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역사교과서에 대한 문제점은 역사교과서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울 역사교과서는 정설에 입각해야 하는데, 소수 역사학자들과 그들의 사관이 교과서에 투영되고 그것이 反대한민국 관점으로 집필되어 있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역사는 역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경제·정치·철학·사상·문화사 등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학문이다. 그래야만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볼 수 있고, 대한민국이 어떻게 기적을 이룩했는지, 우리의 미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역사는 소수의 공급자들의 통제에 볼모잡혀있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역사학자들에게만 역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보고, 역사교육의 바른 길을 모색했다. 아래 글은 21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국사교과서 실패 연속 세미나 4차 ‘역사학자들에게만 역사를 맡길 수 없는 이유’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영봉 세종대 경제학과 석좌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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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봉 세종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
역사교육의 문제에는 국민전체가 간여해야 한다
국정교과서 발행에 야당은 ‘총력을 집결해 투쟁’ 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문재인-천정배-심상정이 연합해 국정교과서 1000만인 반대 서명운동을 일으키겠다고 한다. 친 야당 언론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수도권 여론이 등을 돌린다. 수도권 새누리당 의원들 부글거린다는 등 마치 국정화 반대의 승리가 기정되는 형국인 것처럼 여론을 이끌고 있다.
국정교과서 도입 비판에 야당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보수-우파 정치인이나 언론까지 국정화에 힘을 빼는 언행·논설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까지 ‘검인정 좌파적 편향-정부가 명령 안했기 때문이며 국정교과서는 반대!’를 논설하는 형편이다. 현 교과서는 나쁘지만 그래도 검정을 잘했어야 한다는 ‘상식론’을 펴고 있다. 이런 태도는 검인정이 정도(正道)이고 ‘국정교과서’는 의롭지 못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입하고 있다. 보수정치인, 언론의 기회주의적, 비겁한 처신이며 국정교과서 추진에 김을 빼는 처사다.
국정화 반대 진영은 “역사해석의 다양성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는 옳은 말이지만 ‘정상적 상황’에서 옳은 말이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교과서시장이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검인정체제 아래서 한국 교과서는 ‘획일화’하고, 다양화 됐다면 ‘사실을 거짓왜곡으로 서술하는 다양성’이 증대했다. 대한민국 역사는 ‘친일 기득권 독재’의 역사였다”같은 서술만 존재하게 됐으며, 그 밖의 역사해석[긍정적 역사]의 다양성은 재작년 교학서교과서 수난 사태에서 보듯 전 사회가 조직적으로 목을 졸라 사망케 했다. 경북 청송여고, 한민고의 철회 사태이후, 언필칭 ‘민주주의 검정시장’에서 전국 2318개 고교 중 교학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제로’라는 기적적 역사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부성고 등 3개교]. 국정교과서 반대자들이 무슨 낯으로 ‘관제역사를 피해 다양한 견해를 교육해야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지 기막힌 일이다.
비정상의 극치는 대한민국교과서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교학사 이외에]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시장을 장악한 검인정 교과서들은 1919년을 건국의 해로 암묵적 인정을 하는 서술을 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보수들이 “건국을 1919년으로 삼을 경우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건국역사의 핵심이 되므로, 보수는 자신들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1948 건국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괴상한 논리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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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가 지난 16일 광화문 청계광장 앞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울중등교장평생동지회 회원들은 정부의 중학교 역사 과목,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사진=미디어펜 |
이런 교과서 때문에 오늘날 국민 2/3가 1919년 건국으로 이해하고 있다. 금년 8월 19일 리얼미터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시점'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는 응답이 63.9%,.1948년은 21.0%에 그쳤다.
