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의 원칙 어긋…막장드라마 변질 국격마저 훼손

   
▲ 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교수
대한민국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업무는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일은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률은 국민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강제력을 가진 규범이고 한번 만들어지면 폐지되거나 고쳐질 때까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은 좋은 법률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회의 기능 중 예산심의와 행정통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업무이기는 하다. 그러나 예산은 행정 또는 공공기관을 통해서 국민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매년 편성하므로 법률에 비할 바는 아니다. 또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문책하는 일은 다른 기관에서도 하고 있다.

언론의 비판, 시민단체의 감시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행정 내부에서도 국무총리실과 감사원 등 각급 기관의 활발한 감찰활동은 공직사회에 무사안일 현상을 초래할 정도이다. 더욱이 인터넷시대에는 국민 모두가 정부에 대한 감시자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비밀유지가 어렵고 국가 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글로벌 사회에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행정활동보다 국가와 국민의 행동기준을 정하는 입법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회는 법치행정이 지배하는 모든 영역에서 불합리한 법률이 무엇인지를 찾아 개선하는 노력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 헌법은 국회에게 정책질의, 국정감사 및 조사, 각종 자료요구, 국회 출석요구 등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입법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모든 활동의 궁극적 지향점은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어서 정부가 그런 일을 잘못하는가 또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자꾸 생기는가 등을 찾아서 법률을 정비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잘못이 있는 공직자는 해임건의나 탄핵소추 등을 통하여 국민에게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 김명식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국회의 입법권은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잘못 쓰면 국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국민전체의 의사로 만들어진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절히 행사되어야 한다. 이는 성문헌법 국가인 우리나라 법치의 기본원칙으로서 행정권과 사법권도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나누어 사용하는 차원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 맥락에서 2000년부터 도입된 국회의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면, 명백한 위헌적 입법으로 도입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연방정부는 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민 국가인 미국은 연방(United States)헌법을 만들 때 연방국가의 대통령의 지위가, 자신들로 하여금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목숨을 걸고 건너오게 만든 영국의 왕처럼 절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각 주(State)의 대표로 구성된 상원에서 대통령의 고위공직자 임명권을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성문헌법 국가인 우리나라에는 헌법에 그런 규정이 없다.

그 이유는 제헌헌법부터 대통령중심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전체의 대표성을 갖고 있으므로 그를 보좌하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토록 했지만, 나머지 직위는 대통령이 직접 또는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임명해서 임기동안 국정을 안정적으로 책임 있게 운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2000년 2월 16일 '국회법을 개정(5월 30일 시행)하고 같은 해 6월 23일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국회가 헌법의 정신과 규정을 존중하고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헌법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 17개 직위와 국회가 선출하는 직위에만 청문회를 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헌법에 '인사청문회를 거쳐 동의를 한다.’라는 명문 규정은 없지만 청문도 넓은 의미의 동의 절차로 볼 수 있으므로 헌법에 정면 위배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회는 3년 뒤 돌연 태도를 바꾸어 헌법상 임명절차에 관여할 수 없는 국정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을 권력기관장이라는 이유로 청문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률을 개정했다. 당시 입법과정에 대한 국회의 속기록을 찾아봐도 헌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직위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여부를 놓고 치밀하게 법리적으로 문제될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한 바를 찾을 수 없다.

이렇게 한번 잘못된 길로 나가면서, 여야 할 것 없이 인사청문회 제도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할 수 있음은 물론, 공직후보자에게는 청문위원들이 슈퍼 갑의 위치에서 그의 임명 후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됨으로써, 청문대상 직위를 계속 늘려와 원칙이 무너진 틈새로 2005년 국무위원, 2006년 합참의장, 2008년 방송통신위원장, 2012년 인권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금융위원장, 한은총재, 2014년 특별감찰관, 한국방송공사사장으로 계속 확대해 지금은 총 62개 직위로 늘어났다.

