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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에게 '친일파' 뒤집어 씌운 박헌영과 공산당

2015-09-29 09:4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자유경제원이 23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개최한 ‘우남 이승만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 이승만에 드리워진 7가지 누명과 진실’ 종합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입을 모아 “우남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오늘에 기여한 건국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공은 전혀 무시된 채, 일부의 왜곡과 거짓 선동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경제원은 지난 5월 13일부터 9월 10일까지 7차에 걸쳐 이승만 관련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자유경제원이 23일 주최한 종합토론회는 건국대통령 우남 이승만에게 씌워진 7가지 누명에 대해 7인의 전문가가 나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진실을 밝히는 자리였다. 아래 글은 주제발표자로 나선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이승만은 친일 청산도 안하고 친일파 비호했나?

1948년 9월 22일 공포된 법률 제3호 ‘반민족행위 처벌법’은 졸속으로 입법되어 위헌 소지가 다분했다. 초안이 나흘 만에 만들어졌고, 소급입법이었으며, 재판을 3심이 아닌 단심으로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그 결과 이인 법무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는데, 이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을 내려 이를 공포했다.

그런데 남로당 요원과 북한 간첩들에게 포섭된 국회의원 13명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위해 국회에서 활동하다 체포된 국회 프락치 사건의 주동자들인 김약수, 노일환, 이문원 등이 반민법 제정을 주도하고 반민특위 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이것은 반민법과 반민특위가 남로당과 북한 공산집단의 사주에 의해 만들어지고 활동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다.

해방 후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한 것은 박헌영과 공산당이다. 1945년 10월 환국한 이승만의 정치적 목표는 귀국 일성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로 표출된 ‘대동단결, 자주독립’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공산당 지도자 박헌영은 10월 30일 “일제의 잔재세력, 친일파를 근절시킨 다음 옥석을 완전하게 가려놓고 순전한 애국자, 진보적 민주주의 요소만을 한데 뭉쳐 통일해야 한다”면서 이승만의 대동단결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이승만이 공산당이 자기에게 부여한 인공의 주석 직 사퇴 선언을 하자 박헌영과 공산당들은 집요하게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 북한 공산집단과 박헌영의 남로당 및 좌익들이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한 이유는 소련의 완벽한 괴뢰 역할을 했던 자신들의 행적을 은폐, 기만, 시선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선전선동이었다./사진=연합뉴스

북한은 해방 후 친일파를 철저히 청산하여 민족정기를 회복했기 때문에 민족사의 정통성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북한에서 진행된 친일 청산은 체계적인 법령은 물론, 청산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 허구였다. 북한의 친일 청산은 공산주의 체제를 만들기 위해 반공 혹은 민족주의 세력을 탄압하고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재산을 빼앗는 과정에서 갖다 붙인 ‘친일’ 혹은 ‘민족반역자’라는 딱지와, 이들을 축출하기 위한 자의적인 인민재판이 있었을 뿐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친일 청산’이란 공산 측에 비협조적이고 반공적 태도를 보인 사람들을 숙청한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해방 후 북한의 토지개혁 및 공산정권 수립 과정에서 150만 명이 월남을 했는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진짜 친일 반동분자가 아니라 공산화에 걸림돌이 되는 교육받은 엘리트 계층, 지주, 반공주의자, 민족주의자,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을 친일 반동분자로 규정하여 처벌한 것도 관련법도 없고, 죄를 판정할 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재판관들도 없이 군중심리에 의해 즉석에서 인민재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반면에 남한은 헌법으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법률에 따라 적법한 재판 과정을 거쳐 친일파를 청산했다.

   
▲ 민주주의는 오랜 경험과 과정을 거쳐 발전하고 성숙된다. 민주주의는 제도 도입만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런 사례도 없다. 이승만은 민주주의에 대한 관습이나 사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체제를 만들어나갔다./사진=연합뉴스

북한 공산집단과 박헌영의 남로당 및 좌익들이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한 이유는 소련의 완벽한 괴뢰 역할을 했던 자신들의 행적을 은폐, 기만, 시선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선전선동이었다. 소련은 현역 소련군 대위이자 소련 공산당원인 김일성을 스탈린이 면접 끝에 낙점하여 북한 지도자로 정한 다음 북한에 보내 소련의 각종 법률과 제도를 들여다 공산 단독정권을 수립했다.

심지어 북한 초대 헌법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작품이며, 초대 내각 구성원도 모두 소련 공산당 중앙의 지시와 지령, 감독 하에 구성된 완벽한 괴뢰정권이었다. 공산당들은 이처럼 부끄럽고 참혹한 친소련의 적나라한 모습을 위장, 혹은 숨기기 위해 이승만에게 친일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 공격을 해댄 것이다.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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