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보이스피싱은 돈 인출해 나오라고 직접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은 "계좌이체에서 대면접촉으로 수법이 바뀌었다"고 밝힌다. 아래는 지난 21일 일어난 최근 사례다.

"검찰청 검사입니다. 대포통장 명의자로 확인됐으니 범죄와 무관함을 입증하려면 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해 방문하는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금감원 직원을 보내겠습니다."

21일 결혼화보 촬영 때문에 서울 압구정동 미용실에서 화장을 하던 20대 예비신부 이모씨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겁이 더럭 난 이씨는 약혼자에게 연락할 생각도 못하고 미용실 가운을 그대로 입은 채 인근 은행으로 달려가 결혼 자금으로 쓰려던 2800여만원을 찾았다.

'검사'는 그러는 동안에도 전화에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3시간이나 통화가 이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금감원 직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씨가 돈을 건네려던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에서 나타난 건장한 남성들이 이 직원에게 달려들었다.

알고 보니 금감원 직원은 중국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인출책인 중국동포 김모(23)씨였고, 김씨를 잡은 것은 잠복해 있던 경찰관들이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금감원 직원 등을 사칭하며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챈 혐의(사기·사기미수)로 김씨를 구속하고 송금책인 중국동포 이모(2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9∼10월 중국 총책의 지시를 받고 20대 여성 양모씨로부터 2천100만원을 가로채는 등 3차례 6천100여만원을 챙겨 총책에게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보이스피싱의 가장 큰 피해자가 20~30대의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사진=미디어펜

이들은 '벤츠'라는 별명을 쓰는 중국 총책이 피해자에게 사기 전화를 건 다음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통해 지시를 내리면 피해자들을 만나 돈을 받았다.

금감원 직원처럼 보이려고 가짜 명함과 목걸이 형태의 신분증은 물론 금융위원회 위원장 명의 직인이 찍힌 가짜 계좌추적동의서까지 만들어서 지니고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의 신고로 범행을 알게 된 경찰은 이들이 총책에게 송금하는 모습이 담긴 은행 CCTV 영상을 확보하고 동선을 추적해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100만원 이상이 입금된 계좌는 30분간 현금입출금기로 돈을 찾을 수 없게 하는 '지연 인출제도'가 시행된 이후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계좌이체 대신 대면접촉을 통해 돈을 받아내는 수법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들 외에 총책과 연락을 주고받는 국내 조직원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