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당원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여당은 물론 그 지지세력까지 “수구꼴통 보수세력”이라고 매도하고 국정교과서를 “국민과 역사에 대한 계엄령”으로 규정하는 한편 교육부 내 역사교육지원TF에 대해서도 청와대에서 운영하는 비밀 작업팀이라고 주장했다./사진=미디어펜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내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을 위해 역사 바로세우기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설파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은 장외투쟁에 드라이브를 걸고 여론몰이에 나섰다.

현행 역사교과서가 패배주의로 치우친 것을 바로잡아 역사의 공과를 균형 있게 기술하려는 것이 정부의 국정교과서 취지이지만 새정치연합은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친일교과서’로 규정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선동에 앞장섰다.

새정치연합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던 날 국회 본회장에서 피켓시위와 침묵시위로 대응했으며, 오후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당원 결의대회를 열고 ‘친일·독재 미화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라는 기존 논리를 거듭 설파했다.

또 이 자리에서 정부·여당은 물론 그 지지세력까지 “수구꼴통 보수세력”이라고 매도하고 국정교과서를 “국민과 역사에 대한 계엄령”으로 규정(이종걸 원내대표)하는 등 비난 수위를 높였다. 교육부 내 역사교육지원TF(태스크포스)에 대해서도 ‘비밀 작업팀’으로 규정하고 “청와대에서 직접 운영한다고 확신한다(문재인 대표)”고 주장했다.

정부와 여당에 대해 협상을 벌여야하는 제1야당으로서의 자세를 내팽개치고 국정교과서 문제로 국민분열에 앞장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고용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개혁법안 처리에는 관심도 없는 모양새이다.

중·고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초기부터 새정치연합은 아직 집필진조차 구성되지 않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친일·미화 교과서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새정치연합은 “국정교과서 문제를 내년 총선까지 이어가며 투쟁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를 놓고 거친 발언을 이어가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왔다. 급기야 야당의 단골 메뉴이지만 여론의 비난이 거센 장외투쟁까지 동원한 것에서 문 대표가 사활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공천·계파 갈등으로 몸살을 앓아온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 ‘교과서 전쟁’이야말로 당 내 비주류 목소리가 새어나올 틈을 차단하고, 세 규합의 추진동력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셈법이 가능하다. 문 대표가 계파갈등 초기 혁신위원회로 시간벌기를 했듯 12~1월 계파갈등이 더욱 불거질 시점에 장외투쟁으로 또다시 시간벌기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를 방증하듯 27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당원 결의대회에는 안철수·김한길 전 대표나 박영선 전 원내대표, 문재인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조경태 의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통해 당권을 더욱 굳건히 하고 동시에 박 대통령과의 정면승부에 나섰으니 손해볼 것이 없다. 오히려 다음 대선을 예비하는 표 몰이도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하듯 새정치연합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있기 전부터 의원총회를 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규탄 지침을 채택했다.

새정치연합은 13일 의총에서 ▲국정화 중단 ▲행정고시 철회 ▲교육부 책임자 사퇴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규탄문을 채택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당 지도부가 참석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역에서 개최한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이 서명운동 중인 문재인 대표 등 지도부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새누리당이 “교과서 문제를 구실삼아 산적한 민생 문제와 현안을 외면하고 장외투쟁에 집중한다면 겨울 추위보다 매서운 국민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문 대표는 심지어 심상정 정의당 대표, 천정배 무소속 의원과 함께하는 3자 연석회의를 출범시키고 투쟁 의지를 천명했다.

또한 새정치연합은 1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대정부질문도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정치공방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매일 정치·외교·교육 등 대정부질문 주제는 달랐지만 황교안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5·16은 쿠데타인가’라고 추궁하면서 ‘친일·독재 미화’ 공세를 이어갔다.

문재인 대표는 16일 부산을 찾아 부마항쟁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친일·독재 미화 반대’를 전면에 내세워 닷새째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이후 문 대표는 18일 서울 강남을 방문, 학부모들을 만나 박 대통령과 김 대표를 ‘친일·독재의 후예’로 규정하고 ‘단일 교과서가 수능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을 해 여권의 빈축을 샀다.

상임위별 예산 심사가 시작된 19일, 새정치연합의 의총으로 대다수 상임위는 예산 심의가 오전에서 오후로 지연됐고 특히 교문위는 지난 국감 때와 같은 쟁점으로 공전을 거듭한 끝에 빈손으로 파행했다.

그리고 22일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원내대표가 청와대에 모인 ‘5자 회동’이 있었지만 문재인 대표는 이 자리에서도 박 대통령과 원활한 소통을 하지 못했다. 회동 중 30분여분 ‘토론 수준’으로 대화가 진행됐다고 알려졌지만, 문 대표는 5자 회동 이후 언론에 “왜 보자고 했는지 알 수 없는 회동이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야당 대표로서 대통령 앞에서는 제대로 응수하지 못하고 뒷말만 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새정치연합의 장외투쟁으로 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노동개혁 5개 법안과 경제활성화 법안 조속 처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11월 중순까지 처리 ▲내년 예산안 법정 시한 내 처리 등이 모두 불발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런데도 야당은 ‘민생 우선’이라는 프레임을 내걸고 이에 대한 책임을 모두 여권에 전가하고 있다.

이제 새정치연합은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마감일인 11월2일과 확정고시일인 11월5일까지 여론전에 ‘올인’할 태세다. 문 대표는 28일 경기도 일대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버스 투어에 돌입해 심상정 정의당 대표, 천정배 무소속 의원 등 야권 3자 공동주최로 국정교과서 반대 토론회를 열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대표와 야당을 향해 “이성을 되찾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역사교과서를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민중사관에 지배당하고 있는 교과서와 학교, 역사학계를 등에 업고 있는 새정치연합이 자유사관으로 쉽게 복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