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유태경 기자] 환경부가 세종과 제주에서 1년간 시범 운영 후 내년까지 전국 시행할 예정이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지방자치단체 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24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종합감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일회용 컵 보증금제 개선 방향 논의 자료'를 발표했다.
자료에 따르면 환경부는 일회용 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 기조는 유지하되, 보증 금액이나 대상 시설 범위 등을 지자체가 지역 상황에 맞게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적용 대상은 지역 여건에 따라 개인 카페를 포함한 지역 전체 또는 중심 상업지역, 카페거리 등을 중심으로 부분 시행하거나 공공청사 등 주요 시설 등이다.
정부는 지자체의 일회용컵 회수를 위한 기반시설 설치와 재활용 체계 구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 지자체 참여 유도를 위해 지자체 합동평가와 국고사업 선정을 우대하고, 탄소중립포인트제와 다회용기 도입 등 지원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소비자가 오래 머무르고 출입구가 있어 일회용 컵의 반납과 회수가 용이한 야구장과 놀이공원, 공항, 대학 등 대형시설·일정구역에 대해서도 보증금제 도입을 추진한다. 이 경우 운영 주체가 시설 규모와 고객 유형 등을 고려해 보증금액 등을 결정하도록 한다.
또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일회용 컵을 사용해 음료를 판매할 경우 보증금을 받고, 자체 시스템을 활용해 컵 반납 시 포인트(또는 보증금)를 지급하는 프랜차이즈 단위 보증금제 자율 시행을 촉진한다. 보증금액은 가맹본부가 브랜드별 음료 가격과 마케팅 등을 고려해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부는 이를 통해 정책 수용성 제고와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 최소화, 불필요한 행정 비용 감소 등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 같은 방안은 오히려 소비자 혼란을 야기하고, 형평성 문제로 정부 정책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지자체 자율로 추진하겠다는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14개 광역지자체는 반대했고, 나머지 지자체도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며 "결과적으로 지자체 자율로 맡기겠다는 것은 폐지하겠다는 말을 다르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9월 21대 국회 산업통상위원회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자체 자율시행의 내용을 담은 자원재활용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해당 법률 개정안에 대해 환경부는 17개 시도에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당시 17개 시도 중 지자체 자율 시행 시 미시행 4곳, 법 통과 후 검토 9곳,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곳이 4곳으로 알려졌다. 17개 시도 중 13개 시도는 현행 법령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아울러 환경부가 일회용 컵 보증금제 효과를 축소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자원순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선도지역인 제주에서 제도 시행 대상 매장 중 95.2%가 참여했고, 일회용 컵 회수율은 최대 78.1%까지 늘어났다. 텀블러 사용량 또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 의원은 "일회용 컵 감량 효과가 데이터상으로 나타났는데, 보증금제가 정착될 시점마다 환경부가 매장 내 일회용 컵 규제를 유예하겠다는 등 스스로 재를 뿌리는 발표를 함으로써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방해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부정적 여론을 만들어 (정책이) 안 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건 맞지 않고, 평가를 거친 다음 사업의 존폐를 결정하는 등 그런 과정들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현재 다회용기 사용 확대로 가닥이 잡힌 야구장 등에서의 보증금제 시행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다.
강 의원은 "정부가 영화관이나 야구장과 같이 제한된 공간에서 다회용품을 사용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시행하겠다는 건 그나마 잘하고 있던 제도를 완전히 후퇴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지금 환경부 정책 방향이 잘못 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장관은 정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는 것에 반대하고 수용성 높은 제도로 가겠다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보증금제는 강제할 수가 없고, 무상 제공 금지도 수용성이 낮아서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정책은 자율로 맡길 수 있는 것이 있고 법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는데, 환경 정책을 자율로 가겠다는 것은 문제"라면서 환경부의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녹색연합도 성명서를 내고 "2003년부터 5년간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서 자율로 보증금제를 시행했으나, 낮은 반환율과 미반환보증금 사용처 문제로 2008년 폐지됐다"면서 "플라스틱,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는 심화되고 있는데 제도는 20년 전으로 후퇴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 해 294억 개가 사용되는 일회용 컵에 대해 어떤 정책도 펴지 않겠다는 입장은 환경 정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주무부처로서 일하지 않는 환경부 장관은 사퇴하라"고 규탄했다.
한편 이날 국감에서 김완섭 장관은 일회용 컵 보증금제 확대 시행을 폐기하고 유상 판매하는 대안 마련을 위해 학계와 업계, 환경단체 및 언론을 동원해 여론을 조성하겠다는 추진 계획이 담긴 환경부 내부문건에 대해 사과했다.
[미디어펜=유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