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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웨더·파퀴아오, 세기의 대결이 졸전으로 끝난 이유

2015-10-24 09:04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세상에 동일한 것은 없다. 동일한 사람도 없다. 외모, 성격, 능력, 감정, 의욕 등 모두 다 제각각이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산물 역시 모두 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격차를 줄이자,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하곤 한다.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지,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동일하게 만들려 하면 자연의 조화는 깨진다고 취지에서 자유경제원은 예술인들과 함께 ‘격차, 그 지극한 자연스러움’ 예술인이 본 격차 제2차 세미나를 열었다. 아래 글은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참석한 윤서인 만화가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윤서인 만화가

격차에 관한 생각

#1 격차가 없으면 동기부여도 없다, 초딩친구 H와의 추억

필자는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노트에 필기보다는 만화를 그렸다. 누구나 학창시절에 항상 반에는 그림 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한명 꼭 있지 않은가. 그럼 초등학생 시절 필자의 반에서는 그게 당연히 바로 필자였….. 을까? 천만에. 그렇지 못했다. 필자의 초딩시절엔 결코 넘을 수 없는 천재 그림쟁이가 H가 있었다.

1985년 대치 초등학교 최고의 그림쟁이는 같은 반 친구이자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던 H였다. 지금 기억에도 H는 도저히 초등학생의 그림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 아마 지금의 나보다 더 뛰어난 뎃생이었을 것이다. 그 친구의 그림은 그림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어른, 그것도 미술 전공한 대학생 이상의 그림으로 보였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당연히 누군가가 그려줬거니 짐작하며 바로 탈락시켰다. 현장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바로 그림을 그리는 그림대회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대상 트로피를 받아오던 친구였다.

날개가 달린 말이 하늘을 나는 그림에서 그 친구가 표현했던 꿈틀대는 말근육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그대로 꿈틀꿈틀 남아 있다. 당시 유행했던 ‘구니스’ ‘스타워즈’ 등의 영화의 주인공들을 반 친구들로 바꿔 그렸던 그의 만화와 그의 화려한 노트는 모든 반 아이들이 돌려보는 필독서이자 바이블이었다. 그 친구가 너무 멋져 보여서 나도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친구 만화와 내 만화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해서 따라잡을 수가 없는 소위 ‘넘사벽’ 격차였다.

격차가 하도 크다보니 속상하거나 박탈감이 들기는 커녕 오히려 쿨해졌다. 그 친구가 나보다 만화를 잘 그린다는 것은 하늘이 파란색이라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 친구의 노트를 빌려서 종이를 대고 따라 그렸고 그 친구처럼 표현해보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다. 그 친구의 그림을 마르고 닳도록 분석하고 베끼고 보고 또 보았다. 나도H처럼 만화를 그리고 싶었고 내 노트도 친구들이 빌려보는 장면을 막연히 꿈꾸었다.

그 친구가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조회시간에 나가서 상을 받을 때는 배가 아프기는 커녕 나도 같이 박수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이기는 것은 커녕 그와 나란히 언급되는 것 조차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다. 고등학교 농구선수가 마이클 조던을 보는 기분과 비슷했을거다. 공교롭게도 운명이었는지 H는 졸업할 때 까지 필자와 같은반이었으며 난 2년간 열심히 그 친구 뒤를 쫒았다.

   
▲ 윤서인 작가의 프리미엄 조선 웹툰 ‘조이라이드’ 40회의 한 장면. “최저임금에 대해 관점을 달리 해보라”는 윤서인 작가의 생각이 묻어난다. /사진=프리미엄 조선 웹툰 ‘조이라이드’ 그림 캡처

그렇게 2년여를 열심히 쫒다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얼씨구? 나도 점점 괜찮은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걸 인지하게 된 것은 그 친구와 각각 다른 중학교로 나뉘어지고 난 후였다. 중학교에 오자 H는 없고 내가 반에서 만화를 제일 잘그리는 학생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 만화가 드디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돌려보는 필독서가 되기 시작했다.

난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연습한 H의 그림을 흉내내어 그렸고 친구들은 필자에게 천재라고 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기하게도 필자는 전교에서 20명만 진학한 먼 중학교로 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음껏 H의 그림을 흉내내도 모두들 그것이 필자의 오리지널 그림인것으로 인식되었을 뿐 H의 그림과 아이디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속으로는 엄청 찔렸지만 일부러 아닌척 하며 친구들 앞에서 잘난척도 딱 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을 뻥뻥 찰 기억이다.