그런데 이들 고위공직자들을 임명함에 있어서 현행 국가공무원법상 걸림돌은 없다. 이 점에서 인사청문회를 후보자의 리더십이나 정책능력, 경륜 등을 국민의 대표기관이 확인하는 장치로 활용하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인사청문회는 법적 시효가 훨씬 지난 일이나 본인과 무관한 가족의 일까지 들춰내며 도덕성을 따지는 정쟁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 헌법상 통치구조의 원리에 맞지 않는 다음의 문제점들 때문이다.

   
▲ 자유경제원 주최 '인사청문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전경.
첫째, 인사청문회는 3권 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어긋난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토록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적 요건에 맞는 사람은 자유롭게 선임할 수 있게 했다. 다만 임명된 후에는 국회가 국정감사나 조사, 출석요구, 정책질의 등을 행하거나 대통령에게 해임건의 또는 탄핵 소추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회와 정부 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 원칙을 깬 것이다.

둘째, 헌법 제40조의 입법권을 남용했다. 만약 국회가 고위공직에 한해 임명요건을 일반 공무원보다 강화하고 싶으면 국가공무원법을 개정하거나 고위공직자 임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그간 청문회에서 지적된 위장전입, 세금탈루,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의 도덕성 기준을 결격사유에 추가하면 된다. 그럼에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헌법에 근거 없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규정한 법률은 입법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다.

셋째, 법치국가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다. 인사청문회는 고위공직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정서와 알권리를 충족하는 제도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소위 '국민정서법’을 헌법 위에 두려는 발상이다. 성문헌법 국가에서는 국민 다수가 원한다면 헌법부터 개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인사청문회는 헌법에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경시할 수 없는 '기본권’이 아닌 '제도보장’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미 2004.7월 대법원은 상위법인 지방자치법에 근거 없는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한 조례를 무효로 판결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헌법에 근거 없는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법률도 헌법재판소는 무효로 결정하여야 한다.

넷째, 국회가 청문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국회가 청문결과보고서에 적격자라고 판정한 장관이, 임명된 후 위법·부당한 행위로 형사처벌을 받거나 탄핵결정이 될 경우, 국회도 책임진다는 규정은 없다.

대신 현행법상 대통령은 국회의 청문결과와 무관하게 임명할 수 있다고 해서 위헌성과 책임성을 회피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과연 청문회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청문회가 공직후보자와 가정을 곤경에 몰아넣는 막장드라마처럼 되어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력과 전파를 낭비하는 일은 끝내야 한다.

고위 공직자는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한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이 좋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를 위해서 국회는 대통령이 그런 사람을 찾아 임명할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10년 넘게 인사청문회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고위공직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역량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관련 자료도 충분히 축적되었다.

따라서 국회는 위헌적인 인사청문회 '절차’ 법을 즉시 폐지하고, 고위공직자 임명의 '요건’을 마련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인사청문회를 정상화시켜 청문회마다 검증 잣대가 달라지고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본질적 문제는 덮어둔 채 어떠한 시도를 해도 성과 없는 담론에 그칠 뿐이라 생각된다.

만약 현재의 인사청문회가 위헌이 아니라면, 국회는 나아가서 재판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모든 판사를 임명할 때도 국회의 인사 청문을 받으라고 법을 만들 수 있게 된다. 특별검사제도 역시 행정권에 속한 기소업무를 입법권을 통하여 국회 직할의 행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으므로 이 문제도 위헌성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만약 이런 일을 확장해 나가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국회에서 특정 사건의 재판결과가 마음에 안 들 경우 ○○사건에 대한 특별판사법까지 제정하여 국회가 추천 또는 임명하는 판사가 당해 사건의 재판을 하고 그 결과를 보고 받겠다는 법까지 만들까 우려되는 것이다(물론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정부가 행정권을 통하여 입법행위나 사법행위를 할 수 없고 법원이 사법권을 통하여 입법행위나 행정행위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회 역시 입법권을 통하여 행정행위나 사법행위를 하면 안 된다.

이를 위하여 헌법은 입법권·행정권·사법권 등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복지국가를 이루어 나가도록 잘 제도화되어 있다. 이 헌법의 정신과 내용에 맞게 각 부(府)는 주어진 권한을 합리적으로 절제하며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김명식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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