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화려한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치열한 물갈퀴질을 한다. '달콤한 인생', '광해, 왕이 된 남자', '내부자들', '마스터', '남한산성', '남산의 부장들', '콘크리트 유토피아'까지 한계 없는 변신을 통해 '연기의 신'으로 자리매김한 이병헌도 그렇다. "배우에게 쉼 없는 치열함 없이 성공을 논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고 말한 그는 34년의 시간 동안 수백 수천의 표정을 만들어냈고, 이 얼굴은 그에게 가장 멋진 옷이 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병헌을 만났다. 경외심마저 느끼게 하는 캐릭터 연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는 영화 '승부' 개봉을 앞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 영화 '승부'의 배우 이병헌이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드라마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가 굉장히 강한 실화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선택한 거고… 바둑을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 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바둑영화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업했다"는 이병헌은 '리빙 레전드' 조훈현을 연기한 소감을 묻는 말에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자유로움이 많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기댈 곳은 충분히 있다. 워낙 자료 등 참고할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고 답했다.

"'남한산성', '남산의 부장들' 같은 경우에는 현존하지 않는 분들이기 때문에 '어땠을까' 상상하며 연기하니 힘들었어요. 그런 연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실제 있었던 일을 베이스로 한 영화지만, 그 분의 감정을 떠올렸을 땐 정확한 답이 없다는 것들이 많이 고민되는 지점이죠."

정적인 대국 상황에서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해야 하다 보니 제약이 따르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병헌은 "그런 것이 매력이었다"며 "긴장과 환희, 혹은 절망감 등 안에서는 정말 엄청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모든 것을 정적인 가운데 표현해야 했다"며 "미세한 감정 표현과 떨림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대국에서 지고 나와 담뱃갑을 구기는 장면까지,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장면인데. 유독 그 신에서 테이크를 많이 갔어요. 감독님한테 다시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볼 만큼, 계속 욕심이 나는 장면이었어요."


   
▲ 영화 '승부'의 배우 이병헌이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내부자들'), "수신제국치국천하태평"('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작품마다 시대의 유행어를 탄생시키는 이병헌의 애드리브 실력은 자타가 공인한다. 그런 '아이디어 뱅크' 이병헌도 이번 작품에서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거나 아이디어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고 밝혔다.

"워낙 시나리오에서 표현이 잘 돼 있었어요. 인물이 적절하게 잘 그려져 있어서. '이런 감독님이라면 내가 해볼 만하겠다' 하고 감정선의 고조를 맞춰갔던 것 같아요."

'연기의 신'이 '바둑의 신'을 연기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승부'를 향한 관심도 뜨겁다. 최정상에 선 배우로서 후배들에게 연기 조언을 어떻게 해주는지 묻자 그는 "나도 고민 중이고, 연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면 나도 그걸 열심히 할 것 같다. 바둑과 마찬가지다"라고 답했다.

"조훈현 국수님께 여쭤봤어요. '일본 스승님과 함께 사실 때 많이 훈련받으셨나요?' 했더니, 어린 시절 몇 년간 살면서 바둑을 두 판인가 세 판 두셨대요. '그러면 나머지 시간 동안 어떻게 배우셨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요?' 여쭤보니 삶의 방식, 삶의 태도, 생각 등 이런 것들을 교육받았다고 생각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병헌은 "연기는 남의 인생을 표현하는 건데 그것을 훈련하는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후배에게 질문을 받으면 그걸 명확하게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그리고 연기 잘하는 보석 같은 후배, 동료들은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작품을 보면서 '저 연기를 내가 할 수 있을까?' 감탄하는 순간들이 되게 많아졌다"고 털어놓았다.


   
▲ 영화 '승부'의 배우 이병헌이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앞선 시사회에서 포착한 관객들의 반응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좋았다는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실제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드라마틱하니 영화가 가진 힘이 엄청나다고 생각했다. 유머러스한 장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없다. 매번 진지하게 이 영화를 대했고, 연기도 그렇게 했는데 관객들이 많이 웃더라"라고 밝혔다.

"그런 점에서 '번지점프를 하다'와 비슷해요. 그 영화도 전 진지하고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기자 시사회에서 사람들이 키득대고 웃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되게 심각한 장면인데, 제일 심각한 장면에서는 빵 터져서 웃더라고요. '아, 큰일 났다' 생각하고 매니저에게 '나 화장실 대변 칸에 가서 있을 테니 사람들 모두 나가면 데리러 오라'고… 영화가 끝나기 전 들어가서 숨어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 매니저가 '근데 이상해'라며 재밌지 않냐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는 거예요. 영화에 확 빠져서 보고, 극 중 인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법 하니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던 거죠. '승부'도 난 진지하게 임했는데, 웃음 포인트가 많은 걸 보면 '관객들이 빠졌구나' 생각이 들면서 좋았어요."


   
▲ 영화 '승부'의 배우 이병헌이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 영화 '승부'의 배우 이병헌이 미디어펜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주)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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