그렇게 난 점점 ‘그림’ ‘만화’ 하면 윤서인이라는 등식을 얻었다. 그렇게 인정받기 시작하자 그림을 더 열심히 그렸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계속 만화를 그려댔고 결국 미대에 진학하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만화가의 인생으로 접어들었다.

1985년~ 86년에 보았던 H의 그림들은 지금도 그대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지금도 만화를 그리다보면 그때 연습했던 H의 그림들이 튀어 나온다. 85년 H와의 만남은 필자가 만화의 길에 들어온 초석이자 아름다운 격차였다. 재미난 점은 격차 자체가 너무나 커서 그랬는지 단 한번도 그와의 격차에 대해 힘들어보거나 질투나보거나 괴로워본 적이 없다. 격차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 분발해서 내 그림을 그렸고 그와의 격차는 조금씩 좁혀졌으며 그것이 고스란히 나의 발전이 되었다.

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 당시 초등학생이던 H의 그림을 따라잡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를 쫒던 필자의 그림은 어느새 비스듬히 나만의 그림으로 방향이 바뀌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는 정보 전달에 최적화된 프로페셔널한 필자만의 그림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이 나비효과와도 같은 모든 인생의 출발점엔 1985년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림천재 H군이 있다. 그와의 격차는 슬프고 박탈되고 분하고 짜증나는 격차가 아니라 즐겁고 가슴 뛰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격차였다.

사람은 격차를 인지했을 때 보통 두가지 갈림길에 선다. 격차에 분노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이 될 것이냐 쿨하게 인정하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어떤사람이 더 발전적인 사람인지는 말 할 것도 없다. 격차를 인정하고 자신을 단련하는 목표로 삼는 방법을 필자는 필자도 모르게 초등학생 시절에 배운 것 같다.

사람의 인생에서 상당부분 노력의 출발점은 격차를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나의 목표, 롤모델, 꿈이라는 것에는 나와 GOAL의 격차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노력의 과정이란 다름 아닌 이 격차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다. 내가 노력해서 한발 더 나아가면 그만큼 내 목표와의 격차가 한 발 줄어드는 것이다.

#2 격차를 인지한 후 빨리 포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격차에 관한 필자의 경험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필자는 1997년 두 번째 직장 ‘넥스텔’ 이라는 인터넷 회사에 다녔다. 넥스텔은 국내 최초로 인터넷이라는 것을 들여온 회사였고 당시 꽤 엘리트들이 많이 다니던 회사였다. 필자는 그곳에서 일하며 불확실한 병역 특례 TO를 받기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대기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뒤숭숭해지는 것이었다. 부장님이 바삐 어디론가 왔다갔다 하시고 직원들 가운데 가장 좋은 자리를 비워놓으라고 지시하더니 그 자리에 당시 가장 비싼 매킨토시가 막 들어오는 것 아닌가. 모니터도 수백만원짜리 애플 모니터가 딱.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S대 다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디자이너가 입사를 하기로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사장님부터 모든 임원들이 그를 모시게 된 것에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며칠 후 입사한 필자와 동갑이던 그 친구 K. 나이 많은 다른 직원들의 시기 질투를 한몸에 받으며 등장한 K는 바로 병역특례 TO를 받고 군복무를 시작했다. “병특이 아니면 우리회사가 감히 모실 수 없는 사람’이라는 소문도 들렸다. 난 TO를 받는게 꿈이었는데 그 친구는 TO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경계를 했다. 에이 얼마나 잘났기에 저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친구 옆자리에서 가만히 일하는 걸 보니 너무 놀라서 3m쯤 뒤로 날아갈 지경이었다. 필자도 나름 서울 안에 있는 디자인 학과를 다니고 있었고 어디 가도 디자이너 명함을 내밀던 사람이었는데 헐 이 친구의 디자인 능력은 나와는 격차가 해도해도 너무 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이구나. 이것이 디자인의 세계구나…

그 친구가 하는걸 보니 그동안 필자가 학교에서 배우고 해오던 것은 디자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필자의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디자인 교육과 교수님들의 수준까지도 한꺼번에 다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 동네에서 야구 좀 한다고 거들먹거리다가 갑자기 메이저 리그 타석에 서서 잭 그레인키의 직구를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서 그때 난 디자이너의 길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내가 해서 될 게 아니구나 하는걸 격차를 통해 배워버린 것이다. 차라리 그동안 그래도 좀 잘 하던 만화 일러스트를 마우스를 이용해 그리기 시작했고 그 친구는 내 만화 일러스트를 자신의 디자인에 적용시켜 주며 필자의 만화 솜씨에 오히려 그 친구도 감탄해주었다. 디자인의 신이 나에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만화의 길에 더 자신감을 붙였고 그때부터 필자는 만화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 박원순 시장으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언사를 감내해야 했던 삼성서울병원의 35번 메르스 의사와 증상을 보이기 전 그가 들렀다는 가든파이브 상인들은 어찌할 도리 없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윤서인 작가의 프리미엄 조선 웹툰 ‘조이라이드’의 한 장면. /사진=프리미엄 조선 웹툰 '조이라이드' 그림 캡처

