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들의 대거 취임 이후 교육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미 일부 진보교육감이 자사고 평가 방식을 갑자기 변경하거나 교장들에게 일반고 전환을 권고하고 나서고 있는 것.

이에 자립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의 존폐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보교육감의 정치 논리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정부도 교육계의 갖가지 적폐해소 차원에서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다양한 우수 교육활동 교류, 학교간 네트워크 마련 등으로 자사고-일반고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8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자사고 학부모 100여명 참석한 가운데 ‘자립형사립고 폐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토론회를 열고, 자사고 폐지 논란과 그로 인한 교육현장의 폐해들을 짚어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자사고의 존폐 논란의 쟁점에 대해 “자사고는 전국 49개로 전체 고등학교의 2.1%일 뿐. 일반고의 위기는 이미 2000년을 전후로 심각하게 논의되어 왔다”고 밝혔다.

이어 “2004년 고교평준화 추진 이후에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더욱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다양한 학교활동을 억제하는 등 우수학교 학력을 끌어내림으로써 고교 하향평준화만을 유지해온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지원자격이 내신성적 50%이내라는 것은 자사고에 실질적인 학생선발권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특정 우수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구조”라며 “단순히 학생선발 효과라고 생각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다양한 자사고내 학교활동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자사고의 재평가 기준은 지난 5년간의 학교운영이 내실 있게 진행됐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며 “진보성향의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취임한 이후 새로운 평가지표를 반영해 별도의 추가평가를 급조해서 진행했으며, 이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의 기본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급조한 평가지표가 적절하느냐도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양 교수는 자사고의 존폐 논란 해결책을 위해 “진보교육감의 정치 논리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야 하고, 다양한 우수 교육활동 교류, 학교간 네트워크 마련 등으로 자사고-일반고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상생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학이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하도록 일관성 있는 자율권 확대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정부도 교육계의 갖가지 적폐해소 차원에서 사립학교에 대한 규제개혁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공정한 방식으로 사전 예고된 대로 진행돼야 하며, 일반고의 자사고 전환을 자유롭게 하고, 자사고로 한번 지정된 학교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별도의 평가 없이 자사고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의 공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저조한데, 가장 큰 원인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선택권 제한에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고는 학생의 학교선택권 확대와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해 탄생했으나, 학생선발과정부터 이념-정치 논란에 휩싸여 자율권이 점차 줄어들었다”며 “좌파 교육감들이 자신들이 만든 ‘혁신학교’에만 선택권을 인정하는 것은 일종의 자가당착. 자사고의 입시위주 교육을 반대한다지만. 외고-과고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고 꼬집었다.

또 “서울시 교육감의 자사고 폐지 추진은 관주도 교육행정의 전형이다”라고 덧붙였다.

황영남 서울 영훈고 교장은 “자사고는 일부 진보 세력의 공격으로 ‘특권학교’ 이미지로 낙인되고,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자사고의 위상이 급등락했으며, 자사고의 존재 의의에 대한 정립이 미흡하고 자사고의 미래상을 제시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선발, 교육과정 운영, 등록금 책정, 교원인사 등에서 제한적 자율성을 지녔으며, 특성화 교육보다는 대입정책에 대해 종속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며 “자사고의 정예화, 특성화 제고, 책무성 확대가 필요하고 교육청의 지원-간섭 모두 점진적으로 축소시켜야 하고, 사립학교도 공립전환용 사립학교, 협약형 사립학교, 완전자율형 사립학교로 분류해 단계적으로 자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수 바른교육실천행동 대표/변호사는 “자사고의 인가권은 교육감에게 있으나 인가를 폐지할 권한은 교육감의 자유재량에 일임돼 있지 않다”며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육감은 자사고의 운영상의 위법이 매우 중대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자사고인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교육감이 인가를 취소하면 자사고는 법원에 제소해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며 “자사고 도입-운영에 대한 결정은 대통령의 권한, 교육감은 그 관리-감독을 맡은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교육감의 자사고제도 폐지 움직임은 월권이자 자사고에 대한 협박”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권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