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소설가 이근미씨(왼쪽)가 11일 자유경제원 주최로 열린 <딜리버리(홍보, 전달)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
바야흐로 광고와 홍보의 시대이다. 15초 광고와 프로그램 시작과 전후 광고가 대부분이었으나 요즘 공중파에서도 30초 광고를 자주 볼 수 있고 케이블에서는 프로그램 중간 광고를 시행하고 있다. 그로 인해 케이블의 광고수입이 공중파의 광고수입과 거의 비등해져 공중파도 중간광고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PPL과 PR, 돈 들이는 협찬과 돈들이지 않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홍보까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피할 건 피하고 알릴 건 알리는 일에 사활을 거는 시대이다. 예전에는 기업과 단체, 목적을 가진 개인이 광고와 홍보에 열을 올렸다면 이제는 거의 전국민이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을 효과적으로 알려 일약 저자가 되고, 성실한 SNS 관리로 스카우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생활 노출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있지만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효과적인 알리기는 단체든 개인에게든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 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물건을 잘 만드는 게 최선이었으나 기술이 평준화된 이후에는 디자인이 관건이었다. 오래 전에 기술이 평준화된 백색가전의 경우 대개 성능이 비슷하다보니 디자인과 크기 등이 선택을 좌우한다.
통신의 발달과 판매루트가 다양해진 지금 양과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아예 소비자들끼리 힘을 합쳐 공구(공동구매)로 물건 값을 낮추고 해외 직구(직접구매)도 늘고 있다. 빠른 배송과 A/S야말로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막강했던 컴퓨터 회사가 종적을 감추고 삼성이 시장을 거의 점유한 것은 바로 A/S의 힘이다.
사람의 생각을 전파하는 일도 물건 구매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양질의 콘텐츠(품질)를 다양한 볼거리(디자인)와 함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배송)에 올리고 반응이 오면 댓글을 달고 질문이나 항의를 즉각 해소(A/S)해주어야 한다. 그에 앞서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신상품이 끊임없이 업데이트(생산) 되어야 한다.
요즘 단체든 개인이든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개의 공간을 관리하며 살아간다. 실적에 따른 평가가 비례하는 게 당연했으나 온라인이 활성화된 지금 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좋은 실적을 올려 평가가 좋았던 단체가 빠른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하면 실적이 좋지 않은 단체나 개인이 블로그를 화려하게 꾸미고 포스팅을 계속 늘리는 가운데 태그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과잉평가 받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온라인에서 소수가 다양한 곳에 노출시키면서 태그를 잘 걸면 백명이 거리에서 목 놓아 홍보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그야말로 일당백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온라인 착시현상으로 여론몰이가 가능한 것이 문제이다.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그룹과 대단히 익숙한 그룹, 온라인 숫자가 적은 쪽과 많은 쪽이 논쟁을 하면, 익숙하고 많은 쪽이 유리한 건 당연지사이다. 누가 더 그럴 듯하고 누가 더 쇼킹하게 부각시키느냐의 싸움이다. 자극적인 부분을 극대화 시키고 현란하게 조명하여 사건의 본질이 완전히 바뀌는 사태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대규모 거리집회도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시키는 등, 온라인 사전 홍보를 통해 만들어 내는 시대이다.
거두절미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잘라서 붐업을 시키는 것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고꾸라지게 만드는 예가 허다하다. 특히 시간을 다투는 사안 앞에서 작심하고 조작을 할 경우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 진실이 밝혀져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파 진영에서 허무하게 당해 여지없이 무너지는 예가 많은데 이는 출발이 늦어 스킬이 부족한 데다 자신을 던지는 전사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이 어느 정도 활성화된 건 1999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연결이 원활하지 않고 중단되기 일쑤였다. 1999년, 여전히 품질은 좋지 않았지만 인터넷 환경이 웬만큼 안정화 되었을 때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끈 사안이 안티조선 운동이다.
당시 기사를 쓰기 위해 안티조선 관련 사이트를 면밀히 검토한 적이 있는데 몇몇 지식인들이 앞에서 끌고 네티즌들이 댓글을 다는 수준이었다. 그 중 한 인사가 욕을 섞어 쓰며 선동을 했는데 오늘날 인터넷이 욕판이 되도록 하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미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장이 난무했으나 피해를 당하는 측의 대응은 거의 전무했다. 당시 안티조선 운동에 왜 대항하지 않는지를 물었을 때 “컴퓨터로 떠드는 것에 신경 안 쓴다. 대꾸하면 더 부각만 될 뿐이다.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을 것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면서 붐업을 시키는 쪽에게 유리한 양상이 펼쳐졌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온라인을 인정하며 기지개를 켰을 때 이미 앞선 쪽이 멀리 달려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안티조선 운동은 잘 알다시피 ‘한 놈만 때리기’ 전법이었다. 비슷한 영향력과 비슷한 논조의 조중동 가운데 가장 센 ‘한 놈’을 때리기로 정한 뒤 끊임없는 비방을 통해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저열하든 어쨌든 근성만큼은 배울 필요가 있다. 딱 보는 순간 물건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슬로건을 제작하고 효과적으로 배포하여 지지를 받아낸다. 그런 다음 상대를 가격하고 단시간에 쓰러뜨릴 수 있도록 공격을 계속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공격의 틈새’를 찾아내는 매의 눈도 놀랍다. 예를 들어 ‘피부과 1억’이라는 선정적 문구를 찾아내자 엄청난 비난 댓글이 쇄도했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사안이라고 판단한 매체가 온라인을 도배해버렸다. 손대지 않고 코풀기, 그야말로 선정적인 물건을 찾아내자 배달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피부과 1억’을 단숨에 뒤엎을 수 있는 ‘탱탱한 볼 사진’이 떠돌았지만 ‘물건’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고 당연히 호응도 없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물건을 캐치하지도 못하고, 세련되게 가공하지도 못한 데다, 배달 라인까지 느슨한 것은 태생적으로 호전적 근성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다양한 인터넷 매체가 생겨났고 위력적인 활약을 펼치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숫자보다는 영향력이다. 좋은 콘텐츠를 잘 포장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A/S를 철저히 하는 것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유지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물건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서 네티즌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한다.
인터넷 시대의 특징은 콘텐츠가 짧아졌다는 것이다. 전하고 싶은 것을 매력적으로 축약하여 가슴에 바로 꽂아줘야 한다.
그런데 우파 논리는 ‘낡은 이론, 기득권 챙기기, 꼰대들의 잔소리, 제국주의 답습, 분배와 나눔을 배제한 악덕 논리’ 등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이렇게 와전된 논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강력한 설득력과 세련된 포장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다양한 배달 테크닉으로 귀에 박히도록 해야 한다. 배달기술을 보완하는 것이 A/S, 즉 소통이다. 어떤 반응에든 즉각적인 관심을 보여 대화의 장을 활성화하는 게 필요하다.
앞 세대의 당연한 잔소리, 하나마나한 얘기, 늘 듣던 말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다음 세대들의 기호에 맞게 이야기의 틀을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달하고, 그들의 눈높이로 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광장, 각종 매체, 온라인 공간, SNS 등 무한대의 공간이 열려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되, 세련되게 갈무리하여, 다양한 도구로 무한 전파한 뒤, 원활하게 소통하는 것만이 딜리버리 시대에 살아남는 길이다./이근미 소설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11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개최한 <딜리버리(홍보, 전달)의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정책토론회에서 이근미씨가 주제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