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0선에서 올 한 해를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결국 연초 수준을 지키지 못한 채로 연말을 맞았다. 7월 중순까지만 해도 2900선 가까이 고점을 높이며 ‘코스피 3000’ 기대감을 자아냈었다. 하지만 미국 주식시장이 여름 이후 대선 구도로 가열되며 빅테크는 물론 그 주변 종목들에 대해서까지 ‘랠리’ 장세가 시작된 반면, 한국 증시와 관련해선 좋은 소식을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 똑똑해진 투자자들은 망설임 없이 ‘투자이민’을 시작했고, 우리 주식시장은 연초의 ‘밸류업’ 선언이 무색하게도 스스로의 가치를 하향재조정 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앞에 직면해 있다. 미디어펜은 5회에 걸쳐 2024년 국내 주식시장 주요 이슈를 되돌아 본다. <편집자 주>
[2024결산-증권①]동학개미 ‘대탈출’…코인시장만도 못한 국내증시
[2024결산-증권②]금투세‧상법개정 1년 내내 ‘논란 또 논란’
[2024결산-증권③]밸류업 돛 올렸지만…스스로 초래한 ‘밸류다운’
[2024결산-증권④]‘IPO 불패는 옛말’ 상장 연기 또는 철회 수두룩
[2024결산-증권⑤]증권사 내부통제 이슈 도마 위에…중소형사 ‘지각변동’
한국 코스피 지수는 지난 11월 중순부터 8월 5일보다 오히려 저점이 낮아지기 시작했다./사진=김상문 기자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투자자들이 느끼는 조급함을 흔히 FOMO(Fear Of Missing Out, 포모)라고 표현한다. 남들은 다 승승장구하는데 혼자서만 헤매고 있는 듯한 공포감을 일컫는다. 포모에 사로잡힌 투자자는 빚을 내서라도 당장 투자에 돌입해야 한다거나, 이미 오를대로 오른 주식에 거액을 밀어 넣는 등의 악수를 둔다.
2024년 한국 증시를 덮친 비극은 바로 이 포모 정서의 레이더에서조차 튕겨져 나가버렸다는 점에 있다. 우리 주식시장은 ‘포모의 대상’이 아니라 ‘포모를 느낀 사람들이 서둘러 떠나야 할 현장’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금융투자협회가 매일 집계해 발표하는 지표 중 ‘신용공여 잔고 추이’ 항목이 있다. 증권사로부터 빚을 내서 신용으로 투자에 나선 금액을 집계한 지표다. 올해 초 17조5300억원 수준이었던 신용거래 잔고는 지난 12일 기준 15조1600억원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특히 코스피 시장 신용융자 잔고는 1월3일 이후 처음으로 8조원 대로 내려왔다. 코스닥 신용융자 잔고는 코로나19가 터졌던 2020년 이후 최소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빚조차’ 내지 않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침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직관적 지표가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졌던 지난 8월 5일. 소위 ‘엔캐리 트레이드’ 공포로 인해 전 세계 주식시장이 쇼크에 빠졌고, 국내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삼성전자 주식이 하루에 10.30% 폭락했던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8.77% 폭락한 2441.55를 기록했다.
다행히 공포가 진정됐고 주요국 증시는 안정을 되찾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나스닥 지수는 8월5일 기준 1만5708.54까지 떨어졌지만, 지난 12월13일 사상 최초로 2만을 돌파하며 완벽한 회복의 모습을 보였다.
반면 한국 코스피 지수는 지난 11월 중순부터 8월 5일보다 오히려 저점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쇼크로 또 한 번 결정타를 맞았다. 주말간 윤 대통령 탄핵표결안이 가결되고 첫 거래일인 오늘(16일) 오전 코스피 지수가 어느 정도 상승했지만 여전히 2500선대 초반이다.
국내 시장 대장주 삼성전자는 지난 8월5일 7만1400원으로 마감됐지만, 현시점엔 5만원대 중반까지 주가가 미끄러져 있다. 올해 삼성전자 주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장중 한때나마 5만원선이 깨지기도 했다.
올 한 해 비트코인은 1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보이며 미국 주식 못지 않은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어딜 둘러봐도 침체의 신호밖에 보이지 않는 국내 증시의 처참한 모습은 ‘거래대금 급감’이라는 신호로도 포착된다. 올해 나타난 상징적인 시그널은 소위 ‘코인시장’ 거래대금이 주식시장을 압도했다는 점이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12월 1~12일 일평균 거래대금은 24조4987억원이다. 이는 코스피 9조9772억원과 코스닥 6조7125억원을 합산한 16조6897억원보다 무려 7조809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다. 단순히 조금 많아진 수준이 아니라 코스피의 2.5배 규모다.
올 한 해 비트코인은 10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보이며 미국 주식 못지 않은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0년 1만을 돌파한 나스닥 지수는 2만에 도달하기까지는 4년이면 충분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처음으로 2000선을 찍었던 2007년 이후 무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500선을 맴돌고 있다.
한때 ‘동학개미’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던 국내 투자자들은 더 이상 국내 주식에 어떤 미련도 없이 미국 주식, 혹은 가상자산시장으로 떠나갔다. 가속화된 ‘투자이민’이야말로 올해 자본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할 만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올해 2월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잠시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정책 방향성이 우왕좌왕 한다는 비판을 받다 결국엔 윤석열 정부 자체가 좌초되는 대형 사건에 직면했다.
문제는 내년의 방향성도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는 점이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한국의 정치 문제와 대외환경 등에 따라 향후 수개월간 주식시장의 추가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강 연구원은 “여타 주식시장의 하락이 나타날 때 한국 주식시장은 막바지 흔들림을 경험할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있을 한국 주식시장의 추가하락 정도는 여타 주식시장 대비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