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기자] 수십 년간 문화재를 훔치고 거래한 이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의 집과 사무실 등에서는 도난당한 문화재 등 799점이 발견됐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광역수사대는 4일 문화재보호법 위반 및 장물취득 등의 혐의로 강모(62)씨를 구속했다. 경북 지역 사설박물관장 김모(67)씨와 골동품상, 수집가 등 15명은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에서 전적류(도서) 513점, 도자기류 123점, 서예류 86점, 공예류 77점 등 모두 799점의 문화재를 압수했다.
1993년 보물 1157호로 지정된 '성리대전서절요(性理大全書節要)'와 같은 판본인 4책 중 1책도 확보했다. 17세기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 전기 문신 김국광의 묘소에 묻혔던 지석 등이 압수품에 포함됐다.
성리대전서절요는 중종 38년이던 1538년 김정국이 성리대전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 편성·간행한 책으로, 나머지 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문화재들은 대부분 20~30년 전 향교나 사찰 등에서 없어졌다. 절도범들이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보이면 쓸어가는' 식으로 훔쳐 골동품상 등에게 넘겼다고 경찰은 전했다.
도난 문화재의 낙관이나 내용은 고의로 훼손한 탓에 출처와 피해자 확인이 어려웠다. 대다수 피해자는 도난 사실조차 몰랐다.
피해자 정하완씨도 이날 오전 열린 경찰 수사브리핑에서 "문중의 조선시대 문신 정난종 선생의 묘지에 묻혀있다가 도난당한 지석 중 1점을 이번에 찾게됐다"며 "도굴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굴이나 도난은 대부분 20∼30년 전에 이뤄져 해당 범인을 처벌할 수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도난 문화재를 숨기거나 매매한 이들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박물관장 김씨는 박물관 내 대형 금고에 문화재를 숨긴 채 압수에 불응해 강하게 저항했다. 위작 도자기를 진품으로 알고 주거지 화장실 천장에 숨긴 사례도 있었다.
특히 김씨는 경찰의 급습에도 시치미를 떼는가하면, "찾을 수 있으면 찾아가라"고 배짱을 부리기까지했다.
한 개인 골동품 수집가의 아파트에서는 약 350점의 도난 문화재가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은 범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면한 문화재 도굴꾼들을 이번 수사에 활용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등지의 문화재 비밀거래 현장 등을 덮칠 때 동행한 것이다.
70~80대의 고령인 도굴꾼들은 죽기 전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수사에 협조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압수품들은 문화재청에 보내 모두 진위를 감정받았다. 다만, 감정값은 따로 회신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