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긴장감 속에서도 회의적인 분위기 강해

[미디어펜=백지현 기자] “정부가 강도 높은 기업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몇 곳을 타깃으로 정해 손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겠느냐. 지속된 경기 침체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적자에서 허덕이는 마당에 당장 회생이 어렵다고 다 쳐내면 그 후폭풍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금융당국이 은행 빚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부실기업 퇴출에 칼을 빼든데 대한 재계 관계자의 이야기다. 그는 정부의 주도적인 구조조정 강행에 대한 긴장감 속에서도 ‘용두사미’격에 그치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재계에 퍼져있다고 전했다.

퇴출대상기업 800개...대기업 계열사 상당수 포함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은 지난해 3295개로 파악됐다. 정부는 이들 부실기업 가운데 총 800여개 기업을 퇴출대상으로 보고 있다.

   
▲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3년 이상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은 지난해 3295개로 파악됐다./YTN방송 화면 캡처

우선 퇴출 대상은 ‘이자보상배율’을 잣대로 좀비기업 여부를 가려낼 전망이다. 이자보상배율이란 한 해 동안 기업이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이 그해 갚아야 할 이자에 비해 얼마나 많은지를 따지는 공식이다. 영업이익으로 채무이자를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이 퇴출대상인 셈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좀비기업 범주에는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의 울타리 안에 있는 계열사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벌닷컴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내 30대그룹 계열사 5곳 중 한 곳은 좀비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부, 에쓰오일, 미래에셋그룹의 좀비 계열사 비중이 50%에 달하며, 부영, 현대 포스코, KCC, 한화그룹의 좀비 계열사 비중도 30%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연말까지 대기업을 포함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내년 초부터 부실 중견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대기업 계열사 등에 대해서는 내년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할 예정이다.

정부가 부실기업 퇴출에 직접 메스를 들이댄 이유는 부실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비생산적인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좀비기업에 은행자금 및 정부지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면서 정상적인 기업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 불신 팽배

산업·금융계에서도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과 관련해 선별적인 관리가 시급하다는데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적인 시각이 큰 데에는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결과로 분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으로 기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며 “지난 8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부실이 수면위에 드러난 뒤 일부 은행들이 여신 축소 움직임을 보일 때는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으로 영업하지 말라고 경고하던 정부가 돌연 부실기업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대체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속된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도 적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데 요즘 같은 실적시즌에 참 여러모로 갑갑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크다보니 이번에도 몇 군데를 시범적으로 손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겠느냐는 전망과 함께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키운 데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특히 이번 경남기업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난 셈”이라며 “부실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감행하는데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업의 자연스러운 도태에 맡겨야 하는 게 시장논리에 맞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도 “정부가 저렇게 압박하고 나서는데 안할 수도 없고 어쩌겠느냐” 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좀비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좀비기업이 양산된 된 데는 정부의 과도한 정책금융지원이 자리하고 있다”며 “정부정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바람직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고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오 특임교수는 이어 “대기업은 산업우량과 수출우량의 지원, 중소기업 같은 경우도 각종 신용보금기금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따라서 좀비기업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좀비기업을 양산해온 정책 금융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한꺼번에 정리하면 경제적인 충격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정리해 나가면서 자생력 있는 기업들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