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선구 한국거래소 금시장팀장
중장년 세대라면 어릴 적 할머니가 손가락에 평생을 끼고 다니시던 금가락지에 대한 기억이 아련할 것이다.

할머니의 금가락지는 새색시의 가장 소중한 혼수였고 마지막에 자식에게 남겨줄 장례비용이기도 했다.

“절대로 변질되지 않고 낡아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인데 전쟁직후 인플레이션과 화폐개혁을 겪은 이들에게 금의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화폐제도의 근간을 이룬 금본위제는 금=화폐라는 등식을 성립하게 하였고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는 이 공식이 유효하다.

1971년 금태환 정지로 황금은 인류와 함께한 1만년 역사에서 비로소 화폐의 지위를 내려놓고 가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탄생시킨 종이돈에 밀려난 황금이 투자상품으로 탈바꿈하며 화려한 널뛰기를 시작한 셈이니 물질에도 팔자라는 것이 있다면 이 만큼 아이러니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금이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빛나는 순간은 냉전의 절정기인 80년대 1온스당 2,450달러의 기록인데 최근 유럽재정위기가 고조될 2011년에 기록한 1895달러가 최고점이었음을 고려하면 그 기록이 언제 깨질지 궁금하다. 물론 전쟁이 나선 안 되겠지만...

유럽의 금융위기가 꺽이기 시작한 2012년 이후 국제 금값은 줄 곳 약세를 보였다. 그런데 최근 FRB의 금리동결 조치에 불구하고 금값이 견조한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값이 생산원가의 턱밑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요즘 금값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KRX금시장팀에는 문의 전화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주식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내일의 금 가격을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금에 투자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다음 세 가지 원칙만 기억하면 어떨까 싶다.

첫째, 금이 자산의 10%를 넘기지 않을 것.

금에는 이자가 붙지 않기 때문인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속담과는 무관하다. 금은 깨지지 않는 달걀이며 가격 상승을 통하여 이자나 배당에 해당하는 과실을 낳아야 하는데 이자 없는 금에 너무 많은 몫을 투자하면 단기 수익률에 조급해질 우려가 있다.

둘째, 장기투자 전략으로 접근할 것. 인류의 유전자에는 황금에 대한 원초적 욕망과 불안이 공존해 왔다. 안전한 자산은 그만큼 더디게 오르는 것이 순리다. 그래서 금을 사려면 안전하게 오래 보관할 마땅한 수단이 있는지도 고민해 볼 일인데 침실 장롱은 절대 좋은 장소가 아니다.

셋째, 세금과 수수료를 가볍게 보지 말 것. 지난 70년간 금값은 통계적으로 매년 5%씩 상승했다. 갈 길은 먼데 값이 20%올라도 세금과 수수료를 제하면 남는 게 없다. 금을 사고 팔 때에는 세금은 물론 숨겨진 수수료나 마진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내일의 금 가격을 예측할 수는 없다. /사진=연합뉴스

금시장 담당자의 영업 전략으로 오해를 살지 모르지만 모든 조건을 쉽게 충족시키기에 KRX금시장 만한 수단이 없다. 1g 단위로 금을 쪼개어 공정가격에 사고 팔고 마음 편히 보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랑비에 옷 적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래에 따른 세금이 없고 1g당 수수료는 백원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세 가지 원칙은 할머니가 남겨주신 금가락지의 보유 원칙과 꼭 닮지 않았는가. 많지 않은 금일지언정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하셨고 세금과 수수료를 알뜰히도 절약하셨다. [글/ 황선구 한국거래소 금시장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