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공업협회 반대 성명까지…산업화·대기업 트집잡기 그만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통해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성취의 사례다. 우리가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성공의 역사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성공의 길을 걷는데 격려와 지지만 있지 않았다. 온갖 정치적 반대와 회의적 시각이 난무했다. 별의별 훼방으로 얼룩진 흔적도 상처로 남았다. 반대 논리는 내세웠던 사람들은 정치인, 지식인, 시민단체 등 다양하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간극은 크다. 선진국과 달리 아직도 반자본주의 투쟁에 힘쓰는 훼방꾼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잘못된 투쟁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국민 삶을 향상시키는 상생의 길로 나가야 한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이를 취지로 『경제발전의 훼방꾼들』이라는 책을 펴냈다. 미디어펜은 책 내용 중 한국경제 발전의 중심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삼성전자'를 상, 하 2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삼성전자 (하)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 중화학공업 육성정책과 그 반대자들 -

삼성전자 탄생

삼성그룹이 전자산업에 뛰어든 것은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고 역사적인 일이다. 하지만 당시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설립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환영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삼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하려 하였을 때 상당한 반대 여론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한국전자공업협회였다. 당시 59개의 전자회사를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던 전자공업협회는 전체 회원사들 명의로 삼성그룹의 전자산업 진출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성명의 요지는 “전자산업진출 조건으로 삼성이 내건 3대 조건이 이미 실현 불가능하니 삼성의 전자산업진출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삼성은 TV수상기·라디오·스피커 등처럼 아직 국내 중소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제품들을 일본의 산요전기와 합작해 생산해 이 가운데 85%는 수출하고 15% 이내의 제품만을 국내시장에 반입한다는 조건으로 전자업계에 진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자공업협회에서는 TV수상기·라디오·스피커 등 모두 국내 중소기업에서 국산화에 성공하고 있고, 삼성의 85% 수출은 불가능하며, 나머지 15%만으로도 국내총생산량을 이미 초과해 삼성의 전자산업계 진출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 서울 강남의 삼성전자 본사 전경. 삼성전자는 현재 세계 전자업계를 선도하는 최고, 최대의 기업이다. 

당시 전자산업은 금성사와 중소기업 규모의 여러 기업이 활동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LG로 성장하는 금성사를 제외하면 전자산업 분야가 몹시 낙후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정부가 지금과 같은 중소기업적합업종이라는 규제를 시행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삼성의 전자업계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이 틀림없다. 당시 전자산업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되고 심지어 금성사도 사업축소의 정치적 압박을 받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 박정희 정부는 중소기업적합업종이라는 보호정책보다 세계시장에 나가 경쟁하면서 수출을 늘리라는 경쟁정책을 실행하고 있었기에 삼성은 전자업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만일 중소기업보호라는 진입장벽이 당시에도 작동하고 있었다면 삼성전자는 탄생하지 못 했을 것이며 오늘날 세계 1위 기업 삼성전자도 당연히 없을 것이다.

당시에도 삼성은 잘 나가는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전자공업협회로부터 소위 ‘재벌’이라는 명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삼성은 당시에도 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공업·동방백화점·동방생명·한국비료·중앙일보 등 10여 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이었다. 그런 삼성그룹이 전자산업에 뛰어든다고 하니 이 업계 종사자들이 바짝 긴장하고 반대의 성명을 내는 것은 기득권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공업협회의 성명이 정치적 명분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오늘날 삼성전자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경제수준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그런 정치적 주장이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 쉽게 드러난다. 전자공업협회가 3불가론을 들어 삼성의 전자업계 진출을 반대하였지만, 삼성전자는 태동 이후 자신들의 약속을 지켜 나갔다. 산요전기와의 합작을 통해 생산품의 80% 이상을 수출했고 전자산업의 규모를 현저히 증대시켰던 것이다.

   
▲ 재벌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을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재벌’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나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로 인해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공업화 추진에 대한 반대 주장은 대내외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기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자신들의 주장이 틀리고 세계무대에서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우리 기업들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국내의 반대론자들은 ‘기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 모든 게 국민의 땀과 노력의 결과이자 결정체라고 둘러댄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의 성공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땀의 결정체요 그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에서 이 결과를 이끌어냈던 사람과 기업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일이다.

다름 아닌 절체절명의 위험을 뚫고 사업을 추진했던 기업인들과 기업들 말이다. 이들은 ‘사업보국’이라는 애국심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기업가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했다면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사업에 모든 것을 걸고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사명감과 시대적 소명의식이 있었다. 또한 기업가로서 혁신을 이루어내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세계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며 성공의 길로 나갈 수 있었다.

국민 가운데 반대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나라를 성공으로 이끈 국민의 한 사람이 되었다. 반대의 입장에서 찬성의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산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성공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의 결과를 외면하고 반대 입장으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훼방꾼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공업화정책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그 결과로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는 기업들을 재벌이라 부르며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화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논지의 근거는 여전히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본질은 환경, 건강, 반핵·반전·평화라는 현란한 수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인식구조는 ‘중화학공업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되던 시기인 1960~1970년대에 고스란히 고착되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인식의 고착을 보인다는 점은 분명 훼방꾼들의 비극이다.

이는 그들만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발목을 잡는 비극으로 연결된다. 훼방꾼들의 고착된 인식이 한 세대에서 마감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면 이는 더 이상 우리의 비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훼방꾼들의 고착된 인식이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은 자급자족, 농업 경제 등을 주장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을 제시한다. 이는 한국의 눈부신 성공을 외면한 한낱 트집잡기에 불과한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반대자들에 의해 떠돌고 있다. 오늘날에도 훼방꾼들은 산업화의 폐해, 대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자신들의 잘못된 주장을 합리화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