던 건 과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가계부채 발언을 의식한 행보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금리인상으로 오히려 '이자장사'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고, 이 원장도 이 같은 행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은행들이 당국에 협조하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리는 식의 대응책은 더 이상 펼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번 빅컷보다 (연준이) 10월에 또 0.5%p를 인하하겠다고 얘기했는데, 이 발언이 더 중요할 것으로 본다"며 "시장에서는 금리인하가 선반영될 것이니 주담대 금리도 결국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평했다.
실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에도 불구, 대출이자 부담은 다소 완화될 전망이다. 대출한도를 좀 더 늘릴 수 있는 유인이 되는 셈이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리'가 아닌 '집값'부터 잡아야 가계부채 확대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금리가 아니라 집값이다"며 "집값이 내려가면 그 누구도 대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은행들도 대출을 공급하기 위해 금리인하 경쟁을 펼치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