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적 '평등주의' 정책 패러다임이 성장 동기 앗아가
   
▲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성과를 폄하하는 경제에 미래는 없다

경제학에선 자본과 노동과 기술이 있으면 경제가 성장·발전한다고 설명한다. 국제시장에는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넓게 열려 있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지구상에서 이들 요소만 잘 활용해 경제 도약시킨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 생산요소가 있으면 경제를 성장·발전한다는 주장은 이들을 어떻게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노하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잘 된다’는 동어반복이나 다름없다. 오늘날의 경제학이 세계경제가 직면한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는 고사하고 이를 소위 새로운 정상 상태(뉴노멀)라고 속수무책인 소리를 하고 있는 이유다. 개발연대 세계 최고의 동반 성장을 시현했던 한국 경제도 지난 30여 년 동안 선진국에 진입한다며 개발연대 청산과 선진국 모방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현재 저성장과 불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업 없는 경제학’은 헛소리

경제 번영의 원천은 무엇일까. ‘보다 좋은 성과를 대접하는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 인센티브 구조’가 모두를 번영으로 이끄는 핵심이다. 신상필벌은 사람을 움직이고 심지어 산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잘하면 좋지만 잘못하면 남에게 뒤떨어진다는 신상필벌과 그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의 압력이 바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자기 발전과 경제적 번영의 노력을 이끄는 힘이다. 개발연대 한강의 기적도 바로 신상필벌 정책을 통해 모든 부문에서 자조정신과 번영의 노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없는 자본과 기술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역으로 신상필벌에 역행, 경제적 평등을 보장하는 순간 시장의 활동이 멈추고 경제 번영을 향한 노력도 멈춘다. 사회주의의 몰락이 그러했다.

시장의 주체인 우리 모두는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는 순간부터 신상필벌이라는 선택의 칼을 들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돕는 주체만을 선택하는 경제 불평등의 창조에 나선다. 경제적 불평등의 압력은 가장 강력한 성장과 발전의 유인 구조다. 경제 민주화와 평등, 재벌 청산과 중소기업 사랑을 외치는 정치인과 지식인도 돌아서면 재벌 제품만을 선호하고 제 자식의 재벌 취직을 바란다.

현실의 시장은 원래 불완전하다. 시장은 정보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래비용 때문에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키는 신상필벌의 경제적 차별화에 실패한다. 좋은 성과가 항상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시장만으로 경제 발전은 가능하지 않다.

   
▲ 성장과 발전의 동기가 사라진 경제에는 백약이 무효다. 경제·사회 모든 부문에 신상필벌의 동기부여 장치를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하나가 아니라 5개, 10개가 생겨날 수 있다./사진=미디어펜

시장의 신상필벌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등장한 조직은 기업이다. 정보가 완전해 시장이 신상필벌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기업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하지만 현실 시장의 정보는 불완전하기 마련이다. 이때 기업은 기술적인 면에서 생산요소들의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키는 데 시장보다 더 효율적이다. 시장 거래는 거래 조건에 대한 수평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데 비해 기업은 수직적 명령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자원 배분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거래 당사자 간의 거래 조건에 대한 합의를 위해 항상 양의 거래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기업은 이를 회피할 수 있다. 시장은 정보 불완전성이 높을수록 기업에 비해 그만큼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 장치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난 200여 년 동안 산업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동시대의 발명품인 ‘유한책임주식회사’라는 현대적 기업이 이끌었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한 인류는 모두 땅을 벗어나 기업 속에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겨루게 됐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주식회사 기업 제도를 제거하면 바로 농경사회로 전락한다. 민간 기업을 말살한 사회주의의 종말이 농경사회로의 회귀였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자본주의 경제는 곧 기업 경제다.

성장 동기 사라지면 백약이 무효

현재의 주류 경제학은 기업을 자본·노동·기술로 분해함으로써 ‘기업 없는 경제학’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자본과 노동과 기술이 넘쳐도 이를 조직화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기업의 성장·발전이 없는 경제의 성장·발전은 없는 법이다. 오늘날 세계적 경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제들은 모두가 일류 기업을 더 많이 보유한 경제다.

문명은 물론이고 경제와 기업·개인 등 모든 발전의 기본 속성은 앞선 자의 성공 노하우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공하는 일류 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후발자들에 의해 성공 노하우의 무임승차에 노출된다. 무임승차하면 버스 회사가 망하듯이 일류 기업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또한 영원하지도 않다. 한국의 일류 기업들은 어떤가. 후발자인 중국 기업들의 무임승차와 더불어 정부와 사회의 반(反)대기업 정서까지 겹쳐 미래가 불안하다. 이 또한 시장의 신상필벌 차별화 실패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성공 노하우의 무임승차 현상 때문에 시장과 민간 기업이 아무리 신상필벌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경제성장·발전은 쉽게 일어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발전 역할이 필요하게 된다.

정부의 경제 발전 역할은 시장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나쁜 성과보다 좋은 성과를 우대하는 경제적 차별화를 실천함으로써 시장의 미약한 차별화 기능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 인센티브 구조의 제도화’ 없이는 경제 번영도 없다. 스스로 노력해 흥하는 개인과 기업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는 경제적으로 희망이 없다. 제대로 된 인재가 대접받지 못하면 더 이상 인재의 선순환 구조가 존속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 기업의 성장·발전이 없는 경제의 성장·발전은 없는 법이다. 오늘날 세계적 경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경제들은 모두가 일류 기업을 더 많이 보유한 경제다. 한국경제가 배출한 세계 초일류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를 비롯, 여러 기업들이 있다./사진=미디어펜

오늘날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는 개발연대 이후 우리가 추구해 온 ‘좋은 성과는 폄하하고 나쁜 성과를 우대하는 평등주의 정책 패러다임’이 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앗아간 때문이다. 대기업 규제 속에 중소기업만 배려하고 수도권은 규제하고 지방만 배려하고 열심히 살아 성공하는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만 배려하겠다는 균형과 평등 발전의 이념은 신상필벌의 발전 원리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성장이 정체되면 일자리 창출은 안 되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된다. 전 세계 경제의 장기 정체와 양극화의 원인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 체제가 추구하는 경제 평등주의가 그 원인인 것이다. 복지사회 정책도 필요하지만 자조 노력과 성취에 따른 신상필벌의 인센티브 차별화가 없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취약 계층의 자조정신과 성장·발전의 동기를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복지 실패가 이를 입증한다.

성장과 발전의 동기가 사라진 경제에는 백약이 무효다. 경제·사회 모든 부문에 신상필벌의 동기부여 장치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는 신상필벌에 역행하는 평등주의 이념과 이를 조장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경제의 재도약을 막고 있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어둡다.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펜 회장

(위 글은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10월 7일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Issue&Topic'에 기고한 칼럼입니다.)