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인사 개입 등 이메일로 수차례 ‘지시사항’ 전송…불구속 입건
   
▲ 해외에 체류하는 일이 잦은 구 씨는 주로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구 씨가 정명훈 예술감독의 비서인 백모 과장에게 내용을 전하면 백모 과장이 그 지시사항을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이사 이하 주요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하달해 실무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일러스트=미디어펜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지난 27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67)씨를 ‘허위사실 유포지시’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가운데 구모씨가 ‘박현정 사태’ 전부터 서울시향 실무에 부당하게 개입해온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해외에 체류하는 일이 잦은 구 씨는 주로 전화나 이메일, 문자 등을 통해 ‘사모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구 씨가 정명훈 예술감독의 비서인 백모 과장(39)에게 내용을 전하면 백모 과장이 그 지시사항을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이사 이하 주요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하달해 실무에 반영하는 식이었다.

구 씨의 의사는 곧 정 감독의 의사로 간주됐기 때문에 구 씨의 지시사항이 갖는 파급력은 매우 컸다는 것이 서울시향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다. 또한 구 씨의 지시사항을 ‘단독 전송’하는 백 과장의 힘 또한 막강했다. 백 씨는 현재 ‘박현정 사태’를 구 씨와 함께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부지휘자는 인터뷰 배제”… 수석객원지휘자 찾자는 의견도 묵살

기자가 단독 입수한 이메일은 총 11건이다. 다수의 메일을 통해서 구 씨는 직‧간접적인 업무 지시 및 개입을 해왔다. 여기에는 단원오디션이나 수석객원지휘자 인선 같은 민감한 사항까지 포함돼 있다.

2013년 4월16일 백 과장은 ‘성시연 부지휘자 북경인터뷰’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서울시향 주요 직원들에게 보냈다. 내용에서 백 과장은 “동경에 마에스트로(정명훈)와 함께 계시는 사모님과 통화를 했다”면서 “성시연 부지휘자와의 인터뷰에 대해서는 (사모님께서) 확실하게 NO라는 의사를 전해오셨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이는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활약했던 성시연 씨가 정명훈 감독, 진은숙 상임작곡가 등과 나란히 해외 매체 인터뷰를 하는 문제에 대해 ‘성 씨는 배제한다’는 구 씨의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결국 구 씨 의견대로 성시연 지휘자의 인터뷰 참여는 무산됐다. 성시연 지휘자는 2014년 1월부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단장으로 소속을 옮겨 활동 중이다.

2014년 2월7일 백 과장은 시향 주요직원들에게 ‘KBS 인터뷰 리허설룸 사용’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냈다. 역시 ‘사모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는 이 메일에는 정 감독의 인터뷰 장소에 대한 언급이 있다.

백 과장은 “bar에서 (정 감독이) 연주하시는 것은 accept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사모님께서) 주시면서 그럼 다시 시향에서 피아노 인터뷰를 하시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결국 사모님께 (정 감독 인터뷰를) 5층 서울시향 리허설 룸에서 하시겠다는 최종 의견을 전달받았다”는 내용을 전송했다. 정 감독의 인터뷰 장소에 대해서까지 아내 구 씨가 직접 개입해 시향에 지시를 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된다.

   
▲ 구 모씨가 백 과장(ashley paik)에게 하달한 지시사항을 백 과장이 서울시향 주요 직원들에게 전달한 이메일(캡쳐). 내용에 따르면 구 씨는 수석객원지휘자를 찾아 정 감독의 후진을 양성해야 한다는 서울시향 내부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왜 수석객원지휘자를 찾을 필요가 없는지’에 대한 논리를 백 과장을 통해 전달했다.

2014년 3월17일 백 과장은 ‘수석객원지휘자’라는 제목의 메일을 서울시향 주요 직원들에게 보냈다. 내용에서 백 과장은 “지난 번 사모님과 통화하다가 잠시 수석객원지휘자 관련 issue가 나왔었는데요, 조심스럽게, 수석객원지휘자를 찾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에 대해 (서울시향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서) 말씀을 (구 씨에게 전달) 드렸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용에 따르면 구 씨는 수석객원지휘자를 찾아 정 감독의 후진을 양성해야 한다는 서울시향 내부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왜 수석객원지휘자를 찾을 필요가 없는지’에 대한 논리를 백 과장을 통해 전달했다.

백 과장은 “마에스트로(정명훈)가 서울시향을 독점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의 논리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씀 주셨다”면서, 정 감독이 시향을 독점한다는 내부 의견에 대한 반박 근거를 담은 구 씨의 지시사항을 세부적으로 전했다. 서울시향의 ‘새로운 얼굴’을 양성해야 한다는 박현정 전 대표와 후진양성에 소극적인 정 감독(구 모씨)의 견해는 시향 내부에서 자주 충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위터 민원까지 ‘대리답변’… 협찬사 문제까지 개입

2014년 4월3일 백 과장이 보낸 메일의 제목은 ‘단원오디션 관련’이었다. 백 과장은 “사모님께 추가 내용 전달 받았다”면서 오디션 탈락자들에게 전하는 구 씨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내용에 따르면 구 씨는 “(정 감독이) 오디션에 탈락해 나가야만 하는 그 단원들을 가슴 아파하시며 오디션 과정을 가슴 아파하시며…” 등의 표현을 전달해왔다.

2014년 4월3일 또 다른 메일에서 백 과장은 ‘서울시 트위터 민원 2건 답변내용’이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서울시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트위터 민원에 대한 답변내용을 구 씨가 직접 전달하고 있는 내용이다. 구 씨의 업무개입이 매우 세부적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밖에도 백 씨는 ‘정명훈 예술감독 계약관련 문의’ ‘협찬사’ ‘인천공항 입국장 서울시향 홍보 관련 예술감독님 편지’ 등의 이메일을 수시로 보내면서 구 씨의 의견을 서울시향에 전달했다. 메일 내용에 따르면 구 씨는 정명훈 감독의 외부활동이나 협찬사 선정, 정 감독 명의로 발송되는 업무상 편지에 대해서까지 폭넓게 개입하고 있었다.

정명훈과 의사소통은 ‘사모님’ 통해서만… 인터넷 수렴청정?

늘 ‘사모님’과 비서를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하는 정 감독의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이미 서울시향 내부에서는 상식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다. ‘사모님 지시사항’을 가장 먼저 듣고 전달하는 백 과장은 정 감독과 만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일한 창구가 되기 때문에 백 과장이 시향의 실세라는 증언도 다수 나오고 있었다. 구 씨는 시향 주변 인물들에게 백 과장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 패밀리’라고 표현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감독 특유의 업무 스타일이 박현정 전 대표와 잦은 마찰을 빚은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구 씨의 폭넓은 업무개입이 결국 박현정 전 대표에 대한 ‘성추행 허위사실 유포’ 파문으로까지 이어졌는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