한국처럼 경제적 기적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나라에서 반기업 반시장만 가르치는 것도 비정상이다. 검정 교과서들은 전태일의 생애와 노동운동에 한 페이지 다 차지해 소개하지만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인은 언급조차 않는다. 정주영은 소떼 몰고 방북한 사실만 소개된다. 1990년대 좌파적 역사관이 창궐한 이래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고 기업 침체, 국민의 출산 기피, 국회의원들의 망국적 포퓰리즘 정치가 동시에 만연했는데 이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이 자기나라 역사에 욕을 해대는 나라에 무슨 경사가 있겠는가.
국정교과서 반대진영은 현행 역사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검정 절차를 강화하고 정부가 수정 명령을 내리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수정명령에 굴복해 교과서의 편향성이나 오류를 바로잡을 사람들인가? 교과서는 특정 부분을 부각하려고 교묘하게 서술해 꼭 집어 수정명령 내리기도 어렵다. 미흡하게 교쳐오면 수정부분을 계속 고치라고 다시 명령하기 어려워 결국 논란만 야기한다. 이들의 장기(長技)는 집요하게 투쟁하며 계속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2013년 교육부가 금성출판사 등 7개 출판사에 수정을 권고했지만 집필진들이 이에 반발하고, 교육부는 수정명령이라는 강제 조치를 취했다. 이후 집필자들이 수정명령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1,2심에서 패했지만 현재 집필진들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문제된 교과서의 출판사장도 “검정 기준을 강화하면 나아지겠느냐’는 신문사 인터뷰에 “큰 기대는 접는 게 좋다. 문제 많은 현 교과서를 체로 거른다고 뛰어난 제품이 나오겠느냐?”고 응답했다고 한다.
따라서 현행 검정시스템으로 난마처럼 얽힌 형국을 바로잡을 수 없는 현실을 국민이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진나라의 학정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질 때 항우(項羽)가 세상에 나오면서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수단, 방법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쾌도난마(快刀亂麻); 난마로 얽힌 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는 불가능한 것이어서 ‘국정교과서’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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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좋은교과서만들기시민연대는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좋은 역사교과서, 정직한 역사교과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시민연대를 출범한다”고 선포했다./사진=미디어펜 |
한국에서는 왜 이런 비정상이 일어나는가. 한국 사회에는 자정기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정체제가 다양화하려면 독선적 왜곡 조작사태가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학술 교육 언론 각 분야에 자정기능이 존재해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없다. 광우병조작 세월호 선동 같은 사태가 선진국에서 가능한가? 민주주의 자유체제는 이들을 사후에도 철저히 심판해 퇴출되므로 다양성과 상식이 지켜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광우병선동의 주역이 야당의 국회의원-최고위원을 하고 있다.
국민도 이런 비정상에 쉽게 휩쓸리고 있다. 인터넷 포탈, 언론, 문화예술연예 각 분야를 좌파가 장악해 선동기구로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나라를 지켜야할 세력[기득권 보수 정치인 언론]도 패배주의에 빠져서 퇴로(退路)부터 살펴 양비론을 펴고 있다. ‘반박되지 않은[자주 언급된] 거짓은 진실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A lie told often enough becomes the truth. Vladimir Lenin] 우리나라 교과서시장은 좌파가 무법처지 활동하는 무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국가가 손을 놓아야 하는가.
향후 기나긴 싸움을 피할 수 없으며 이는 국민의 마음을 잡는 전쟁일 것이다. 정권이 좀 더 적극적으로 여론 활동에 나섬이 필요할 것이다. 선전공세는 전통적인 야당-좌파의 무기로서 문화 포탈 사이버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정청래 의원은 “아버지, 그의 이름은 다까끼 마사오였습니다. 딸 그의 이름은 박근혜입니다”고 일갈했다. 자신의 천격을 보여주는 행태지만 언론을 통해 친일파정권을 부각시키는 데는 큰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시대 국사책에는 일본을 옹호하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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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산하 동북아역사대책특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사진=미디어펜 |
이럴 때 보수언론 아무도 김대중이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창씨 개명했음을 반박하지 못한다. 김대중은 일본에 가서 옛 일본인 은사를 만나 「도요타 데스」라고 인사를 해서 그 은사가 오히려 당황했다는 얘기가 아사히 신문에 실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대중은 일본에 망명생활을 할 때 자민당 좌파의원인 우스노미야 의원 등 일본 국회의원들의 지원을 받았다. 1989년 일왕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때는 우리나라 정치인으론 이례적으로 주한 일본대사관 빈소 히로히토의 영정 앞에 몸을 45도로 숙여 조의를 표명한 일이 있다. (경향신문 1989년 1.9일자). 한국의 EEZ구역에 한일어업공동구역 설치해줘 독도 영유권문제 빌미를 제공했다.
