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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④] 반박정희? 시대성공의 불편한 진실

2015-10-02 11:28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는 폭넓은 학술활동을 통해 기업정책 및 경제발전 연구에 매진한 ‘기업경제’ 전문가다. 좌 교수는 양극화와 저성장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답,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의 동반성장 기조를 회복시킬 방안에 대해 기존 주류경제학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좌 교수는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을 통해 “오늘날 세계인류가 부딪치고 있는 고난도의 경제문제와 더불어 한국경제 동반성장의 해법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박정희 시대의 기업부국패러다임, 신상필벌의 차별화원리 속에 있다”고 밝힌다. 미디어펜은 향후 한국경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좌승희 석좌교수의 저서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의 일부를 발췌하여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네 번째 연재다. 저서를 펴낸 곳은 출판사 ‘백년동안’이다. [편집자주]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겸 미디어펜 회장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④] 반박정희? 시대성공의 불편한 진실

2부 박정희 시대, 위대한 성장: 오해와 진실

2장 박정희 부정의 논리와 허점들

박정희 시대 성공의 불편한 진실

박정희 시대는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 여기서 박정희 시대가 만들어 낸 경제적 결과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높은 성장률이나 분배와 같은 거시적 성과지표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책과 그 정책들이 만들어 낸 한국경제의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박정희 시대에 대한 찬반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위 불편한 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시대 한국의 경제발전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설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주류 경제학에서는 폐기처분한,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정부 주도 산업정책을 통해 성장했다.

둘째,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제약한 비민주적 정부에 의해서 성장했다.

셋째, 친재벌정책으로 경제력 집중과 기업 부문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넷째,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을 초래했다.

박정희의 경제적 성공은 거시지표에 의해 쉽게 확인되지만 문제는 위와 같은 일부 특정 정책이나 성공에 수반하는 구조적 특징이 바로 찬반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네 가지의 역설적 특징은 소위 자유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균형발전 등 기존의 주류 이론이나 이념이 선호하는 관점에서 보면 이단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박정희 부정의 원천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박정희 부정의 전형적 사례들은 정부의 공식문서에 가까운 연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한국경제60년사발간위원회, 2010).

박정희 부정의 논리

박정희 부정은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계에서부터 정치경제학계 나아가 정치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사회과학 분야와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위의 4가지 특징을 통해 그 실상을 규명해 볼 수 있다.

‘시장을 신’으로 보는 주류 경제학계의 반박정희 논리

경제학 교과서를 지배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유주의 경제학은 일부 세부적 강조점에서 차이가 나지만 시장에 자원배분의 절대적인 권능을 부여하고 신격화한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이들을 같이 묶어 주류 경제학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들 주류 경제학계는 첫 번째 역설인 정부 주도 산업정책의 성공에 가장 불편해 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 주도 산업정책은 자원배분의 왜곡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없으므로 폐기되어야 할 정책이라고 가르쳐 왔다. 박정희는 수출진흥정책이나 특히 중화학 공업 육성정책 등에서 바로 경제학이 하지 말라는 정책을 한 셈이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계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학계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박정희의 산업정책은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유의 제약을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주류 경제학계에게는 두 번째, 비민주적 정부의 역설에 대해서도 곤혹스러워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더 곤혹스럽다. 박정희 시대를 경제적 자유가 신장된 시대라 부를 수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도 경제가 발전한다니 자유주의 경제학계가 수용하기는 어려운 명제이다. 이들은 지금 중국의 발전에 대해서도 썩 그럴듯한 설명을 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 『박정희, 살아있는 경제학』(좌승희 著)은 ‘기피의 대상’으로 방치된 한국경제의 핵심적 시기를 경제학적 분석의 화두로 삼은 저작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적 본질에 입각하여 박정희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성공원리를 밝히고 있다.

이들은 또한 세 번째, 재벌육성의 역설도 수용하기 어려워한다. 박정희가 재벌을 육성해서 독점기업은 물론 한국경제의 온갖 정치경제적 문제의 원천을 만들어 냈으니 “독점자는 없어야 하고, 모두 규모가 같고 평등하고 균형을 이룬 완전경쟁시장이 최상의 시장”이라 보는 신고전파 경제학계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결과 또한 수용하기는 어렵게 된다. 더구나 친재벌, 반중소기업 정책으로 중소기업 성장기반을 약화시켰으니 더더욱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자유주의 경제학계도 이들 결과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네 번째, 지역 불균형의 역설은 이를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경제학에 치우쳤던 과거 경제발전론이 균형성장을 강하게 지지해 온 전통 때문에 아직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이렇게 보면 주류 경제학계는 그들이 신봉하는 경제학 논리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박정희의 성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은 아직도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예외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있는 세계 주류 경제학계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우리 이론과 신념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는 입장인 셈이다.

민주주의를 ‘신’이라 보는 정치학계와 정치계의 반박정희 논리

한편 민주주의를 신격화하는 정치학계나 정치계는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 유신 등 민주질서에 반하는 정치를 했기 때문에 어떠한 경제적 성공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어떤 정치도 그 성과에 관계없이 배격되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있지만 어느 정도 경제적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 타협적 입장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적 정치가 어떠한 경제적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박정희 시대를 올바로 평가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셋째, 넷째 불균형 혹은 역설에 대해서도 평등의 민주정치 이상에 부합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민주주의를 신격화하는 정치학계나 정치계는 박정희가 민주주의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 모두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박정희의 성공을 인정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 좌승희 교수는 "현대적 의미의 기업이야말로 생산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활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 또는 부(富)를 창출하는 핵심장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요체는 ‘시장경제’라기보다는 ‘기업경제’라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좌 교수는 박정희 경제정책이 자본주의 본질적 기능인 ‘기업경제’에 부합하도록 추진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시대 정책패러다임을 ‘기업부국 패러다임’으로 정의한다./사진=미디어펜

평등을 ‘신’으로 보는 좌파 경제학자들의 반박정희 논리

경제적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좌파 경제학자들에게 박정희는 양날의 칼이다. 중소기업에 불리한 대기업, 재벌경제를 만들어 내어 기업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등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한 박정희 패러다임은 인민의 적인 셈이다.

그러나 큰 정부가 부의 재분배와 규제정책을 통해 더 평등한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좌파 입장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정책 역할을 중시한 박정희 패러다임을 온통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은 박정희 산업정책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실패한다는 산업정책이 왜 성공했는지 설명하는 것보다는 ‘시장이 하느님’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계에 대한 반론으로 ‘정부가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1)

1) 가끔 박정희 산업정책의 성공을 인정하는 장하준 교수가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Chang(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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