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저자세 외교, 뒷북 대응, 외교 참사...’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하는 뜻밖의 결단을 내렸는데도 쏟아진 여론의 키워드이다. 외교부는 당혹스러워 보였다. 추도식 이틀 전 예정된 언론브리핑을 불과 5분 전에 취소하더니 추도식 바로 전날 전격적으로 한국측의 참석 불가를 밝혔다. 윤석열정부 들어 우리정부가 일본과 불협화음을 낸 건 사실 처음이다. 그래서 이번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할 결정을 하기까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또 과연 그런 제안을 외교부가 먼저 했을지 아니면 대통령실에서 먼저 결정했을지 등이 매우 궁금하다.
그동안 윤석열정부는 정상간 셔틀외교를 부활시키는 등 한일관계 회복을 큰 성과로 꼽아왔다. 그러니 이번 추도식의 불참을 결정하면서 그 파장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을리가 없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일본측의 태도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한 상황에서 의아하게도 일본측은 초지일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정부가 추도식 준비에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는 추도식에 불참하게 된 이유를 밝히면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한일 정부간 합의된 내용이 추도식에 반영되지 않았고, 추도식 관련 협의 과정에서 일본측이 보여준 태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한일 간엔 일본의 사도광산 전시물에 ‘강제’란 표현이 없는 것은 물론 ‘조선인 비하’ 내용이 있어 한차례 논란이 일었다. 여기에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맡을 일본 중앙정부 대표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이 결정되면서 그가 이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 때문에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우리정부는 이쿠이나 정무관의 추도사 내용을 미리 전달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정부가 일본측에 추도사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일본정부가 그 요구를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일본의 사도광산 추도식에서 추도사는 없었다. 식순에도, 실제 추도식에서도 이쿠이나 정무관의 발언은 인사말로 소개됐다. 그 발언을 보면, “빛나는 성과” “역사상 특별한 가치”를 내세우다가 “무숙인과 한반도에서 오신 노동자들이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 아래 어려운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무숙인’은 ‘노숙인’을 말한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한국인 노동자에 대해선 “전쟁 중인 1940년대에 전시 노동자정책에 따라 한반도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25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조선인 기숙사 터에서 한국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11.25./사진=연합뉴스
이쿠이나 정무관 발언엔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 피해자로서 한국측이 요구해온 ‘강제성’이 빠진 것은 물론, 사도광산 노동자들의 참상을 한번이라도 들어봤다면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애도’가 부족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추도식에서 하나즈미 히데요 니카타현 지사는 “광산에서 채굴과 발전에 공헌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12세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수백년에 걸친 광산 채굴의 역사 배경에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사도광산 추도식은 이름만 ‘추도식’으로 열렸을 뿐 일본측으로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고 싶은 자리였다고 평가된다. 그러니 뒤늦게나마 한국측이 별도의 추도행사를 마련한 것을 다행이라고 한 정부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석열정부는 ‘제3자 변제’라는 정부 해법을 냈고,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이 “우리가 물컵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제3자 변제나 사도광산 추도식 모두 호응 없는 양보에 불과하다.
이번에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윤석열정부에선 처음 보는 강경한 기조이다. 일본이 착취와 만행으로 일궈낸 근대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2015년 군함도에 이어 2024년 사도광산이 있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앞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계획 중인 광산과 댐 등 근대화 시설이 3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인권유린의 역사를 세계유산으로 탈바꿔 전쟁의 역사를 미화시키는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사도광산 추도식 논란은 유네스코 등재 이후부터 우리정부가 과연 관련 협상을 어떻게 추진해왔는지에 대한 결론이라고 봐야 한다. 한 전직 외교관으로부터 한일 협상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과거사 문제가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으니까 문제의 본질이나 우리의 입장에 대해 일본도 잘 알 것이라 착각해선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정도로 말하면 일본도 알아 들을 것'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정권과 상관없이 외교부가 이번 사도광산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제대로 밝히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