목포상고 졸업 앨범 일본군복 입고 일본군 모자쓰고 연극을 하는 김대중 사진이 있다. 일제 말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때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건국준비위원회]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다. 박정희 일본육사 다녔다는 사실로 친일파로 규정한다면 김대중은 일본군복을 입고 조선인 학생 학병입대를 선동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는 좌파가 친일파 제기할 때마다 폭로해야 여론전에서 상대를 조심시키게 할 수 있다. 이 사실 내가 신문에 쓰려하면 실어줄 신문이 있겠는가?-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개인적 비판은 좌파 전체가 들고 일어나 패륜아처럼 비판해서 소송 협박으로 대응하며 아마 보수신문도 –품위가 없다느니 덩달아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박정희에의 모욕은 다반사로 진행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진보는 정의, 보수는 타락’이라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정착시키게 한다.
따라서 얼마 전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발언한 일은 우파 최초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용기는 자신의 신념에 자기의 직책을 걸고, 좌파의 사퇴협박 소송위협에 정면으로 맞설 각오를 가겼기 때문에 발현되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정권이 가장 잘한 일은 공영방송을 장악한 일이다. 고영주 이인호 집어넣고 kbs mbc 이사진을 개편했는데 그 효과의 중대성은 과장될 수 없는 성과다. 이번에 역사교육현장도 지배한다면, 세종시행정부이전 국회선진화법 등 중대한 과오는 있지만, 적어도 국가의 이념기반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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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해석[긍정적 역사]의 다양성은 재작년 교학서교과서 수난 사태에서 보듯 전 사회가 조직적으로 목을 졸라 사망케 했다. 경북 청송여고, 한민고의 철회 사태이후, 언필칭 ‘민주주의 검정시장’에서 전국 2318개 고교 중 교학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제로’라는 기적적 역사가 이루어졌다. [지금은 부성고 등 3개교]. 국정교과서 반대자들이 무슨 낯으로 ‘관제역사를 피해 다양한 견해를 교육해야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지 기막힌 일이다. |
역사교육은 역사학과 다르다. 지금 역사교과서 가지고 따지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역사학자들인가? 로마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시기의 역사가 키케로는 “태어나기 전 생긴 일을 모르는 사람은 어린애나 다름없다. 역사를 읽고 조상이 이룩한 성과를 ‘자기 것’으로 하지 못한다면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술회했다. 역사교육의 목적이 선대 역사를 후대 국민이 공유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강대한 국가일수록 긍정적 역사를 강조한다. 우리 역사교육은 적어도 조상이 국가를 만들고 부강하게 한 것 국민이 긍정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제나라 역사 폄하하는 나라가 잘될 리 없지 않은가.
독일 역사학파 탄생의 부조(父祖)로 알려진 리스트[F. List]는 국토 국민 역사를 국가의 3대 요소로 규정했다. 역사학파는 정신[geist]를 가장 중시한다. 국토 국민이 구가의 몸체이며 역사는 국가의 영혼이라는 의미다. 역사교육은 그만큼 중요하다. 국민모두가 공유하는 것이므로 역사학자의 소유만이 될 수 없다. /김영봉 세종대 경제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