그 친구 K를 통해 초창기 대한민국 IT업계의 모든 것을 배웠다. 시기 질투를 하던 다른 디자이너들은 끝까지 시기 질투만 했지만 난 빨리 다 내려놓고 인정했고 따라다니면서 엄청난 디자인과 IT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필자의 인생 최고의 전환점이 되었다.

때로는 엄청난 격차앞에 무릎을 딱 꿇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면 다른 길이 보인다. 내 삶이 가장 구체화 되던 순간이 바로 격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격차를 느끼고 이걸 좁혀나갈 지 아니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것을 개발할 지 선택하는 것도 내 인생엔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중요한 것은 격차에 시기 질투를 하고 박탈감을 느끼면 아무것도 되지않는다는 것이다. 격차를 인정할 때 그것을 따르든 포기하든 나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3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대결

2015년 5월 3일,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세기의 복싱 대결. 전세계 복싱팬들은 물론 평 소에 복싱에 별로 관심이 없던 우리나라 사람들까지도 난리가 났다. 둘의 프로필이 온 신문 방송 인터넷을 뒤덮고 두 선수 각자의 지난 경기 동영상이 SNS를 통해 곳곳에 퍼지니 필자도 이 둘이 누군지 궁금해졌고 이들의 대결이 어떤 의미인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저것 좀 찾아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닌가. 이 둘은 이미 억만장자 중의 억만장자이고 둘 다 각자 이룰 것은 다 이룬 선수들이었다. 두 선수 모두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벌어둔 상태에다 복서로서의 명예 또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무엇보다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대전료였다. 둘이 12라운드를 뛰는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1초에 1억 2천만원. 한게임 딱 뛰면 무려 2,700억원의 돈이 쏟아지며 이 엄청난 돈을 6:4로 나눠 갖는다. 이기면 1,621억원, 지더라도 최소한 1,079억원이 통장에 꽂히 는 게임인 것이다.

난 이때 알아버렸다. 이들의 대결이 싱거울 것을. 도대체 아무리 봐도 이들이 열심히 싸워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은 상태에 오로지 잃을 것만 있는 사람들. 대충 대충 이기든 지든 손에 떨어지는 천억원이 넘는 돈. 굳이 무리해서 달려들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얼마나 손해인가. 괜히 공격하러 나서느라 방어가 소흘한 틈을 타 되려 크게 얻어맞고 쓰러지기라도 하면 얼마나 망신일까. 애써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몸을 사리면서지지 않는 쪽의 아웃복싱으로 시간이나 떼우는 잔략을 택할 것임이 뻔히 보였다. 둘 사이에 묘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 뻔히 보였다.

그리고 결과는… 아니나다를까 필자의 예상이 적중했다. 세기의 대결이 아니라 세기의 졸전이었다. 둘 다 펀치다운 펀치 한번 휘두르지 않은채 12회전을 빙빙 돌다가 끝나버린다. 복싱이 아니라 때릴 생각도 싸울 생각도 없는 두 무희들의 무용 한판을 본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이 없었다며 실망으로 아우성이었지만 필자가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메이웨더든 파퀴아오든 최선을 다해 싸울 이유가 딱히 없는데 멋진 명승부를 벌일 턱이 있나. 당신 같으면 이기든 지든 어차피 천억원이 넘는 돈을 수령하는 ’격차’가 적은 게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 만약 승자에게 2,500억원, 패자에게는 200억원 정도만 주는 게임이었으면 결과는 달라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노력의 결과에 따르는 보상의 격차는 “아 내가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동기부여를 일으키며 이것이 내가 반드시 달려야 하고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보상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노력이 더 절실해지고 노력의 강도도 높아지며 결국 갖은 노력으로 성과를 냈을 때 그 뿌듯함과 성취감 역시 격차로부터 비롯된다. 내가 1등을 거머쥐었을때 따르는 보상이 2등을 했을때 따르는 보상보다 더 크고 화려할수록 나의 노력이 더 크게 인정받는 셈이 되며 이것은 매우 정의로운 시스템이다. /윤서인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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